"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상담실에 오는 이들에게
엄청 '심각한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을 한다.
물론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정말 하드코어한 사연을 그동안 많이 다뤘지만,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한두 번은 겪게 되는
경증의 우울과 불안으로 문을 두드린다.
DSM-5-TR* 진단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고 버겁기에
용기 내어 상담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DSM-5-TR: 정신 질환을 진단할 때 사용하는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표준 진단 매뉴얼
60대 토냐를 예시로 들어볼 수 있다.
그녀는 13살에 첫 아이를 낳았고,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큰딸이 고등학교 때 아이를 갖게 되면서,
토냐는 고작 서른에 할머니가 되었다.
그 손녀가 또 열여덟에 출산하며,
토냐는 48살에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여덟 손주와 열 명의 증손주를 돌보며,
13살 이후 기저귀를 갈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한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번 돈은,
아이들, 손주들, 증손주들을 위해 다 쓰였다.
그렇게 노후 준비는커녕,
어느 날 거울을 보고 발견한 건
하얗게 샌 머리카락뿐이었다.
하루 네 시간 이상 잔 적이 없다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건 허무함뿐이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안톤 체호프의 <벚꽃 동산>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그건 토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36살의 드웨인은 10살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다.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한 뒤 홀로 육아를 책임졌고,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 대가로 되돌릴 수 없는 허리 통증을 얻었고,
지금은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는 상담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문득 돌아보니, 내 인생에 내가 없더라고.
난 아직 젊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10대부터 8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그들 삶의 공통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10~20대엔 '나'를 몰라서, 삶에서 내가 빠져 있고
30~40대엔 '나'를 조금 알아도, 삶에 치여 내가 없고
50~60대엔 '이제 좀 나답게 살 수 있겠지' 싶었는데
오랜 시간 잊고 지낸 ‘나’와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고
70~80대엔 어느 정도 깨달았지만, 이젠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를 비워둔 채 산 삶은 바로 잡지 않으면
평생 되돌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나'를 삶의 중심에 두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
self-talk (자기 대화)에 귀를 기울여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에게 말을 많이 건다.
"아, 왜 이렇게 했지?”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같은 비난의 말.
"오늘 하루 잘 즐기고 만끽했어,”
“난 충분히 잘했어"
라는 따뜻한 말.
어느 말을 더 많이 했는지 자세히 들어봐야 한다.
이렇게 ‘나’만의 자기대화를 인식하고,
좀 더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는 훈련은
자기존중감을 회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며,
‘나’ 답게 사는데 큰 역할을 해준다.
두 번째는,
self-care (자기돌봄)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 가져보는 거다.
내게 맞는 수면시간을 지키고,
좋아하는 향을 맡으며 느긋하게 샤워도 해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처럼
오로지 ‘나’를 위한 것들을 위해 시간을 내는 거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나'를 돌보는 일이다.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나'에게
휴식을 선물하면서 '나'를 되찾고,
'나'와 더 가까워져 보는 거다.
마지막은, self-reflection (자기성찰).
내 삶의 방향을 한번 돌아보고 정리해 보는 시간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를 써보는 것이다.
종이에 나의 감정을 기록하고,
어떤 순간에 내가 무너졌고,
무엇이 나를 살렸는지 정리하면서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걸 연습할 수 있다.
아침 5분, 밤 5분이라도 괜찮다.
나를 위한 시간이 쌓이면,
나로 가득한 삶이 만들어진다.
나를 되찾는 첫걸음이 되어줄 이 세 가지, 꼭 기억하길.
1. Self-talk 자기대화
2. Self-care 자기돌봄
3. Self-reflection 자기성찰
우리는 모두,
내가 없는 삶이 아닌
‘나’로 가득 찬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났으니.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