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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시스템 밖의 혼란

by 전민교

"10년 만에 졸업하게 됐어, 축하해!"


아론은 우리가 ‘졸업’이라고 부르는

치료 종결 단계에 도달한 내담자였다.


정신병적 증상으로 길거리 생활을 하다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온 지 어엿 10년,

그는 조현병으로 인한 환청과 환각에 맞서

약을 성실히 복용했고,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트렌지셔널 하우징*에서도 이웃들과

잘 지내며 점점 건강한 일상을 회복해 갔다.


*트렌지셔널 하우징: transitional housing; 영구임대주택으로 가기 전 머무는 임시 주거지


그리고 마침내,

10년 만에 그는 우리가 함께 정한

치료 목표를 전부 달성했다.


SSI*를 받고 주택바우처*까지 배정받았을 때,

그는 두 딸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며

좋아했던 정원 가꾸기 일을 부업 삼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SSI: Social Security Income; 장애인 및 저소득층들이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받는 현금


*주택 바우처: Section 8 Housing voucher; 장애인 및 저소득층들에게 정부가 집세의 일부를 대신 내주는 임대 보조 프로그램


우리가 연결해 준 그 지역 상담 클리닉도 있었고,

모든 준비는 되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석 달 만에 돌아왔다.


상태가 이전보다 더 나빠진 모습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아론은 독립적인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스스로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경제적인 지원이 있고,

약도 꾸준히 챙겨 먹는다면,

이제는 완벽히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외적으로는 그는 자립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정부 지원도 있었고, 딸들도 근처에 살고,

그 지역 상담 클리닉과의 연결도 되어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돌아온 이유는

그런 외적인 조건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심리적 준비’였다.


10년 넘게 시스템 안에서 살아오며

형성된 루틴, 관계, 익숙함에서
한순간에 빠져나와야 했던 그는
실은 자신이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걸
홀로 남겨진 집 안에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혼자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자유’가 아닌 ‘혼란’과 ‘두려움’이 된 것이다.


낯선 이웃들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서로를 이해해 주던 그곳 사람들 없이

그는 금세 고립감을 느꼈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정신과 약 복용도, 상담도 멀리한 것이다.


그가 원하던 졸업,
그토록 바라던 독립은 결국

그를 다시 이곳으로 데려온 셈이었다.


우리는 내담자가 치료 목표를 달성하면

‘졸업했다’고 말한다.

축하도 하고, 응원도 한다.

마치 어떤 끝에 도달한 것처럼.


하지만 회복은 직선이 아니었다.


한 번 나아갔다고 해서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사실 ‘졸업’이라는 말속엔

상담사들의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다.

"이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겠지."

"정말 이만큼 회복돼서 다행이야."


그 기대는 때로는 내담자보다

우리 자신을 위한 확신이기도 하다.


아론의 복귀를 마주한 나는

뭔가 실패한 기분에 괴로웠다.


그렇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다시 배웠다.


정신 건강 회복은 종결점이 아니라,

여정이라는 것을.
자립은 ‘혼자서 잘 산다’는 상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온 아론은 실패한 게 아니다.
그는 오히려 진짜 자립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립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을.


나는 아론에게 말했다.
“잘 돌아왔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면 돼. 이건 실패가 아니야.’


다시 한번, 회복은 곡선이다.

그리고 그 곡선을 따라 걷는 우리 모두에겐,
다시 돌아와도 괜찮은

‘어딘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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