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의 연애를 마치고
“그 사람 없이 난 아무것도 아니야.”
단정한 셔츠, 조용한 말투.
나일이 상담실 문을 열고 처음 내게 건넨 말이다.
“13년을 만났거든.
그녀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게 너무 고마웠어.
근데 어느 순간,
우리 관계 안에 내가 없더라고.”
그는 매일 아침,
여자친구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녀의 기분이 괜찮은지 살피고,
그녀의 입맛에 맞게 커피를 탔다.
음식 메뉴, 여행지, 대화 주제까지
기준은 늘 그녀였고, 늘 걱정했다.
‘혹시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13년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그녀가 화를 내면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사과했다.
“그냥… 화가 풀리면 나도 편하니까.”
잠시 침묵하더니,
그는 마치 처음으로 털어놓듯 말했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
그래야 관계가 유지된다 믿었거든.
근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 나는 대체 뭘 좋아하지?”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관계 안에서,
너 자신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
그는 잠시 숨을 들이켰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럼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우고
상대에게 과하게 맞추는 걸,
공의존(共依存; Co-dependency)이라고 한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나를 없애면서까지 상대를 붙잡는 관계’이다.
“언제부터 그런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연애 초반부터 그랬어.
‘좋은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컸거든.
그녀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생각도 했고.
그녀 또한 나에게 의지를 많이 했으니
그걸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어.”
우리는 내러티브 치료(Narrative Therapy)를 시작했다.
내러티브 치료에서는
‘문제’를 사람과 분리(externalizing)해서 본다.
즉,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믿어온 이야기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접근이다.
나는 그의 ‘공의존’에게
이름을 붙여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공의존 씨’랑 대화를 해보자.”
그 순간부터 우리는,
‘공의존 씨’를 제 3자처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공의존 씨는 너의 인생에 어떻게 나타났어?
– 이 분이 제일 힘이 셀 땐 언제야?
– 이 분하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싶어?
질문을 듣고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싸움과 구박이 많았던 집.
그는 사랑을 원했지만,
받은 기억은 거의 없었다.
“사랑받고 싶었어.
나만 잘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어.
내가 참고 맞추다 보면..
언젠가 날 이뻐해 줄 거라 믿었어.”
사랑이 늘 고팠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늘 불안했고,
그 두려움이 공의존을 점점 키웠던 것이다.
내러티브 치료를 통해
그는 ‘공의존 씨’를 자신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패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
이 과정을 ‘재작성(re-authoring)이라고 한다.
그가 쓴 새 문장은 이랬다.
“나는 더 이상 사랑받기 위해 나를 없애지 않는 사람이다.”
이건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 후,
그는 헤어진 뒤 처음으로
홀로 주말을 보냈다.
무슨 영화를 보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세심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에겐 그게 새로운 챕터였다.
‘우리’ 없이도 괜찮은 삶.
‘나’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삶.
“13년 만에 혼자라서 외롭긴 한데,
좀 후련하기도 해.”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랑 연애해 보려고.”
공의존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얼굴로 찾아온다.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억지로 맞추려고 하고,
계속 눈치를 보며 살았던 적이 있었지 않았을까.
사랑받기 위해
나 자신을 조금씩 지워본 적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거다.
그렇다면 이제,
조용히 ‘공의존 씨’와 이별할 차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나는 누구와 있을 때,
가장 나답게 숨 쉬고 웃을 수 있을까?”
답은,
아마 이미 우리 안에 있을 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