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하지 않는 법에 대하여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온다.
우울, 불안, 공황, 트라우마,
자존감 문제, 관계 갈등, 그리고,
자기혐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해서’ 문을 두드린다.
겉으로는 당당해 보이는 사람조차
속을 들여다보면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으로 뼛속까지 무너져 있다.
헤일리도 그랬다.
간호사가 되겠다고 밤을 새워 공부했고,
시험에 붙어 원하는 병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병원은
그녀의 예민한 감정을 감당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적응을 못 해 그만뒀다.
퇴사 후 몇 달간은 아예 사람도 안 만나고
집 밖을 일절 나가지 않았다.
그녀를 상담실로 이끈 건
딸의 은둔생활을 못 견딘
그녀의 부모님이었다.
소파 끄트머리에 겨우 걸터앉은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무 싫어.
예민하고, 소심하고,
사람 눈치 보느라 지치고...
이런 내가 진짜 죽을 듯이 싫어.”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여기 와줘서 고마워.
혹시 바라는 게 있다면 편하게 말해볼래?”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툭 내뱉듯 말했다.
“성격을 싹 다 뜯어고칠 수 없을까?”
나는 말했다.
“다시 태어나야지, 그럼.”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그럼 포기하라는 거야?
나는 내가 너무 싫단 말이야!
죽고 싶진 않지만,
사는 게 지옥 같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던
그녀의 눈을 보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헤일리,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어.
지금의 나를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바꾸려는 노력만 할 수 있어.”
나는 이어서 말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을 싫어할 수 있어.
내 안에 있는 ‘자기혐오’는
여전히 남아 있을 테니까.
나는 네가 현재의 너와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순 있어도,
너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줄 순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그게 괜찮다면 다시 와.
아니면, 돌아오지 않아도 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상담실을 나섰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성격을 바꾸지 않아도
나랑 잘 지내는 방법...
배우고 싶어서 왔어.”
그날부터 우리는
‘생각의 전환’을 연습했다.
“상사 지적에 쉽게 상처받는다고 했지?
그건 작은 칭찬에도 진심으로 반응하는
따뜻한 사람이란 뜻이기도 해.”
“스스로 게으르다고 했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더 쉽게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거지.”
“예민해서 문제라고 했지?
그건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줄 아는
섬세함이 있다는 거야.
환자들 입장에선 고마운 간호사이지 않을까?”
성격은 바꾸지 않아도 된다.
다만,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된다.
싫은 나를 긍정적으로 다시 보는 법.
그게 자기혐오를 다루는 첫걸음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개선될 수는 있다.
헤일리도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고,
때로는 자기혐오에 깊게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안다.
그 감정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물
필요가 없다는 걸.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그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는 방법을
그녀는 조금씩 익히고 있다.
어느 날 헤일리는 내게 말했다.
“요즘은 나랑 있으면, 뭐랄까,
좀 짜증나는데 보다 보면 귀여운
친구랑 같이 사는 기분이야.
얘랑 평화롭게 살아보려고.”
다른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뽑으려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니 모두 꽃이었다.
- 시인 나태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