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상담 현장에서 배운 것들
나는 미국에서 두 가지 상담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문 임상 심리 상담사,
LPCC(Licensed Professional Clinical Counselor),
또 하나는, 부부·가족 상담사,
LMFT(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그래서 개인 상담뿐 아니라,
가족이나 부부를 함께 만나는 일도 많다.
아이의 커밍아웃으로 멀어진 가족,
가장의 부재로 흔들리는 세 식구,
성생활로 고민하는 20대 커플,
남편의 외도로 상담실 문을 두드린 부부…
그중에서도,
이혼 직전의 부부들이 가장 자주 찾아온다.
그날 내 앞에 앉은 프랭크와 줄리아처럼.
“이번엔 진짜 이혼할 것 같아.”
마주 앉은 두 사람은 40대 초중반.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고,
그중 둘째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줄리아는 둘째를 낳은 후,
깊은 산후 우울증을 겪었고,
프랭크는 잦은 이직으로
불안정한 수입에 시달렸다.
반복되는 생활고에 그들은 지쳐버렸다.
다툼은 반복됐고, 감정은 메말라갔다.
그러다 마지막 희망처럼 상담실을 찾은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오래 들었다.
그들은 분명,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근데 왠지, 전달이 되고 있지 않았고,
그게 갈등의 원인임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에게 숙제를 내어주었다.
그건 바로,
'사랑의 언어 테스트(Love Languages Test).'
이는 5가지 사랑의 언어 중 어떤 것이
나의 '사랑의 언어'인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이며, 30년 넘게 부부 상담을 해온
게리 채프먼이 만든 개념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는 고유한 방식이 있다고.
1. 인정의 말(Words of Affirmation):
"사랑해", "고마워" 같은 따뜻한 말
2. 함께하는 시간(Quality Time):
오롯이 함께 보내는 시간
3. 선물(Gifts):
마음을 담은 물건
4. 봉사(Acts of Service):
행동으로 돕고 챙기는 사랑
5. 스킨십(Physical Touch):
손잡기, 포옹, 몸의 온기
다양한 부부들을 만나면서
그는 비슷한 갈등의 패턴을 발견했고,
대게 부부들이 서로에게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었음에도,
각자의 방식이 다르게 때문에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 공백이 생겼다고 한다.
즉, 각자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할 때
부부간의 오해가 줄고 관계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프랭크와 줄리아의 결과는 이와 같았다.
줄리아는 '스킨십 (Physical Touch)',
프랭크는 '봉사(Acts of Service)'.
“나는 힘들어하는 와이프를 위해
매일 요리하고, 설거지도 다 해.
아이들 육아도 내가 도맡아서 하고.”
프랭크가 억울한 듯 말했다.
“난 그저 남편의 포옹 하나,
자기 전 입맞춤이면 너무 행복한데,
남편은 집안일 끝나면
방에 들어가서 자기 전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
꼭 나랑 있는 게 싫은 것 같아."
줄리아는 눈물을 보였다.
들어보니, 둘 다 사랑을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전달이 잘 안 됐을 뿐이었다.
나는 프랭크에게 말했다.
“저녁 식사 전, 부인의 손을 잡고,
‘오늘 어땠어?’라고 묻는 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줄리아에게는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이 말없이 고쳐준 수도꼭지,
그게 ‘사랑해’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렇게 둘 사이의 다른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을 몇 달 동안 보냈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곤 했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나란히 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친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몰랐어. 이 사람이 이렇게 애쓰고 있는 줄.”
프랭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줄리아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랭크는 작은 노력을 시작했다.
퇴근 후, 휴대폰을 내려놓고
줄리아 옆에 앉아 그녀를 꼭 안은채
그녀의 하루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전 입맞춤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줄리아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우울함을
억누르기만 했다는 걸 인정하고,
정식으로 산후 우울증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프랭크에게 말했다.
“당신이 퇴근 후 아이들과 놀아줄 때,
나한테 진짜 큰 힘이 돼. 고마워.”
둘은 그렇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이 서툴렀고,
누군가는 마음을 꺼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을 ‘내 방식’이 아니라
‘당신의 언어’로 이해해 보겠다는
그들의 다짐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건 어렵다.
“내가 이렇게 하고 있잖아.”
“왜 몰라주는 거야?”
각자의 언어로 말하지만,
서로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번역이다.
여기서의 번역은,
내가 편한 방식대로가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의 언어(Love Languages)는
단순한 표현법이 아니라,
연결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 작은 기술은
관계의 방향을 아예 바꿔준다.
멀어졌던 두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마주 보며 웃는 그들 앞에,
그들 따라 웃는 아이들까지.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존중하며,
진정한 소통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담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했으며, 사례와 상황 역시 실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