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첫 책 표지가 나온 날,
엄마는 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책... 안 내면 안 돼?
아님 제목이라도 바꾸면 안 되겠니."
당신에게는 마주하기 어려웠던,
아픈 손가락인 내 청각장애를
제목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엄마 입장에선 불편했던 것이다.
엄마는 결국 지금까지도,
내 첫 책을 읽지 않았다.
출간 후 출연하게 된 라디오 방송도,
초대받았던 팟캐스트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멈춘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썼다. 더 열심히.
첫 책을 낸 지 석 달 만에 나는,
[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심리상담사 2]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는 열 편 정도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쓰다 보니,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 글들을 하나하나
나는 한 가지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됐다.
‘나는 왜, 심리상담사가 되었을까?’
나는 사실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다.
산만하고, 조급하고, ADHD 경향도 있다.
청력이 멀쩡했더라면 나는 아마,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들었을 거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고,
핵심만 뚝딱 듣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잘 안 들리니까,
오히려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입모양을 보고, 표정을 읽고,
눈빛을 해석하며, 말 너머의 감정에 집중했다.
무언가를 놓칠까 봐 더 집중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듣는 일에 진심이 되었다.
그렇게, 듣는 것이 직업이 되었다.
심리상담사의 핵심 역량은 결국 '듣기'다.
그 사람의 언어로, 그 사람의 속도로,
그 사람의 마음을 듣는 일을 한다.
내 청각장애는 그 훈련을 누구보다 일찍,
그리고 치열하게 하게 만들었다.
청각장애는 나를 밀어낸 적도 많았지만,
결국 나를 내 자리에 데려다주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LA에서 상담 일을 하고 있다.
잘 안 들려서 자막이 있는 미국 영화만
보다 보니 영어가 좋아졌고,
영어가 좋아져서 유학을 결심했고,
그 길 끝에 나는 상담사가 된 거다.
돌이켜보니 모든 시작은,
'잘 안 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핍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넓은 세상으로,
더 깊은 마음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청각장애가 내게 이 길을 열어주었다고.
나는 청각장애가 인도해 준 길 위에서,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마음을 돌보고 있다.
그래서 이젠 나의 장애가 부끄럽지 않다.
더 이상 감추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누군가의 내일에 작은 희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안녕하세요.
별밤 출판사에서 [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심리 상담사]를,
브런치에서 [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심리 상담사입니다 2]를 쓴 전민교입니다.
여전히 '작가님'이라는 호칭은 낯설지만, '상담사 전민교'보다 '작가 전민교'로 불릴 때 더 기분이 좋은 걸 보면, 이제는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아서 쓰다 보니, 어느덧 20화를 채웠습니다.
여전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번 작품 연재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올해는 제게 정말 특별한 해였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제 청각장애를 고백한 일이 가장 의미 깊었습니다.
아직 100퍼센트 자유롭진 않지만, 이제 겨우 30대인데 앞으로는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새로운 글로 금방 다시 돌아올게요.
그동안 궁금했던 점, 아쉬웠던 점, 응원이나 조언, 어떤 말이든 댓글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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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이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전민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