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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움파 파은

남의 행복에서 도파민 찾기

난 남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더라

by 파은


작년에 해쭈씨가 아이를 낳았다. 해쭈씨는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인데, 일상 브이로그나 요리 영상을 주로 업로드한다. 아무튼, 나는 해쭈씨의 쭈친(해쭈 구독자라는 뜻)답게 해쭈씨의 임신 발표부터 지금까지 영상을 잘 챙겨보고 있다. 물론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내게 해쭈씨의 삶은 이전보다 조금 더 미지의 레이어가 낀 모습으로 느껴지지만, 해쭈씨가 행복한 모습은 그대로라 좋다.


해쭈씨 영상을 꾸준히 챙겨보니, 육아 브이로그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자주 나타난다. 해쭈씨의 팬일 뿐, 육아 브이로그를 즐겨보는 건 아니라서 나는 그 영상들을 눌러보지 않는다. 다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거나,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임신 발표를 하는 영상은 눌러본다. 그런 영상을 보면 괜시리 나도 기분이 좋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또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도 늘어나는지라, 임신이나 육아 브이로그를 본다고 하면 꽉 막힌 몇몇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니가 애가 낳고 싶어서 그래. 딱히 그런 말에 열이 받지는 않는다. 결혼도 할 사람 생기면 하겠지. 애도 낳고 싶으면 낳겠지. 하는 그 정도의 미지근함으로 살고 있어서. 아기가 나오는 영상에 손이 가는 건, 거기에 행복한 모습이 있어서 그렇다. 아이가 낳고 싶어서가 아니라.


유튜브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인데, 나는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누가 웃거나 좋아하거나 기뻐하거나 감동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폭소하거나 벅차오르는 장면이 있으면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돌려본다. 댓글에 누군가 올려둔 타임스탬프를 찾아 몇 초도 안 되는 장면을 열 번 안 되게 반복 재생한다. 비디오 세상이었음 분명 귀찮아서 못했을 행동이다.


최근에 내가 유튜브에서 찾은 행복한 사람들은 이렇다. 기다리던 아기가 생겨 기뻐하는 부부.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 대회에 참가했다가 정식 무대 제안을 받은 개그 크루. 아프던 고양이가 수술 후 활발해진 모습을 관찰하는 집사. 원하던 갓챠를 손에 넣은 키덜트. 엄마한테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하는데, 사실 엄마도 함께 비밀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히키코모리. 긴 이혼 소송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새 출발 하는 브이로거. 합주에 쓸 악기를 고르며 깔깔거리는 아마추어들. 처음으로 대바늘 뜨개에 도전해 볼레로 가디건을 완성한 뜨개인. 외로움을 성장의 신호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 해외살이 한국인.


화면 속 그들의 행복은 대단하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하다. 계산이나 경쟁이 뒤에 없는 기쁨은 말갛고 또 뽀얗다. 나는 그 기쁨의 순간을 여러 번 톺아보며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곤 한다.


이게 대리 만족인가? 싶기도 하다. 그만큼 내 삶에 기쁨이 없나? 하기에는 맞다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 정도의 나날. 브이로그 속 그들의 나날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내 하루를 저렇게 깊이 있게 관찰해 준다면, 타임스탬프를 어디에다 찍어줄 수 있을지 잠깐 생각해 봤다. 내 눈엔 보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내 행복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내가 스쳐가는 짧은 표정을 놓치지 않고 몇 번이나 반복 재생하는 것처럼.


나를 즐겁게 해주는 유튜버들이, 또 가족과 친구들과 지인들이 다 알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하루가 평이하고 밋밋하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그들의 기쁜 얼굴을 안다는 걸. 그런 모습을 보면 내 기분도 좋아져서 자꾸 보고 싶다는 걸. 그러니까 내가 온 사람들의 행복을 빌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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