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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23. 2021

잘 지는 연습

사춘기아이에게 말 할때 하는 실수들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살며 문득 느끼게 되는 건, 부모는 진짜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어야겠다는 거다. 가끔 아이들 감정이 맥락 없이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눈앞에 뭔가 지나간 것처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부모가 보기에는 아이가 갑자기 성질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럴 때 넋을 놓고 있으면 별거 아닌 말 한마디 오해로 큰 싸움이 시작된다. 일단 부모는 그 상황에 판단을 보류하고 입을 닫는 게 중요하다. 괜히 그때 섣부른 말 한마디와 훈계, 충고를 보태면, 본전도 못 찾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어쩌겠는가. 사춘기 부모는 어차피 지는 존재다. 서천석 박사 말대로 사춘기 아이들의 부모는 잘 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아침에 바쁘게 준비하다 한껏 툴툴거리며 나간 아이들이 없는 빈집에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본다. 오늘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화가 났던 걸까. 그 짧은 시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급한데 스마트폰 충전이 잘 안 된다며 속상해하는 아이한테 나도 모르게 “꼭 니가 자주 만지는 충전기는 망가진다”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사실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얘기라 그 말에 아이가 화가 났을 거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다들 예민한 아침에는 입을 조심해야 하는데, 어쩌다 기름까지 부은 격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말들에 참 민감한 시기인 것 같다. 어른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말들에서 신기하게 그런 것들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내서, 내면의 폭탄창고 연료로 사용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그 모든 문제를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답이 없다. 왜 갑자기 급발진되고, 태도가 공격적으로 변한 건지 떠올려보면 그 최초의 원인은 항상 내 입에서 나왔던 사소한 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왜 그런 작은 걸로 화가 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생각을 고수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화가 나는 마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거다.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는 최소한 석유를 붓지 말겠다는 다짐은 몇십 번이고 할 필요가 있다. (그걸 제대로 못 했던 감정적인 난 솔직히 후회할 일들을 너무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이미 어른이 된 난 집에서 누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같이 사는 남편이 매번 휴지통 방향에 대해서 지적해도 괜히 성질이 날 때가 있다. 아주 사소한 일들로 꼭 나를 비난하고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거다. 그런 걸 돌아보면 아이들이 집에서 자주 듣는 부모의 잔소리도 그런 느낌일 거 같다. ‘옷은 옷장에 넣자’,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맨날 옷을 벌려 놓는 거야’로 시작되는 비난형 의문문으로 말이 시작되면, 괜히 사소한 일로 자신을 힐난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 같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니” 등의 말로 이미 자신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당한 후, 그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비난을 당하면 하려고 했던 일도 하기 싫은 게 사람 아닌가. 어른들도 그런데 청소년 아이들은 오죽 그럴까 싶다. 


우린 습관과 반복에 의해 변하는 존재다. 교육이란 반복할 수 있는 마음을 먹는 것이고, 어떤 변화를 위해를 아마도 기분 좋게 반복이라는 걸 해볼 수 있을 거다. 부모 혹은 교사는 몇 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치 처음 그 일을 권유하는 사람처럼 새롭게 말하고 기다려 볼 수 있다. 심리학의 원리처럼 어떤 일을 했을 때의 기분 좋은 감정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도 저절로 그 일을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명령에 따라 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자발적으로 해서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 내적인 효능은 차원이 다를 테니까. 


솔직히 관계는 늘 어렵기만 하다. 아마 그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내가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더 많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 오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답을 빨리 내버리지 말고, 잠잠히 누군가의 입장과 감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잠시 한 사람은 멈춰 설 수 있고, 그 멈춤이 상대방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급한 일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덜 예민하고 자존감이 강한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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