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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May 18. 2021

'뭘 하며 살아야 할까'란 질문 앞에서

대안학교 진로주간을 보내며

요즘 딸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진로주간을 보내고 있다. 앵두는 어느덧 길학교(더불어가는배움터길) 5학년 대숲 졸업반이다. 장기인턴쉽 과정을 거치면서 졸업 후 앞으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한 달 동안 보내고 있다.


딸은 작년 봄부터 한국무용가라는 꿈을 갖게 됐고, 이번 인턴쉽 기간에 다양한 무용가와 예술교육가들을 인터뷰를 하며 무용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현재 레슨과 무용연습도 병행하고 있지만, 아이가 인터뷰하면서 어느 때보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 짐작만 하던 직업 세계의 희노애락을 구체적으로 듣고 느끼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큰 두려움을 걷어내고,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술가, 무용가라는 직업은 밥벌이보다 꿈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 그것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수많은 현실적인 고민을 보게 되기도 하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만나게 된 것 같다. 지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지만 역시 남겨진 안정적인 밥벌이에 대한 고민, 긴 시간 전력으로 달려왔지만 노력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좁은 예술계의 큰 벽에 진절머리가 나는 순간들, 전공으로 돈을 벌 만큼 벌고 있지만 정말 이게 내가 무용을 전공하며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지 질문하게 되는 순간을 보게 됐다. 아마 이런 질문들은 예고를 졸업하거나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있다고 해도, 십 년 정도 지나서야 하게 될 고민이었을 텐데… 이런 시간을 줄 수 있는 길학교의 사려 깊은 교육과정과 선생님들의 정성이 참 감사할 뿐이다.


지난 주에는 학부모들과 줌 회의를 통해 다른 학생들의 장기인턴쉽 과정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앵두처럼 어떤 주제를 갖고 그 분야 전공하시는 분들과 인터뷰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특정한 일을 하는 조직에 들어가 그 분야의 일을 직접 체험해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자동차, 디자인, 사진, 마을, 제삥 등 관심 분야가 다양한 만큼 만나는 사람들도, 경험하게 되는 것들도 다채로웠다. 지금 활동하게 된 주제를 꼭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내가 관심 있는 것들로 세상에 문을 두드려 보고 졸업 이후 진로를 예행연습처럼 타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 했다.


청소년들이 현재 진로에 대해 가진 고민들이 깊어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아이들은 졸업 이후 독립과 밥벌이를 염려하면서도 동시에 의미 있는 삶을 생각했고, 내가 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결국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보게 됐다. 일을 찾아서 하는 배움의 기쁨과 보람도 알게 됐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녹취하며 다시 들을 때 들리지 않았던 소중한 말들이 마음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시간도 경험하게 됐다. 좋아하는 것들을 보기 위해 감수해야 할 많은 일과 과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들의 봄이 참 치열했고, 속 시끄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미래의 일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일찍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고, 막연한 꿈 앞에서 진짜 꿈만 꾸지 않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해보고, 세상 밖으로 나와서 행동할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참 의미 있었겠다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어떤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될까? 이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 … 

사실 이런 질문들이 수학 문제보다 더 청소년들에게 다급하고 실존적인 질문들일 거다. 하지만 중학교 다니면서 고등학교 갈 걱정을 하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대학교 갈 걱정을 하고, 막상 대학에 가서는 취직할 걱정을 하랴, 이런 중요한 질문들은 우리 삶에서 늘 유예된다. 물론 어른이 돼서도 이 질문과 고민은 끝나지 않겠지만, 청소년기에 이 질문이 시작된다면 삶이 조금 더 여유롭고 풍요로울 것 같다.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경험을 해보면서, 미래의 시간 앞에서 조금은 덜 두렵게, 조금은 더 용기 있게 삶을 살아낼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이 과정을 겪어내며 어쩌면 꿈이 꼭 그렇게 대단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지. 많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목표가 진짜 내가 원하는 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간일지도 모르지. 꿈이 꼭 어떤 직업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꼭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지. 

그 모든 질문도, 그 모든 시도도, 그 모든 과정도,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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