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의 청소년기 일상을 바라보며
어젯밤 우리 집 풍경. 18살 딸은 어제 사람들 많이 만나서 신이 났는지, 방에서 늦게까지 친구와 수다를 떨며 깔깔거리고, 16살 아들은 내일 수행평가 준비한다며 침대에서 뭘 바쁘게 적고 있다. 늦게 온 남편이 집안 풍경을 보더니 “앵두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재밌게 사는구나. 요즘 참 보기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지나가듯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딸의 삶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인다. 비록 무용 연습한다고 종아리가 팅팅 붓고 계단도 제대로 못 오르지만,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는 사람이 가진 생동감이 느껴진다.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어른과 친구들이 있고, 그 안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그때그때 하면서 에너지를 받으며 사는 게 느껴진다. 남자친구 따위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삶 속에 참 다채로운 즐거움이 있다는 게 얼굴에 보인다. 2년 전 폭풍처럼 우울한 시간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다. ‘살다 보면 사람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온다’고 과거의 딸한테 미리 스포를 하고 싶을 지경이다.
뭐 그렇다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삶이 딱히 불행한 건 아니다. 가끔 운동장에서 공차며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고, 시간이 생겨 그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워 보인다. 중학교 1학년 때보다 아이들도 조금씩 크다 보니, 반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성숙해진 것 같아 다행인 것 같다. 그런데 확실히 일반 공교육 과정의 삶이 조금 재미없긴 하다. 매일 학교 수업 듣고, 또 학원에 가서 영어, 수학 공부하고, 시간이 남으면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삶이 반복된다. 이 틀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만나는 사람도 똑같고, 새로운 일들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사실 둘째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안정적인 걸 좋아해서 이런 쳇바퀴 돌듯 똑같은 삶에 별 불만이 없는 거지,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친구들이 이런 삶을 6년 동안 살게 되면 많이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이상하게 한국 중고등학교에서는 예전보다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분명 시험 등수가 따로 나오지 않는데도 아이들 스스로 성적으로 친구들을 놀리기도 하고, 교사들도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과 전화 상담할 때 성적 이야기만 하실까?).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간단하게 공식으로 답을 풀 수 있는 시험문제는 더 복잡해졌고, 중간 기말고사만 보던 학교에서는 몇 주에 한 번씩 과목별로 수행평가까지 봐야 한다. 거기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은 3주에 한 번만 등교하니, 오랜만에 학교에 가도 폭풍 수행평가와 시험만 연속으로 본다. 학교 진도도 따라가기 벅차니 아이들 스스로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이 나오고, 솔직히 요즘은 학교 수업에 다니기 위해서 따로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 같다(어느덧 대안학교에 다니는 딸 교육비와 아들 학원비가 맞먹고 있다). 그나마 예전 같으면 학교에서 유일하게 즐길 수 있었던 운동회, 소풍, 축제 같은 야외활동마저 사라지면서, 그야말로 청소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한 권리 같은 것들도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청소년기는 참 에너지도 많고 창의력도 폭발할 땐데, 관계도, 경험도, 외부도 없어져 버린 느낌이다.
어제는 8시 넘어 집에 온 아들이 하루에 수행평가 6개를 봤다며, 마지막 7교시에 체육을 하는데 그렇게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너무 아이가 집에서 손 까딱도 안 하고 있는 게 신경 쓰여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입 밖에까지 튀어나왔는데, '너도 힘들었구나' 싶어 설거지하면서 꾹 눌렀다. 오랜만에 학교 가서 하루 종일 시험만 보다가 마지막 시간에 체육만 해도 저리 좋은데,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매일 스마트폰과 게임만 한다는데, 사실 지금과 같은 입시교육에서는 애들이 돈 안 들이고 스트레스 풀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재미있고 신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날 기회도 시간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즐거움은 일단 대학 가서 다 누리면 된다고 하지만, 분명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삶의 기쁨이 있을 텐데, 뭔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다 함께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사춘기 아이들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 발산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텐데, 어디에 그런 것들을 쏟아붓고 있는지 모르겠다. 춤추는 딸이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춤을 추면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어. 일반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춤을 출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라고. 그러고 보니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엄청 신경 쓰던 딸이 어느 순간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게 보인다.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고 편안하게 드러내니, 좋은 친구와 선생님들과 만나 솔직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고, 관계 안에서 느끼는 안온한 행복을 아이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부 검열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 어쩌면 예술이 참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직접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야기에, 어떤 몸짓에, 어떤 노래에 자신의 분노와 슬픔, 좌절, 외로움의 감정을 대신 쏟아 넣을 수도 있겠구나. 내면에 계속 쌓여만 왔던 묵은 감정들을 가상의 대상에 쏟아놓고 나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를 만나고, 타인과 묵은 감정의 필터 없이 정직하게 만날 수도 있겠구나. 여러 가능성들이 보인다.
비가 온종일 내리다가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이 반짝이는 날들이 요즘 반복된다. 가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이 요즘 날씨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해 화를 내다가도, 다른 걸 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기분이 풀려서 다시 말을 건다. 청소년기 아이들이 그 다른 걸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마음에 차오르는 억울함이나 분노든, 기쁨이나 신남이든, 쌓아두고 움츠려있지 말고 더 많이 표현했으면 좋겠다.
비가 오고 햇살이 비치는 날씨의 반복 속에서 마음도 자라는 거겠지. 나도 그 감정과 기분 그대로 알아봐 주고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좋은 농부같은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