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un 07. 2021

파도가 오면 잘 뒤집힐 수 있겠지

프리랜서 엄마의 월요병 퇴치주문

'나 잘살고 있는 걸까' 가끔 그런 생각이 스며들어 올 때가 생긴다. 

이게 워커홀릭이 일상화된 현대인의 질병인지, 아니면 중고등학생 남매 키우랴 월 초가 되면 매번 은행잔고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내 생존 우선적인 삶 때문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난 요즘 꿈이 아니라, 일단 매달 채워나가야 할 숫자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INFP 성격유형이 그렇게 살기 쉽지 않은데, 사람이 살다 보면 초능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그렇게 살게 되는 순간도 생기는 것 같다.  


요즘 가벼운 심리학 책을 보면서, 어떤 정신적인 불안정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느끼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완수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먼 미래를 걱정하거나, 쓸데없이 과거의 나쁜 기억과 서사에 갇혀있지 말고, 일단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위해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라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사람이 어떤 상황 때문에 아무리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불안해져도 일단 지금 당장 다른 곳에 주의를 집중하거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면, 그런 감정들이 옅어지게 되고 기분이 환기된다는 걸 안다. 감정이 격해질 때 15초 숫자를 센다든가, 사탕을 물고 최대한 맛에 집중하라는 모든 팁들도 아마 이 흐름에서 나온 이야기였겠지.      


하여튼 요즘 살짝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조금 한가한 월요일 즈음이 되면 삶의 복잡함들이 엉켜서 밀려올 때가 생긴다. 물론 그럴 때 미래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착착 수행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오늘은 프리랜서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월요병의 날이다. '아이들이 독립하게 되는 이 몇 년의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란 고민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월요일.     


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쩌면 내 인생의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걸, 17년 전 포항의 시멘트 집에서는 진짜 까마득하게 몰랐던 것 같다. 분명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삶의 방향들이 있었고, 이 정도면 일 인분의 삶을 그럭저럭 잘 데리고 살아갈 거로 생각했는데, 삶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갈지 진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문득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타인은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참 다르지만, 때론 큰 기쁨을 주기도 하고,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가장 관대한 사람. 삶을 온통 뒤죽박죽 만들기도 하고, 일상을 반짝이게도 하고, 뭔가를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아마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내 삶에 턱턱 다가올 때, 분명 고민하지 않아도 열심히 헤엄을 치게 될 거야. 그렇게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영이나 자전거처럼 몸으로 익힌 것들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파도가 오면 잘 뒤집혀서 바닷물을 좀 마시고, 물결이 잠잠할 때는 한동안 멍하게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도 필요할 거야. 

오늘도 하나를 해결했으니, 아마 내일도 하나를 해결하게 될 거야. 그렇게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시간의 파도가 훌쩍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놓겠지. 그때쯤이면 파도타기 정도는 즐길 수 있으려나. 스무 살 때보다 마흔 즈음 내가 더 편한 것처럼, 아마도 마흔의 나보다 예순의 내가 더 삶을 가볍게 건너갈 수 있겠지. 

작가의 이전글 난 엄마가 먹인 것들의 집합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