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생각했다.
김기사, 그러니까 내 남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같은 집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당신의 어린 시절 꿈이 뭐였어?”라고 묻지 않았다.
우리가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어른이었고,
영어유치원 노란 셔틀버스를 몰다 지금은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낮과 밤의 경계를 몸으로 통과하며 살아가는 사람.
나는 그런 그에게 꿈을 묻는 질문 자체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른의 삶’이란 원래 그렇게 고단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오늘, 이상하게도
그의 어린 시절 꿈이 궁금해졌다.
그가 가장 행복했던 얼굴은 언제였을까 생각하다 보니,
그 질문이 저절로 떠올랐다.
논밭을 뛰어다니던 가장 빛나던 얼굴
김기사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했고, 이사를 자주 다녔고,
서울 시내 판자촌 집 문을 열면 바로 개천이 흐르던 곳.
학교에서 공부는 늘 뒷전이었고
누군가 챙겨주는 어른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말할 때 그의 표정이 가장 환해진다.
“그때 말이야, 진짜 좋았어.
하루 종일 친구들이랑 논밭을 뛰어다녔지.
수박 서리, 참외 서리… 밤엔 개구리 소리 들으면서 놀고.”
그 순간 그의 얼굴은
가난했던 소년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던 아이가 된다.
가족의 돌봄도, 미래 계획도 없던 시절.
그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아마
넓은 논밭과 맨발, 그리고 뛰어다닐 수 있는 하루였던 것 같다.
수렵과 채집, 본능이 이끄는 삶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치고
김기사는 자연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룬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닮은 손재주 때문인지
뚝딱뚝딱 만드는 일에 능하고,
손으로 하는 일에는 이상할 만큼 에너지가 붙는 사람이다.
25년 캠핑을 다니며 알게 된 건,
그에게는 채집 본능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밤을 주워도 지치지 않고,
감나무 위에 매달려 감을 따는 일도
솔방울 하나 줍는 일도
그에게는 놀이이자 열정이다.
온몸이 모기에 뜯겨도
“너무 재밌잖아”라며 환하게 웃는다.
딸과 나는 종종 농담을 한다.
“아빠는 원시시대에 태어났으면 1등 신랑감이었을 거야.
채집도 수렵도 탑티어였을 듯.”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넘기지만,
그 모습엔 본능이 반응하는 듯한 기쁨이 있다.
무언가를 찾고,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익히는 일이
그에게는 ‘재능’이자 ‘자유’에 가까웠다.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돼”
나는 가끔 묻는다.
이렇게 춥고 더운 날에 하루 종일 뛰어다니면 힘들지 않냐고.
김기사는 늘 심드렁하게 말한다.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뛰어다니지.
트럭 가득하던 짐이 싹 빠지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그 대답은 단순하지만 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일을 고통이 아니라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몸으로 사는 삶을 그저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
그런데 어느 날, 수능을 앞둔 딸이 밤잠을 설쳤다는 말을 듣고
김기사는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택배 처음 시작했을 땐 월요일 밤마다 잠이 안 왔어.
화요일이 무서웠지. 그 많은 짐을 언제 다 배송하나 싶어서…”
그 말 한 줄에
그가 얼마나 두려움과 긴장을 견디며 살았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
김기사가 딸에게 처음으로 ‘기대’를 품기 시작한 건
딸이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난 후였다.
그는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단 한 번도 공부하라거나 야단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딸이 자신의 기대만큼 치열해 보이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효림이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런데 왜 그렇게 몰아붙이는 거야?”
김기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의 꾸짖음은 사실
딸에게 자신의 삶을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한여름엔 더위 속에서, 겨울엔 얼음장 같은 새벽 공기 속에서
몸으로 일하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그 한 문장에 다 실려 있었다.
그가 딸에게 바라던 건
‘성공’이 아니라
덜 고단한 삶이었다.
호두를 안고 웃는 하루 속에서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김기사의 삶은 ‘꿈의 형태’만 조금 다를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몸으로 부딪히고,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땀을 흘리고,
저녁이면 고단한 몸을 소파에 기대어 잠드는 삶.
그런 일상 속에서
그는 어릴 적 논밭을 뛰어다녔던 소년처럼
어쩐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아닐까.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의 꿈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하지만 그는 오늘도 반려견 호두를 품에 안고 베실베실 웃는다.
6kg 남짓한 작은 생명체가
그의 하루를 이렇게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의 꿈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작은 삶 속에
이미 다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을 건사하고
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처럼 고단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가장으로서, 아빠로서의 꿈을
조용히 꾸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김기사가 그의 삶으로 증명해 낸
가장 단단하고도 위대한 꿈의 형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