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이 함께 서 내려간 유서
11월 이맘때가 되면, 집 안 가득 김장 냄새가 찼습니다. 김장을 하고 나면 아버지가 유독 좋아하시던 갓김치와 파김치를 따로 담가 따끈한 밥과 함께 가져다 드리곤 했지요. 파김치에 밥을 싸서 한 숟갈 크게 뜨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오늘도 김치를 담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김치를 가져다 드릴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문득, 삶의 굵직한 사건들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계절의 풍경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더욱 절감합니다.
자연스레 김범석 종양내과 교수의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다시 펼쳐 듭니다. 매번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합니다.
"자, 당신의 남은 날은 ○○일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이제 고스란히 제게 남아, 앞으로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저는 다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2019년 6월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폐암 말기였습니다. 주치의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날카롭게 제 심장을 베었습니다.
"길어야 3개월입니다. 그 안에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의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갈 때, 제 마음속에는 두 개의 인격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당장이라도 아버지 품에 안겨 울고 싶은 ‘딸’의 감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만 한다는 '연구자'의 냉철한 이성이었습니다.
병실로 돌아가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 얼굴을 살피는 아버지에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거짓말을 했습니다.
"식사도 잘하시고, 항암 부작용도 없으니 걱정 말래요. 금방 좋아지실 거예요."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저는 그날부터 몇 날 며칠을 불면의 밤으로 보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생애를 어떻게 인식하고, 앞으로 남은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갈지—이것이 제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였습니다.
당시 저는 아동가족학 박사과정 4학기였고, 마침 ‘생애 구술사 연구 방법론’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제 학문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 구술의 시간이 곧 아버지의 삶을 영원히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요.
저는 과제를 핑계 삼아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한 인간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온 67년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달라고요. 아버지는 뜻밖에도 아주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평생 당신의 삶을 ‘보잘것없는 인생’이라 여기며 살아오셨던 아버지가, 박사과정 딸의 연구 주제가 된다는 사실에 소년처럼 들떠 계셨습니다.
면담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면담이 진행되는 병실 침대 맡은, 잠시나마 ‘아픈 아버지’의 공간이 아닌 ‘주인공’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으셨고, 저는 녹음기를 들고 연구자로서의 중립성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아버지의 격정적인 고백 앞에서는 숨 막히는 슬픔에 딸로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이야기에서 시작해 학창 시절, 찬란했던 황금기, 그리고 뼈아픈 후회까지 인생의 굽이굽이를 함께 걸었습니다.
아버지는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를 돕겠다며 재래식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도맡아 하셨다고 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머니가 밭일하고 오시면 물 떠 드리고, 설거지하고 그랬지. 어머니 돌아가시던 날, 침대 밑에서 꼬깃꼬깃 모아둔 용돈 20만 원을 꺼내 주시더라. 막둥이 네가 마음에 걸린다면서..."
평생 어머니를 향한 효심을 잊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은 단순한 돈이 아닌, 당신의 ‘마지막 책임감’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 아버지는 농협 공채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셨습니다. 그 시절, 은행원이 된다는 것은 곧 '인생의 성공'을 의미했습니다. 아버지의 황금기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날의 풍경을 아버지는 한 편의 영화처럼 묘사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논에서 일하고 있는데, 저 멀리 길모퉁이에서 우체부 아저씨가 전보를 들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축 합격, 농협!' 그 전보를 받고 아버지가 일하다 말고 동네방네 소리치셨어. 우리 막둥이 은행 들어갔다고. 바로 돼지 한 마리 잡고 잔치를 했지. 고양군에서 멋지게 출발했어.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데..."
그 순간, 온 동네의 기대와 축복을 한 몸에 받았던 청년의 자부심이 60대의 병든 아버지의 얼굴에 다시 피어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늘 황금기일 수는 없었습니다. 사업 실패 후 단칸방 지하실에서 살던 시절, 사춘기였던 둘째 딸과 다투다 뺨을 때렸던 일은 아버지의 가슴에 평생 박힌 가시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을 이야기하며 자전적 저널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다 부질없는 짓들이었어. 내가 조금만 참고,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했으면 됐을 것을... 젊은 시절에 괜히 객기 부리고 교만 떨어서, 너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같아 늘 죄스럽다."
아버지의 후회는 단순히 '가족에게 미안한 감정'을 넘어, 본인이 추구했던 성공과 물질적인 욕망이 가져온 파국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습니다. 병상에서 행해진 이 구술사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세상과 가족에게 전하는 '참회와 용서의 요청'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을 네 글자의 한자어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유년기는 생(生), 청년기는 노(勞)와 희(喜) (일하는 즐거움), 중년기는 애(哀)와 락(樂) (슬픔과 기쁨의 교차), 그리고 지금 노년기는 병(病)과 사(死)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 은유적 표현은, 삶의 각 단계가 뚜렷한 의미를 지니고 순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단어는 바로 유수(流水)였습니다.
"한마디로 인생, 그 자체는 유수(流水)와도 같은 것이었다. 돌아보건대, 삶을 그렇게 아등바등 대며 앞만 보고 살아온 그 자체는 무엇이며, 그 종착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아버지의 저널 중)
이 깨달음 뒤에 아버지는 마지막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한 번 더 가는 것"이었습니다. 소박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마지막 약속으로 남았습니다.
비가 내리던 2020년 2월의 어느 날, 아버지는 끝내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예상보다 조금 더 오래 버텨주셨고, 마지막까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던 유산은 '돈'이나 '땅'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물질적인 것을 못 남겨주어 한탄하셨지만, 사실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더 거대하고 영속적인 것이었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 욕심부리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
그리고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제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네가 박사과정 밟는다는 소식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내 보잘것없는 인생 이야기가 네 연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기쁘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아버지 연구'라고 적힌 폴더를 조용히 엽니다. 녹음된 파일 속 아버지의 목소리, 자필로 쓰인 저널 속의 단어들은 멈춰버린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아버지의 영원한 가르침입니다.
잘 살아가는 일은, 잘 죽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 죽음이 끝이 아니라, 삶에게 건네는 가장 진솔하고 강력한 조언이라는 것.
이것이 아버지가 당신의 67년 인생 전체를 걸어 마지막 수업을 통해 제게 남겨주신 유일하고도 찬란한 유산입니다.
"어서 오라, 사랑스럽고도 달콤한 죽음이여,
고요하게 다가오면서,
낮에도, 밤에도, 모두에게, 각자에게,
더 빨리, 아니면 더 늦게 다가오면서,
이 세상 곳곳에 물결쳐라, 우아한 죽음이여.
고마워라, 끝없는 우주여.
삶과 기쁨을 위해, 진기한 사물과 앎을 위해,
그리고 사랑, 달콤한 사랑을 위해
다만 찬미하라! 찬미하라! 찬미하라!
차갑게 껴안는 죽음의 굳게 감긴 두 팔을 위해."
- 휠트 휘트먼, 「풀잎」, 1892
죽음이 삶에 관해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그 마지막 관문은 참으로 아쉽고 또 눈부십니다.
**이 연구는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인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제22권 21호에 「암 투병 중인 아버지 삶에 대한 생애사 연구: 폐암 말기 투병 중에 이루어진 면담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논문은 파일로 첨부합니다.
필자는 아버지가 남기신 삶의 기록과 구술 자료들을 단순한 가족사로 간직하는 것을 넘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여정을 학문적으로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