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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r 06. 2018

내 딸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딸들에게

#metoo #withyou

내 딸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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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아, 오늘 너는 용감했고, 정말 현명하게 잘 싸웠다. 잘했다!

어제 같은 반 남자 아이가 너의 등 뒤에서 “저 아이 키가 너무 작은데? 장애인이네”라고 말했던 일, 그리고 오늘 또 다시 그 아이가 너의 등 위에서 “장애인이야 쟤”라고 말 했음을 알았을 때, 그 두 번의 말을 함께 들었던 너의 친구와 함께 선생님에게 가서 “고발”한 일은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당당히 “저는 특발성저신장증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노라며 흘린 너의 눈물, 내 눈에는 진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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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딸아,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자는 어쩌면 모두 “특발성저신장증”인 상태와 같을 지도 모른다. “특발성 (idiopathic, 特發性)” 원인 불명 또는 불명확하다는 뜻이다. 본태성(本態性)이라고도 하지. 즉, "아무 문제 없는 상태" 인데 결과적으로는 비정상군에 속한다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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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던 이성주의가 시작하며 과학이 발전하고 지랄방귀를 끼던 시절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격”으로 존중 받은 적이 없었으며, 민주주의로 세웠다는 미국에서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 100년이 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민주주의 역사, 그 길이, 그 비율을 따져보면 여성의 권리는 매우 “특발성”인 것이다. 즉, “아무 문제 없는 개인”이지만 결과적으로 비정상군에 속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지난 50년 이래, 그래도 많은 공간이 생겼고 엄마도 너도 이제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숨 쉴 틈은 생겼지만, 아직도 우리 등 뒤에서 “저 아이 키가 너무 작으므로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그 사람들이 꼭 남자인 건 아니다. 같은 여자가 더 한 경우도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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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장애아”라고 놀렸다던 그 아이도 누군가에는 귀한 아들일 거다. 그러하니 오늘 너 스스로 그 아이를 찾아가 꼬집거나 때리며 분풀이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너희들끼리 해결하는 것 보다 공정하고 정당한 (최소한 그러리라 믿으며) 선생님에게 증거와 함께 알렸음이 옳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앞으로 나의 딸이, 그리고 세상의 “아무 문제 없는” 딸들이 소녀에서 여자가 되고 난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반복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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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딸아,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아.

언젠가 소녀에서 여자가 되는 날이 올 거다. 그 날을 미리 축복한다. 여자가 된다는 것은 우주의 한 부분을 몸 속에 숨기는 비밀과 같은 희열이며, 사랑하는 이와 몸으로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남자는 결코 느끼지 못할 수만 촉감의 파도와 수천만 개의 별빛이 온 몸에 떨어지는 행복을 경험할 것이다. 이는 여자로 태어남을 기뻐해도 되는 수백 가지 이유 중 하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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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여자가 되었을 때는 행복하게 많은 사랑을 하기 바란다. 너를 품은 남자를 (설령 여자라 해도) 진심으로 아끼며, 최선을 다해 애정하기 바란다. 다만, 내 딸아, 결코 너는 “안기지” 말아라! 너가 스스로 정성을 다해 그를 “안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너의 애정에, 너의 몸에 솔직한 사랑을 하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습관처럼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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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치 않은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너는 단지 걸어갔을 뿐인데, 너는 그저 뒤를 돌아봤을 뿐인데 벌어진 어떤 사고. 또는 어두운 밤길이 무서워 주저앉거나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괜찮다. 괜찮다… 다만 그런 날에는 이 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섹스는 가볍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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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섹스로 너를 구속하려는 “타인”은 너에게 그저 타인일 뿐이다. 잊어도 된다. 사고로 다친 너에게 손가락질 하는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이다. 버려도 된다. 그러나, 결코 스스로 “무겁고 버거운 섹스의 무게”에 짓눌려 너 자신을 구속하거나 자신에게 손가락질 하지 말거라. 섹스는 가벼운 것, 그러나 모든 관계가 그 값을 알아서 치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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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딸, 그리고 모든 “특발성” 딸들아,

삶의 이유 하나를 묻는다면, 언제나 나의 대답은 “행복”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출산으로 낳은 자식을 통해, 사랑하는 파트너를 통해 귀결되는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좋고, 인어괴수를 사랑해도 좋다. 너의 오늘 하루를 가득 채워줄 충만감, 그 행복을 쟁취하기 바란다. 그 꿈을 방해하는 사건과 사고와 사람이 있다면, 어린시절 6학년 3월 교실에서 “특발성저신장증”인 너에게 손가락질하며 “장애자”라고 놀렸던 아이를 고발했던 일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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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2살의 네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썼던 글처럼 “단지 힘들었을 뿐이다. 불행한 것이 아니다”임을 잊지 말기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me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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