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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r 11. 2018

한 걸음 내딛기 위해 필요했던 것

- 인체조각상의 역사

인간이 자신을 닮은 형상(形象)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인간 형상을 만들기까지 수만 년이 걸렸다.

이스라엘 언덕에서 발견된 ‘베레카트 람의 비너스(Venus of Berekhat Ram)’는 현존하는 공식적인 최초의 조각상으로 기원전 23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뒤로 간간히 ‘비너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작은 조각상들이 출토되었으나 현재 ‘조소 작품’으로 여기는 유물들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고대 그리스의 것들이다. 돌을 깎거나 투박한 청동상 정도를 제작하는 시간이 그 이후로 수천 년 더 이어졌다. 고대 그리스에는 제법 많은 인체상들이 만들어졌는데 모두가 마치 군인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땅으로 똑바로 내리고 있는 딱딱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5세기 중반, 처음으로 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 있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어마 무시한 ‘혁명’입니다. 단 한 발 앞으로 내디뎠을 뿐인데, 그제야 형상을 만들던 이들은 자유를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발을 내걷는 인체상을 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해부학적 지식이 동원되면서 점차 팔이 수직 상태에서 해방되었고, 목이 움직이고, 등이 휘어지면서 근육이 돌출하기 시작했다. 단지 한 걸음 내디뎠던 출발이 그 시작이었던 셈이다.


물론 당시 형상을 창작하던 사람들은 콘트라포스토의 혁명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콘트라포스토라는 말은 서유럽의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야 그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듯, 인간은 서서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스스로 찾아내려 고민하고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과학이 거듭 발전하며 재료와 기술이 개선되어 가던 조각 기술은 마침내 15세기 무렵,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에서 완성을 경험합니다. 오늘날의 3D 프린팅 기술로 뽑아낸 듯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완성은 동시에 허무를 가져오는지도 모른다. 혹은 ‘완벽한 재현’ 그 마저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겠다. 사실 ‘완벽한 인간 형체의 재현’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인간의 조각품들은 더 이상 “똑같이 재현”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과거의 추상적인 형태로 옷 입으려 ‘예술혼’을 강조하는 작품들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완벽한 모양새에서 흐트러지기까지는 이제 겨우 100년 채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미투(me too)’ 운동은 수천 년 만에 내디딘 첫걸음, 콘트라포스토를 닮아 있다. 이제 겨우 어렵게 내디딘 한 발, 그러나 이어질 수백 년 이후의 변화의 물꼬가 될 것이다. 첫 발은 어렵다. 힘들다. 그러나 그렇게 내디딘 이후 인체상들이 만끽했던 자유를 기억해야 한다. 물론 또 어느 시점에는 다른 변화가 생기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한 걸음, 이제 시작이다.



영화 Les Miserables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https://youtu.be/sydxV9eza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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