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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11. 2018

드가의 발레리나

-  몰랐던 추악한 진실

 그 추악한 진실

미국 최대 아트 정보 사이트 아티스티(Artsy)의 미술사 편집자, 줄리아 월코프(Julia Wolkoff)의 지난 10월 1일 자 칼럼 내용 일부를 옮겨본다. 그녀의 칼럼을 읽고 나니, 마치 이빨 사이에 껴서 안 빠지는 음식 찌꺼기로 답답한 기분이다. 그리고 묻게 된다.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선(善)”해야 하는가?

결과물로서의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창작자의 “의도”와 별개인가?

추함과 아름다움의 경계를 누가 정의하는가?



꽃 같은 튀튀(tutu) 복장의 어린 여성들을 주제로 한 약 1,500여 점의 회화, 판화, 드로잉 작품들을 남겼던 드가는 지금도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랑스 근대 화가들 중 하나다. 드가의 작품 속 여인들은 마치 6살 아이의 첫 공연 무대와 같은 설렘과 순수함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의 우리들로서는 충격적인 당시의 매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The Rehearsal of the Ballet Onstage, ca. 1874.

(…) 발레 공연은 오페라 공연의 서막 수준에 그쳤으며, 무용수의 노출된 각선미를 즐기러 온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눈요기 감이었다. 과거 엄격했던 발레는 이제 뒤틀린 카바레가 되어 선정적인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매춘은 발레리나들에게 현실이었다. 오페라하우스,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는 당시의 성 산업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을 정도다. 무대 뒤편에 자리한 무용연습실은 무용수들이 공연 전 몸을 푸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남성들의 사교 클럽의 장소이기도 했다. 돈 많은 남성 오페라 후원자들은 이 곳에서 비즈니스 및 사교를 위한 모임을 열었다. 물론 발레리나들에게 모종의 제안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뒤틀린 권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개는 빈곤층 노무자들의 여식이었던 어린 소녀들이 아카데미를 찾았다. 그렇게 발레단 소속이 된 어린 단원들은 “작은 생쥐들(petits rats)”이라고 불렸다. 그들 대부분은 주 6일 발레를 ‘노동’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

역사학자 로레인 쿤스(Lorraine Coons)는 “예술가인가 요부인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작은 생쥐들 (Artiste or coquette? Les petits rats of the Paris Opera ballet)”이라는 에세이에서 당시 명성을 날렸던 무용수들 그 누구도 매춘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The Dance Class, 1874. /  Little Dancer Aged Fourteen, 1878-1881.

(…)

드가가 남겼던 무용수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회화가 아닌 조각상이다. 왁스는 노안이 시작된 40대 중반의 그에게 적합한 소재였다. 실물 크기의 ‘작은 생쥐(petit rat)’를 묘사한 “14세 소녀 무용수(1878-81)”는 드가의 생애 중 단 한 번만 전시되었다. 이 조각상으로 드가는 큰 스캔들에 휘말렸으며 다시는 조각 작품을 선보이지 않았다. 


“작은 생쥐”로서 이 조각상을 위해 포즈를 취했던 소녀는 마리에 반 구뎀(Marie van Goethem)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녀 또한 당시 발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 산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상이 세상에 공개된 후 얼마지 않아 그녀는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결석이 많았다는 이유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그녀를 제적시켰던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빨래 근로자이자 창녀였던 어머니, 그리고 역시나 매춘을 일삼았던 언니의 삶을 답습했을 것이다. 


프랑스 발레 무용수들에게 삶은 잔인했다. 비록 드가가 무용수들을 성적으로 취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무정함은 다른 면에서 드러났다. 드가는 무용수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몇 시간씩 포즈를 취하게 했으며, 모델들은 뒤틀린 자세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는 무용수들을 “작은 원숭이 여자애들”이라고 부르며 “꺾인 관절”을 포착하려 했다. “내가 여자를 짐승으로 보는 경우가 너무 많기는 하지.” 그가 친구 화가 피에르 조르주 잔니오(Pierre Georges Jeanniot)에게 남긴 말이라고 한다. 


드가는 자비심 없는 고약한 성정의 사람이었다. 그는 미소지니스트(misogynist)였으며 당대의 성적인 규범에 있어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그의 동료들조차 그의 여성을 향한 적대감을 두려워할 정도였다.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풍부한 드가의 스케치와 감각적인 색채에 찬사를 보낸다. 예술 형식주의적 관점에서 드가의 무용수 작품들에 찬미를 보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감상에 그치면 고통과 학대를 받았던 소녀들이 보이지 않으리라. 조금 더 가까이 보라. 화가가 어떻게 발레의 저속한 책략을 잘라내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날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The Dancing Class, ca. 1870.

by Julia Wolkoff _ Artsy’s Art History Editor.



원문 링크: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sordid-truth-degass-ballet-dancers


"... Then I was young and unafraid
And dreams were made and used and wasted
There was no ransom to be paid


No song unsung, no wine untasted..."
.
I Dreamed a Dream - Anne Hathaway
https://youtu.be/86lczf7Bo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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