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 and 쑥 Dec 06. 2017

호찌민 안녕

#호찌민 마지막 식사 #동네 백반집 


오늘은 호찌민을 떠나 나짱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그런데 어젯밤 루프탑의 낭만이 가시지 않아 숙소에서도 맥주를 들이켰던 여파가 좀 있다. 별로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콜라맛 맥주가 이상하게 숙취가 있다. 얼큰한 국물이 당기지만 동네 식당에서 쌀국수나 한 그릇 하기로 한다. 한 번 와봤다고 익숙해진 길로 들어섰는데 첫날 밤에 보지 못했던 식당이 우리의 시선을 강탈한다. 쇼윈도 넘어 피쉬볼 볶음, 새우요리, 닭볶음탕스러운 요리, 오징어볶음 등이 펼쳐져있다. 생선조림도 종류별로 다양하다. 신기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 사장님이 혼자서 운영하시는 가게였는데, 원하는 종류의 음식을 몇 개 고르면 밥과 국, 야채를 주는 음식점이었다. 한국의 백반집과 비슷하다. 맘 같아선 진열된 모든 요리를 다 고르고 싶었지만 새우, 피쉬볼, 그리고 종류를 알 수 없는 생선조림을 주문했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서빙해주신다. 매뉴얼 교육으로 익힌 부담스러운 친절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친절이 몸에 베인 분 같다. 그런 분이 만든 요리라면 맛있을 수밖에! 피쉬볼은 예상했던 대로 어묵볶음과 비슷한 맛이었으나 의외로 생선 조림이 입맛에 맞았다. 해산물이 풍부한 나라이다 보니 생선 조리법도 다양하게 발전했나 보다. 반면 가장 먹고 싶었던 새우요리는 작고 질겨서 껍질을 벗기다 흰 티셔츠를 버리기도 했다. 가격은 둘이 합쳐 100,000동(한화 5,000원)으로 저렴하다.


우리 말고 다른 손님들은 근처 경찰서에서 일하는 공무원 한 팀, 외국인 관광객 1명, 그리고 현지인 몇 분들이다.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찾는 곳이라면 정말 맛집인가 보다. 만약 우리가 호찌민에서 보름살이를 했다면 쌀국수와 분짜가 질릴 때마다 종종 여기 와서 베트남 백반을 즐길 것 같다. 강추!


식당내부. 서있는 분이 사장님이시다.
먹음직스런 갖가지 요리들


#호찌민 안녕 #깨진 캐리어의 법칙


     

밥을 먹고 숙소에 오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공항에 나갈 시간이면 그치길 바라며 짐을 쌌다. 어? 신유의 캐리어 앞쪽이 부서져있다. 호찌민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깨졌나 보다;; 급하게 숙소 근처 베트남 서점에서 노랑 청테이프를 사서 캐리어 앞면을 덮어 응급처치를 했다.


짐을 다 쌌는데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공항으로 나섰을 때는 폭우로 변해 버스정류장까지 걷지도 못해 결국 택시를 탔다.(이번엔 정상적인 요금을 냈다.) 수속을 끝냈는데도 장대비는 계속돼 결국 비행기가 두 시간 지연되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섰는데, 항공사 직원이 나에게 ‘K1’으로 가보라고 한다. 어쩐지 아까부터 안내방송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 같더라니.......


영문도 모른 채 물어물어 K1으로 찾아갔더니, 한 여직원이 왜 이제 왔냐며 빨리 따라오라고 한다. 공항 직원이 데려간 곳은 수화물 싣는 곳이었는데 거기에 신유의 캐리어가 열린 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이 캐리어는 잠금장치 비밀번호까지 있다. 난감하여 신유에게 전화를 걸어서 캐리어 닫는 방법과 비밀번호를 물어보는데 옆에 서있던 직원이 급한데 뭐하는 거냐고 짜증을 낸다.


“사실 이건 내 캐리어가 아니야. 내 친구 거야. 그래서 내 친구에게 캐리어 비밀번호 물어봐야 해”


라고 설명해도 그녀는 계속 빨리하라며 답답하다는 표시를 팍팍 낸다. ‘에라 모르겠다!’ 비밀번호고 뭐고 그냥 남아있던 노랑 청테이프로 캐리어를 둘둘 감기 시작했다. 그제야 신경질적이던 직원도 옆에서 도와준다. 응급조치한 캐리어가 나짱까지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며 다시 탑승구로 뛰어갔다. 그런데 보안검색대에서 내 상황을 봐주지 않는다. 난 이미 검색을 끝냈다고 해도 직원은 안하무인이고, 신유에게는 다른 승객들 다 비행기 타러 이동하고 우리 둘만 남았다고 연락 오고....... 결국 영어실력 짧은 내가 다시 신발 벗고 X-ray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신유와 만나 항공사 직원이 특별히 불러준 차량을 타고 비행기로 이동,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떠나기 전에 혼이 쏙 빠진 느낌이다.




신유

     

드디어 나짱으로 떠난다. 내가 아는 나짱에 관한 것은 카톡으로 본 숙소 예약 알림과 바닷가, 야자수, 선베드 꾸시야! 여행 직전 케이블티브이의 ‘식당’을 보고 반했던지라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유자적한 해변가를 미리 그려놓고 있었다.


오전에 전날의 숙취가 덜 깬 채로 짐을 싸고 있었는데 ‘어?’ 플라스틱 캐리어 앞 쪽이 부서져 있다. 짐 부치는 과정에서 깨졌고만. 10년도 전에 산 캐리어고 오래 썼으니 아깝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호찌민-나짱, 나짱-하이퐁, 하이퐁-인천까지 세 번이나 비행기를 더 타야 하는데 불안했다. 급하게 숙소 건너편에 위치한 대형서점 겸 문구점에서 청테이프를 사 왔다. 재질은 청테이프이지만 노란색이라 캐리어 앞면을 꼼꼼하게 붙였더니 회색 캐리어가 노랑이가 되었다.


잠깐 내리고 말아야 할 비가 멈추질 않더니 결국 비행기가 2시간 지연되었다. 호찌민 국내선 공항에 모든 비행기가 폭우로 이륙이 지연되어 계속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공항에서 기다림을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섰다. 내가 통과하고 쑥이 티켓을 내밀자 직원이 티켓 뒷면에 ‘K1'이라고 적더니 이쪽으로 가보라고 한다. ’ 아까 쑥이 자기 이름 부르는 것 같다고 하더니 뭔 일이지?‘


나짱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비행기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 시작한다. 왜 안 오는 거지? 마음은 답답한데 직원이 일행에게 전화해보라고 재촉하니 내 뚜껑도 덩달아 열리는데, 모바일 메신저로 전화가 온다.


쑥 : 신유, 캐리어 어떻게 닫는 거야? 뚜껑이 열려 있어!

나 : 그거 양쪽 버튼 눌렀다 다시 열면 되는데.

쑥 ; 일단 알았어.


결국 마지막까지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도 결국 가버렸다. 화면에는 미탑승 승객 1명 -쑥- 이름이 뜬다. 이대로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 헐레벌떡 달려오는 쑥을 보고 안심했다.


쑥 : 나갔다 오니까 보안검색대 다시 통과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어. 캐리어는 잠그는 방법 몰라서 그냥 청테이프로 칭칭 감았어.


항공사 직원이 우리만을 위한 벤츠 벤을 불러줬다. 그렇게 정신없이 호찌민을 떠났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이런 걸 두고 ‘복선’이라고 했을까?  


임시방편 후 무사히 도착한 신유 캐리어


매거진의 이전글 야경엔 미래구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