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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지이 Mar 13. 2024

정신을 체리세요. 실전이잖아요.

오직 티켓팅만을 끝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피엘라벤 클래식의 티켓팅을 끝내고. 그 기쁨에 들떠 하루종일 맥주파티를 했다.

현실감각이 영 떨어지는 나는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왔다. 난 성공했다. 난 승리자야!'를 연신 외치며

기쁨에 젖어들어갔다. 사실 그렇다. 무엇인가 당첨되었다. 획득했다.라는 결과물은 대체적으로 행복감을 가져다주니까 말이다. 그 행복감 충분히 즐겨도 좋을 만큼 난 진심이었다.


이쯤에서 피엘라벤 클래식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티켓팅만 끝내고도 이토록 행복감에 젖는지, 나의 글을 읽는 당신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엘라벤 클래식>은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이 주최하는 세계적인 트래킹 행사다. 스웨덴이 고향인 이 브랜드는 전 세계 모두와 아웃도어의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 행사를 만들었고 , 세계 3대 트래킹장소로 불리는 왕의 길 쿵스레덴을 기점으로 점차 지역을 넓혀갔다.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 모두가 평등할 수 있도록 참여자들의 성별과 나이 출생지를 불문하며, 열정만 있다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다. 그저 브랜드의 마케팅 중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는 트래킹 행사로 알려져 있고 , 그 소중한 추억과 경험들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하나둘 공유되며 아직도 많은 트래커들의 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한국도 클래식을 여는 나라로 동참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멋진 자연유산 제주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라산과 애월 바다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너무 아름다운 코스는 전 세계 트래커들에게도 강한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여정에 한라산등반이 있어 쉽지 않은 코스로 유명하지만 인기 또한 많은 것으로 알려져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현재 클래식을 진행한 나라는 스웨덴, 덴마크, 독일, 홍콩, 일본, 중국, 미국, 한국 이 있고 칠레는 올해 처음 클래식을 개최한다. 쓰레기 문제와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깨끗하고 건강한 트래킹문화를 주도하면서도, 그 안에서 트래커들에게 진짜 자연을 즐기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아주 멋진 행사 이면서도, 가장 멋지게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행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행사에 내가 참여를 하게 된 다니.... 맥주맛이 달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티켓포함 사항 : 얼리액세스티켓 250불."


다음날 아침. 다시 확인을 해도 여전히 축하한다며 미국에서 보자는 메일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내가 산 250불의 티켓에 포함된 건 티켓. 그리고 트래킹 시작점까지 오고 가는 셔틀. 끝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포함사항이 없다. 즉 미국에 도착해서 트래킹대회 전날까지의 숙소. 비행기티켓.

하물며 모든 장비(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장비가 있긴 하지만, 매 끼니 정도이며 나머지는 거의 내가 챙겨야 한다.)는 불포함이다. 오직 클래식참가티켓만 손에 넣은 것이다.

기쁨은 잠시지만 해야 할 일은 많은 게 인생이라더니.

진짜 실전으로 진입한 기분이 들었다.


부리나케 검색을 시작했다. 피엘라벤클래식 스웨덴, 코리아의 인기를 실감하듯 검색결과가 많이 나왔다.

지난 클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기나 준비물목록, 브이로그까지..

하지만 내가 가는 곳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참여자들의 후기나 브이로그가 필요했다. 검색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있어도 다른 나라 참가자들의 브이로그 정도일 뿐 이상하리만큼 정보가 부족했다.

관련 카페에 가입 후 수소문해서 18년도에 미국클래식에 참여한 분과 대화한 결과 몆 가지 슬픈 사실을 알아내버렸다.


미국은 사실상 가장 인기가 없는 클래식 개최지라고 한다.(우선 한국에서만큼은 그런가 보다.)

트래킹코스가 미국의 콜로라도 로키산맥인데 덴버공항까지 직항도 없을뿐더러 비행기티켓 가격도 너무 비싸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해발 3,184m(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해발고도가 1,947M임을 감안하면 엄청 고지대임을 알 수 있다.)에서 시작하는 트래킹코스여서 고산병의 위험도 감수해야 하니 내가 왜 미국티켓을 그렇게 쉽게 손에 거머쥘 수 있었는지 그제야 짐작이 갔다. 적이 없던 거다. 다른 클래식 티켓팅전쟁에 모두 참전 중이었고 나만 미국티켓을 산건가보다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어제 그 기쁨 제대로 이어가 보자. 그때 갑자기  <정신을 체리세요.>라는 문구가 세게 뇌리를 스쳐갔다.


가본 사람이 없으면 내가 가보면 된다. 어려운 거 하고 나면 쉬운 것만 남는다. 미국클래식이 어려웠다면 다음에 도전할 클래식은 사실상 더 쉬워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장에 항공권 검색부터 시작했다. 절망적이고도 정말 비참한 수준의 비행여정들이 목록에 떴다. 기본 18시간에서 20시간 이상의 여정이 대부분이고 최대 38시간까지 봤다. 아무래도 콜로라도 덴버공항까지 직항 편이 없어서라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는 항공편이 가장 많았고 캐나다항공은 캐나다를 경유해서 가더라. 38시간 가더라도 가격이라도 저렴하면 그걸 타겠다만 가격도 죄다 200만 원 언저리. 눈에 불을 켜고 어제 티켓팅하는 수준으로 집중해서 어렵사리 190만 원대의 왕복항공티켓을 손에 넣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가는 티켓을 구매했고, 경유여정도 최대한 짧은 것으로 구매했다.(그마저도 가는 여정에 포함된 대기시간이 17시간 25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다른 티켓에 비하면 이게 가장 짧았다.) 불친절한 서비스로 악명 높은 미국항공사의 티켓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나에게 포함된 사항은 두 개가 되었다.

클래식참가티켓 그리고 비행기티켓.

최소한 피엘라벤클래식에 참여는 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된 상태라고 보면 될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그때 방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때깔 좋은 파란색 배낭이 말을 거는듯했다.

정신을 체리세요. 넌 백패킹장비라곤 나(배낭) 하나뿐이잖니?

어쩌면 피엘라벤클래식에 참여하는 날 전까지 나에게 포함된 사항은 "끝없는 준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가 클래식에 참여할 거라는 환상만으로 준비해온 건 소위말하는 "등산용 근육" 밖에 없었다.

그것 때문에 시작한 것이 우리나의 100개의 명산을 오르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39개의 아름다운 우리나라 명산을 다닌 것이 전부였다.(이것만으로도 얻은 것이 너무 많지만 말이다.) 단 한 번도 백패킹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서는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게 너무도 당연했다.

막막하지만 내선택에 필요한 준비라면 즐거울 준비도 당연히 되어있다.

하면 된다. 파란색배낭에 어울릴만한 장비들을 상상해 본다. 늘 이야기하지만 난 멋 또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멋을 놓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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