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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향한 메시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자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

by Think Coach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고 싶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글을 남깁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현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극우"입니다.


일단 "극우"를 논하기 앞서 극우의 출발점이 되었던 "우익과 좌익"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의회에서 공화당파는 좌측에 왕당파는 우측에 앉아있었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즉,

우익은 전통적인 왕정을 지지했던 왕당파처럼 기존의 체제와 이익이 보존되어야 나라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좌익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혁해야 국민들의 삶이 개선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부 권력자들이 통치하는 왕정을 국민들이 다스리는 공화정(Republic)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좌익이나 우익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모두 큰 문제와 모순이 발생합니다.


왜 그런지 조목조목 따져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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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좌익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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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인 평등 지향

사람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면 평등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평등이 되려면 일정한 규칙과 원칙으로 자유를 제한해야 합니다.

자유를 제한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불만이 생기게 되고 항거하게 되고 사회 불안이 더욱 가중됩니다.


▶ 독재

국민(소위 인민)이 통치하기 위해 대표자를 세우지만 결국 권력을 잡은 대표자들은 엘리트 집단이 되고 이들은 일반 대중들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의사결정하여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독재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 정보 통제

정권이 국민을 자기 마음대로 이끌려면 이념이나 사상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서 통치 방향과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통치 방향과 어긋나는 것은 가지치기를 하게 되고, 지식과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 철저한 규제

억누르기 어려운 사람들의 "자유"라는 의지를 통제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하기 시작합니다. 법률로 규제하여 통치권력의 방향에 맞지 않으면 법집행이라는 나름의 "정당성"을 발휘하여 자유를 통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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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우익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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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라는 장벽

뭐든지 처음에는 좋게 시작합니다.

자유라는 것을 내세워 누구나 능력 있는 만큼 이익을 얻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번 이익을 얻으면 이것을 지키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이 얻은 이익을 합리적으로 보호하는 수단이 바로 "자유"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경쟁하여 능력이 있는 만큼 가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자유 시장경쟁 체제에서는 능력차이가 발생하면 Winner와 Loser로 나뉘어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단지, Winner가 모든 것을 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Loser도 일정 부분 먹으며 생계를 유지할 뿐입니다.

일단 격차가 벌어지면 "자유 경쟁"이라는 체제 하에서 극복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라는 그럴듯한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사실 Loser들에게 "자유"는 커다란 장벽일 뿐입니다.

"자유"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은 자기중심성이 너무 강해서 "사랑"하는 척만 하면서 자신이 얻은 이익을 더욱 늘이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유"라는 명분을 오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실력의 격차가 만들어진 후에는 "자유"는 앞선 자들의 충직한 "보디가드"가 됩니다.

"자유"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앞선 자들이 "사랑"을 통해 양보하고 나눠주는 행동을 발휘해야 합니다.


▶ 카르텔

자신들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익 집단과 결합하는 소위 카르텔을 형성하여 더욱 공고한 이익 집단으로 발전하게 되고,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 배척

자신들의 이익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민족차별주의입니다.

자신의 민족의 이익을 타민족이 갉아먹는다는 피해의식이 나라 전체로 퍼지게 되면 정말 위험합니다.

일부 이익 집단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자신들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의 눈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배척"이라는 단어는 이익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됩니다.

"배척"도 "자유"와 함께 기득권의 또 다른 보디가드입니다.


▶ 민주주의를 빙자한 독재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이권 집단들은 사실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세력이 계속 정권을 잡아주기를 원합니다.

공산주의는 극단적인 평등을 지향하니 선택할 수 없으므로 남은 대안이 바로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지지하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현시대에서 가장 검증된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제도에서 이익집단들과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집권하려면 행정, 입법, 사법, 경제계 등의 힘을 장악해야 하고, 국민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 교육과 언론을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 정보 통제

극단적인 좌익과 마찬가지로 극우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불리한 정보가 돌아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교육과 언론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발생하는 것들이 바로 "뉴라이트" 같은 일종의 사상이나 뇌물, 이권 제공, 정언유착, 정경유착 등입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

요즘 좌익이든 우익이든 어떤 정치성향을 가졌든 상관없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공산주의는 실체라기 보다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유령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극우 성향을 가진 집단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세워주는 매력적인 단어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폐해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과거 좌파의 키워드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단적인 우익 집단들이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꺼내어 과거 '좌파 = 공산주의'라는 프레임으로 활용하여 불안감을 조성하여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인간은 우익이든 좌익이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출발은 달라도 결국 같은 행태를 보이게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건강하게 되려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사랑을 가진 집단이 두터워져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전파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교회가 극단주의로 빠지고 있는 것에 너무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이념에 치우친 하나님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몸으로 드러내어 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지

이 세상의 어느 이념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이 땅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은

이 세상의 정치이념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의 부당한 권력, 정치제도, 노예제도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신약성경에는 온통 사회, 정치운동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오직 인간을 향한 죄로부터의 구원에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으로 가득한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목사든 직분자든 교인이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어느 의견도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옳은 것 같다고 여겨져도

이 세상의 모든 변수를 알 수 없는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과신하지 말고

겸손함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하고

왜 저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서로 듣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제도나 권력구조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전서 2:12]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비본질에 집중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만 커지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제조공장 라인에서

자신이 맡은 것에는 충실하지 않으면서

옆 공정을 맡은 사람의 작업에 이것저것 참견하여

자기가 맡은 것도 해내지 못하면서

옆 공정도 망치게 하여

결국 목적한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되어

자기중심성에서 자유롭게 된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이

올바른 교육도 하고, 정치도 하고, 돈도 벌면서

사회가 균형 있게 형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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