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4 진짜 휴지 없어요?

by 김군


자전거를 타다 보면 당연히 목이 마르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충분한 물을 챙겨야 하는 건, 출발 전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게 챙긴 물은 무더운 날씨 탓에 금방 뜨거워져

정말이지 기분 더럽게 맛없었다.

물맛이 왜 이리 찝찝해!?
더운 날씨_ 보정.jpg 네팔의 산은 춥지만 네팔은 덥다.


네팔에서 추운 곳은 오직 히말라야뿐, 남아시아 국가답게 역시나 덥다.

그래서 언젠가 부턴 물보다 과일, 채소를 챙겼고 주로 토마토와 가끔은 오이를 즐겼다.

일단 물과 달리 맛이 느껴지니까 틈틈히 꺼내 먹게 되고, 그 덕에 물처럼 뜨거워져 있지도 않았다. 특히 토마토는 당도도 풍부해 찝찝함이 아닌 달콤함으로 수분 섭취에 용이했다.


'저게 뭐지?'


한 번은 네팔에서 보기 힘든, 평지를 달리고 있었고 그 길 가외로는 깊은 배수로가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가 배수로에 빠져 엎어진, 군용트럭 크기의 큰 토마토 운반차량이 떡하니 뒤집혀있는 게 아닌가?


트럭에서 엎어진, 토마토 한가득이 길가를 메우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며 멀리서부터 조금씩 다가가는 내내 발갛게 물든 그곳이

너무나 예뻤다

당사자에겐 미안하지만 그만큼 도로를 메운 토마토가 꽤 인상적이었다. 차량의 크기가 우선 거대했고 딸린 토마토도 상당했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DSC00268.JPG 과일과 채소를 챙긴다 해도, 물은 꼭 챙겨야 한다.


길을 가득 메운 토마토와 달리, 겨우 세명만이 배수로에서 토마토를 구출하고 있었다.

당시는 지나가는 차도 드물어 도울 인력 또한 마땅찮았다.


"도와 드릴게요."
"아냐, 괜찮아."


당연히 나도 도우려했지만 배수로의 토마토는 세 명이서 충분했나보다. 하긴 내가 도운다고 해서 엎어져 있는 저 트럭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울 생각으로 자전거에서 내린 내게, 그들은 대뜸 한 웅큼의 토마토를 내주었다.


"이거 너무 많은데요."
"다 먹어."

"진짜 많아요."
"먹어."


한동안 나는 토마토를 질리게 먹었다. 나중엔 상해버려 못 먹게 됐을 때야 비로소 벗어날 만큼 정말 많이 먹었다.


때문에 이젠 토마토는 도저히 못 먹겠고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생 과일을 여기서 만났다.


"100루피야 먹어봐."


토마토와 함께 먹던 오이는 시원하고 먹기 편했지만 군대에서의 고단함을 채워주는 초코파이는 절대 아니었다. 당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단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전거를 타다보면 으레 단것이 당겼고 오이는 초코파이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100루피면 천 원 정도네. 하나 주세요."
리치보정.png 속은 새하얀 리치


마치 꽃다발처럼 가지 채로 팔고 있는 빠알간 리치를, 이렇게 모래먼지 가득한 도로에서 우연히 만났다. 마을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차가 많은 도로에서는 리치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먹거리도 자연스레 팔고 있다. 추석길에 만나는 우리네 뻥튀기나 술빵처럼 말이다.


이럴 수가!.......

그냥 목이 말라 싼값에 구입한 리치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맛있었다.

그간 다양한 과일이 있는 남쪽의 나라들을 줄기차게 다녔지만 특정과일에 꽂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과일을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채소나 과일같은 수분기가 많은 것은 일단 좋아하고 보는 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여행하며 먹었던 과일의 이름조차 구분 못했다. 맛은 있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날 나는 완전히 눈이 뒤집혔다. 그래서 나중에는 목이 마르던 마르지 않던 무조건 리치부터 까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한 아름 묶인 리치를 우리돈 1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호사다.

생과일 리치부터 시작해, 리치 주스, 리치 아이스크림, 급기야 리치 술까지.


리치는 모든 게 훌륭함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먹었던 냉동의 그것과는 비교를 불허했다.

"왜 이제야 이 맛을 알았을까? 인생 헛 살았어!"

리치술병_보정.jpg 리치 술


그런데 이것들을 이렇게 먹어대다 보니 수시로 배탈이 나기 일쑤였고 어느새 내 자전거여행은 일반 자전거여행이 아닌, 자전거와 함께하는 설사여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를 곤궁에 빠뜨릴 악마가 내 등 뒤까지 바싹 쫓아온지도 모르고 말이다.


'휴지 다 썼나?'

여느 때와 같이 나는 급한 복통으로 휴지를 꺼내려 했다. 그런데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유명 관광지) 사온 휴지를 다 썼는지, 허전해진 가방을 뒤로 하고, 근처의 상점으로 냅다 뛰었다.


“휴지 하나 주세요.”
“휴지? 그게 뭐야?”
“네??? 휴지가...... 휴지죠.”

그랬다!

네팔은 인도와 똑같이 왼손으로 뒤처리를 하는 탓에 휴지를 안 팔았던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휴지란 것이 아예 없었다. 물론 내가 다녔던 곳이 워낙 벽지라 그곳을 기준삼아 말하는 것이지만 식당에서조차 그 흔한 냅킨 한 번 구경 못 했다.


그나마 이때까지는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구입한 휴지가 있어 별 문제 없는 대신, 네팔의 현실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 흔한 휴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말이다. (관광지인 카트만두와 포카라 등에서는 외국인을 위해 어디에서나 휴지를 판다.)

DSC07644.JPG 네팔엔 잡화점이 엄청 많다. 사진제공: 서은정


처음엔 그저 ‘옆 가게 어딘가에는 있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진짜 한 군데도 없다. 배설의 고통은 심해져만 가는데, 이 망할 놈의 휴지가 없는 것이다.


종종 걸음으로 텐트까지 돌아온 나는 휴지가 없는 걸 알면서도 이 가방, 저 가방을 뒤지면서, 휴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오!
비행기에서 챙겨온 물티슈!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다!


그 한 장에 내 모든 걸 걸었다.

DSC06957.JPG 네팔행 기내식의 물티슈는 소중합니다. (사진제공: 서은정)


일을 보는 동안, 딱 한 장밖에 없다는 사실에 물티슈를 접지도 않고 써야만 했다.

그 얇다 못해 반투명인 물티슈 한 겹에 내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그렇게 순백의 하얗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온통 까무잡잡한 새로운 그것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한 계산을 거쳐, 물티슈란 공산품을 경제적으로 최대한 모두 사용했다.

물론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한 쪽 모서리만 빼고 말이다.


“아....... 그런데 앞으로는 어쩌지.......”


아주 현실적인 걱정에 찾아왔다. 지금 당장은 어찌했지만 이제 여행 내내 휴지가 없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리치로 하여금 일어난 배탈은 한 번 찾아오면 연달아 일어나기 때문에 잠시 후, 또 신호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당장 뭔 수를 내야만 하는 것이다.



#_9.JPG 네팔의 시골 화장실 중 하나. 사진제공: 서은정

‘윽......’

뭔 수를 낼 새도 없이 신호가 찾아왔다. 그렇게 난 눈을 깊이 감았다 뜨고는 결심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덤덤하게 화장실로 갔다.

손에는 그 여리여리한 휴지 한 장 없이 말이다.


‘면으로 할까, 폴리에스테르로 할까? ’


내가 입은 것들을 살펴보며 정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 더 생각해보니 이게 한 두 번 넘긴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네팔을 떠날 때까지 계속 이럴 텐데, 이런 방법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중에 나체로 자전거를 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네팔 화장실.jpg 네팔의 화장실 - 저 물로 불순물을 내리고, 뒤처리도 한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taxi6393/220951442287)


나도 모르게 화장실 안에 있는 작은 우물과 그 위를 부유하는 바가지로 눈이 갔다.

네팔의 화장실을 갈 때마다 봤던 것들이지만 전과 달리 느껴지면서 두려움과 고마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한 번에 일었다. 왜냐하면 예전 어느 여행기에서 읽었던 ‘손으로 처리하는 노하우’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운명인가보다, 받아들이자........’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겸허히 바가지에 물을 떴다.

그 다음엔,

한껏 찡그린 얼굴과 함께,

어찌어찌한 과정을 거쳐.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결국,

그 일을,

별 탈 없이,

끝냈다.


일단 소감은........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으,,,,,,,,, 아무튼 손을 겁나게 씻었다.


특히 왼손은 이미 시뻘게 졌는데도 멈추지 않고 더 빡빡 닦았다. 그렇게 비누칠하고 헹구고를 반복하며 중간중간 코까지 박아가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CAM00140.jpg 네팔식 백반인 '달밧'


이후로 내 시선은 항상 네팔 주민들의 왼손에 박혔다. 그중에서도 식당에서 음식 주문을 한 뒤, 내 음식 만들어주는 사람의 왼손은 주요 감시대상이었다. 물론 그렇게 쳐다본다고, 내가 뭘 어찌하겠냐마는, 아무튼 한동안은 그렇게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그 음식이 내 음식인 걸 인지하고는 몸서리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어쩌랴? 먹어야지.'


한손으로 먹고 또 다른 한손으론 그걸 처리하는, 참으로 오묘한 조화.


훗날 네팔 여행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이미 그 행위에 도가 튼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처음 출발했던 카트만두에 가까워지자 '그래도 수도인 카트만투 근처까지 왔는데 있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 잡화점 아주머니에게 휴지를 파냐고 넌지시 물었다.


“휴지? 없지?”
‘역시.’


사실 이때만 해도 마음속 저편에서 '이제 내게 휴지가 과연 필요한가?' 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올 때였다. 경험 전의 편견과 달리, 진정 이게 더 편하고 깔끔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왼손을 이번에도 힘차제 준비하려는 찰나, 갑자기 가게 아주머니가 저기 어딘가를 가리키며 나를 불러 세웠다.


“네? 저기에 가보라고요!?”

그랬다. 관광지가 아닌 지역에도 휴지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지만 아무튼 그곳에 휴지가 있었다.

그곳은 다름아닌

Hospital, 바로 병원이었다!


“그랬구나!”

네팔의 관습과는 달리 서양식 병원에선 위생의 이유로 휴지 사용을 권장하며 판매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내 생각은 손만 잘 씻으면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평소 아플질 않으니 알 턱이 있나."

이미 익숙해진 내 왼손이 있음에도 막상 휴지를 만나니, 뭔가에 홀린 듯 휴지를 어느새 구매해버렸다.


다녀온 여행자들도 잘 모르지만 나중에 여행한 미얀마도 네팔과 같은 관습이었다. 그래서 기회만 보이면 휴지부터 왕창 샀다. 태국의 시골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를 타고 태국으로 들어갔는데 그곳도 똑같았다. 그간 태국을 몇 번이나 갔는데도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들이다.
아마 동남아 전체가 그런듯 하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에 온 지금도 죽 이어지는 버릇이 하나가 있다.

그건 손을 씻은 다음과 음식을 집기 전,

킁킁!

손에 대고 냄새를 맡는 일이다.

그래서 이 행동으로 네팔에서의 일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건 아마 네팔의 관습이 내게 준, 습관이라는 작은 선물일 것이다.


DSC00311.JPG 네팔은 여행 내내 나에게 많은 것을 선사했다.




**본문과 상관없는 자전거여행 팁**

Q. 자전거에 바람은 얼마나 넣어야 할까요?
A. 타이어 둘레를 보면 적정기압의 범위가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기압을 측정하는 펌프가 없을 수도 있고, 자기 타이어의 적정기압을 찾아보기 귀찮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쉽게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아주 간단합니다. 공기를 다 넣고 타이어를 눌렀을 때, 조금도 들어가는 느낌이 안 들면 됩니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더 넣어야 합니다.
단, 어느 정도 찼다 싶으면 꾸준히 눌러가며 공기를 채워야 합니다. 안 그랬다가 적정량을 넘어 과다량으로 분간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죠.

Q. 고글은 써야 되나요?
A. 당연하죠

미얀마 아이들.png

---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되고자, 단행본 '네팔 미얀마 자전거 타고 가봤니?'와 Daum 스토리펀딩에서 연재한 동명의 글을 기초로 재연재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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