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네 번째 그림책 모임을 가졌다. 아이들과 함께 채정택 작가의 [빨강 머리 토리]를 읽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번 책 역시 한 마디로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라고 말할 수 있다.
"부족한 면, 약점조차도 나의 일부로 끌어안자!"
책을 읽어주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TV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의 이런 일이]가 눈에 들어왔다. 곱슬머리를 가진 한 여성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헤어밴드를 풀자마자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부풀어 올랐는데, 그 장면은 마치 책 속의 빨강머리 토리의 모습 같았다.
그 여성은 학창 시절 남자 애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자신의 곱슬머리를 감추기 위해 머리를 펴고 다녔다.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사연을 들으며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노란 물감으로 몸을 칠한 아보카도가 비 오는 날 물감이 씻겨 나갈까 급하게 집으로 달려가던 모습,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 속 주인공 루미가 친구들과 목욕탕에 가지 못했던 마음까지. 언제까지 숨겨야 하지.
[빨강 머리 토리] 책은 친구들에게 “빨강 머리”라고 놀림을 받던 토리의 이상한 꿈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거울을 본 토리는 자신도 모르게 부풀어 오른 머리에 깜짝 놀란다. 더 놀라운 건 꿈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등교를 했고 수업마다 과목에 맞게 머리 모양이 변했다. 그날 토리는 아팠고 다음 날 결석까지 하게 된다. 학교 가기 싫었던 토리는 교실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친구들을 보고 비로소 웃는다. 꽃 모양, 도넛 모양, 에펠탑 모양까지… 친구들의 머리 스타일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토리는 결국 담임 선생님의 칵테일잔 모양 머리를 보고 활짝 웃는다. 마지막 장은 “나도 내 머리가 참 좋아!”라는 토리의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책을 읽고 난 다음, 아이들에게 선생님도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왼쪽 팔을 들어 올리며 두 살 무렵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며 생긴 화상 흉터를 보여줬다. 어린 시절 화상 입은 왼쪽 팔은 기억에 없는 마음의 상처이기도 했다. 한여름에도 긴팔만 입고 다녔던 기억은 생생하다.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팔을 감추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을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며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들은 어때?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니?”
아이들은 하얀 A4용지를 꺼내 감추고 싶은 비밀을 하나씩 그려 나갔다.
“새끼손가락이 너무 짧아요.”
“친구 관계가 힘들어요.”
“피부가 너무 까매요.”
“발가락이 못생겼어요.”
“몸에 털이 많아요.”
“다크서클이요.”
저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영상 속 여성은 자신의 곱슬머리를 인정하고 더 이상 머리를 펴기 위해 매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곱슬머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가꾸기 시작했다. 나아가 곱슬머리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자연 곱슬인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상처마저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아픈, 상처 난 결점을 껴안아줘. 곱슬머리도, 화상 흉터도, 짧은 손가락이나 까만 피부도 나의 일부이며, 결코 감추어야 할 흠이 아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오히려 그 결점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고유한 무늬인 것을. 그림책 속 주인공 토리처럼, 또 TV 속 그녀처럼, 아이들이 용기 내어 꺼내놓은 작은 비밀들까지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빛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