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사회복지사 Feb 18. 2020

동생이 없는 날, 어떤 것이 좋냐고 물어봤다

동생이 없으니까 어때?

#동생이 없는 날.

아내가 일을 시작한 후 종종 둘째를 장모님 댁에 맡겼다. 어느 날 둘째를 맡기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 첫째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2시간 정도 남았다. (아내와 나는 사랑의 불시착을 보려는 계획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첫째와 목욕을 했고 그 사이 아내는 저녁 준비를 했다. 작은 네모난 접이식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저녁을 먹다.(둘째가 없어 가능한 일이었다) 밥상을 치우고 아내는 주말에 밀린 집안일을, 나는 첫째와 놀았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아내는 건조대에 마른 옷을 털어달라고 했다. 오케이! 첫째가 잠드는 사이에 하려고 계속 아들과 놀았고, 한창 첫째와 블록을 만들고 있는데.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내가 우리 쪽을 보며 첫째에게 질문했다.


유호야! 동생 없으니까 어떤 게 좋아?


참! 뜬금없는 질문. 속으로 무슨 질문이... 그러면서도 첫째의 속내가 궁금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아들의 대답.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랑 더 이야기해서 좋아


어... 그래...!


아들의 속마음이 그랬구나!


아들의 대답에 뭔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놀이에 집중하는 아들이 더 안쓰러웠다. '아빠랑 더 놀고 싶고,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스트레스였을까. 툭 내뱉은 말에 적잖은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기만을 누구보다 기다린 아이다. 그것을 의도해 매번 산부인과에 데려갔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직도 동생의 심장 소리를 듣고 연신 '우와! 우와!' 신기해하던 첫째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흐린 초음파 사진에서 동생을 곧잘 찾던, 핏덩이 동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던 그런 아이였다.


#변한 것은 누구였을까.

아이 입장에서 변한 것은 엄마, 아빠였는지 모른다. 둘째가 집으로 처음 왔을 때부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첫째에게 오롯이 가던 에너지가 동생에게 나눠졌다. 히려 젖먹이 육아로 든 시선이 둘째로 갔다. 자연스럽게 첫째와 놀고, 여행 가는 시간까지 줄었다. 사실 둘째가 태어난 후로부터 가족 여행을 못 가봤다. 주말이면 항상 자신과 놀아주던 아빠가 첫째 입장에서는 사라진 거나 다름없다.


설명할 순 없지만 동생한테 자꾸 뺏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였다면 불안했을 것 같다. 동생이 생겨서 좋으면서도 가끔은 싫은 마음,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충돌되는 갈등에 스트레스도 있었을 것 같다. 유독 동생을 잘 챙기고 좋아한 첫째라 더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동생도 형을 좋아한다. 형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둘째, 형이 놀고 있으면 기어코 끼고 싶어 우격다짐으로 몸부터 들이댄다. 첫째는 장난감을 만지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기꺼이 주다가도 한 번씩 몸으로 막으며 싫다는 표현을 한다. 가끔 벌어지는 힘겨루기, 심해지면 결국 누군가 울게 되는 상황으로 번진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결국 내가 끼어들게 된다. '형이니까, 양보해야지!, 때리지 말고 그때는 싫다고 말하는 거야!' 차분하게 말한다고 하지만 동생 편드는 것 같은, 잔소리만 하게 되는 상황이 늘었다. 어쩌면 놀아주던 아빠가 동생이 태어난 후로부터 간섭하고 끼어들고 혼만 내는 것만 같으니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동생에게 박탈감이, 아빠에게 배신감과 억울함이 싹텄는지도.


형 이전에 첫째 역시 부모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첫째도 이제 겨우 5살이다. 기저귀를 못 벗어낸 둘째와 자꾸 비교하다 보니 다 컸다고 착각했는지. 첫째 의지와 상관없이 형이라는 감투를 씌워주고 있었다.


기대를 줄였더니 마음이 편하다. 사실 동생을 좋아하고 잘 챙겨줘서 기대가 컸다. 훈육하면서 나도 모르게 형이니까 양보하라고 강요했다. 응석 부리고 싶은 나이에 동생을 지켜주고 잘 보살펴야 하는 과도한 책임감을 심어줬다. 하마터면 착한 아이로 키울 뻔했다. 이제는 첫째가 더 잘해야 한다는 기대를 접었다.  


더 안아주고,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며칠 동안 첫째를 대하는 태도를 바꿨더니 아이가 달라졌다. 오히려 응석 부리고 어깃장 내는 행동이 줄었다. 둘째가 첫째 장난감을 부수려고 하면 '형이 놀고 있으니까, 기다려!' 말하고 둘째를 잽싸게 안는다. 오히려 첫째 편을 들어준다. 그랬더니 자신이 놀고 있는 장난감을 순순히 동생에게 내주었다.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고 있었다.


사실 둘째가 없는 며칠 동안 집안이 고요하다 못해 쓸쓸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허전했다. 잠들기 전 첫째가 하는 말, '아빠! 지호 보고 싶다.' 첫째의 진심이 나지막하게 전해졌다. 첫째 역시 동생 없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유호야! 오늘 동생 데리러 갈 거야. 오늘 그동안의 회포를 풀으렴!." 아내는 두 아들이 양세찬, 양세형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욕심 같지만 그들처럼 정말 의좋은 형과 아우가 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갑지 않은 눈에 대한 아빠 육아의 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