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뉴포트의 <슬로우 워크> 혁명
'시간이 없다'. 최근 들어 아침, 저녁으로 드는 생각입니다. 분명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여유 시간이 있음에도 하루 종일 무언가 쫓기는 듯 지내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체크리스트를 지워가며 자기 전에 노트를 보면 성취감보다는 '아, 나 오늘도 이것밖에 못 했네'라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일주일 단위로 시간을 회고해 보면 분명, 일상 속 특별한 이벤트와 감사한 순간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매일매일이 알차다는 생각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아쉬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가 세운 계획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글을 쓰고 달리고, 저녁에 퇴근 후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또 틈틈이 피아노 연습을 해주고 독서를 해주자. 이렇게 다짐을 하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침에 종종 늦잠을 자고 저녁에는 식사를 하면서 미디어를 소비하고, 이런 흐름의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정말 내 삶에 중요한 일들을 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틈만 나면 제 머릿속을 비집고 들 때쯤 작가 칼 뉴포트의 신작 <슬로우 워크>를 만났습니다.
칼 뉴포트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저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조지타운 대학교 컴퓨터 과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지털 시대의 생산성과 집중력에 관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특히 책 '딥 워크(Deep Work)'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저서들은 현대 사회에서 집중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그리고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방식에 대해 다룹니다.
그의 신작 <슬로우 워크>는 이 '휘둘리지 않는 삶의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심도 깊게 다룹니다. 책에서는 현대의 지식 산업 부문이 합리적인 업무 조직이라는 개념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지적하고 좀 더 나은 문화, 즉 '슬로우 생산성'이라는 철학을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원칙 세 가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일들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 이렇게 업무 부하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여유를 활용해 가장 중요한 몇몇 프로젝트를 온전히 파악하고 추진해 나가자.
가장 중요한 일을 서둘러하지 말자. 탁월함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 집중도를 조절하며 지속 가능한 일정에 따라 추진하도록 하자.
단기적으로 기회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에 집착하자. 이런 결과의 가치를 활용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더욱더 큰 자유를 누리도록 하자.
세 번째 원칙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싱어송 라이터 주월(Jewel)의 사례가 인상 깊었는데요. 그녀의 가수로서의 성장 여정은 언뜻 보기에는 운이 좋았다고 느껴질 만큼 우연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매 선택의 순간마다 보여준 용기가 있었기에,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으로 내린 행동들이 있었기에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었겠구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심을 잡아준 것은 바로 '자신을 믿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내고자 꾸준히 노력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퀄리티에 집착하는 행위가 나머지 두 원칙을 상호보완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이 성취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이 결국엔 일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기여하며, 또 결과물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집중과 끈기가 중요한 일만을 남기게 하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맥락에서 말이죠.
퀄리티에 집착하지 않고 이 두 원칙을 단독으로 실행한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과 우리의 관계를 좀먹기만 할 가능성이 크다. 일을 다스려야 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부담으로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느림이 일과 삶이 싸우는 무미건조한 전장에서 써먹을 단순한 전략으로서의 역할을 뛰어넘어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려면 자신이 내놓을 결과의 퀄리티에 집착해야 한다.
-칼 뉴포트, <슬로우 워크>
책의 말미에는 퀄리티에 집착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광이 될 것,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쓸 것, 과 같은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이죠. (비록 저는 아이는 없지만, 또 영화광이 될 정도로 영화를 보진 않지만) 그가 의도하는 바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취향을 기르는 데 힘쓰기, 글을 쓰기 위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여유 시간을 만들어라, 는 의미겠지요.
저자는 일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 현대의 노동 문법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적게 일하고(중요한 일에 더 몰입하기 위해), 천천히 일하고(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기르기 위해), 퀄리티에 집착함으로써(중요한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해), 일을 하는 좀 더 바람직한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제가 가졌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쫓기듯이 투두리스트를 쳐낸다'는 기분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힌트로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5개년 계획'을 참고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 어떤 모습의 나를 만났을 때 행복해할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한 5년의 계획을 세우고 작은 단위로 마일스톤을 적어보고 그것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아 천천히, 꾸준히 매일매일 작은 과제를 해나가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 매일을 산다는 것이 단순히 같은 하루의 반복이 아니라, <슬로우 워크> 속 세 가지 원칙을 유념하며 5년 후에 만날 나의 멋진, 기분 좋은 모습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한 발 한 발임을 잊지 않는 것.
반드시 성장의 여정만으로 나의 한 발 한 발을 계산하듯 바라볼 게 아니라 비록 종종 제자리걸음을 하더라도, 뒷걸음치더라도 멈추지 않는 나를 조금 더 넓은 시선에서 부드럽게 바라봐야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해 준 귀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