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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31. 2023

생명(生命), 살아있다는 것

생기론과 기계론 

#20231231 #생명 #life #물질 #의식 #영혼 #생기론 #기계론 


 살아있다는 건 이상한 거다. 드넓은 우주에 물질이 의식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건 지구의 동물들뿐이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내에서는?) 설령 외계에 있다 해도 우리와 마주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한다.*1 근데 어떻게 '물질'이 '의식을 갖고' '자의(自意)로 움직인단' 말인가? 이상하지 않나? 나는 특히 죽음을 보거나 듣거나 느꼈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숨을 쉬고심장이 뛰고뇌가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숨이 멎고심장이 멈추고뇌가 죽은 채로 차갑고 딱딱하게 누워있는 모습은 똑같은 몸뚱이인데 왜뭐가 다른 건가하고‘살아있다’, ‘생명(生命)’이라는 건 대체 뭔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2, Life는 responsiveness(반응), growth(성장), metabolism(대사), energy transformation(에너지 변환), reproduction(생식)을 보이는 것이지만, 누구도 life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간결하게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생명과학대사전에 따르면*3, 생명은 생물의 본질적 속성으로 추상되는 개념이며, 정보의 전달과 에너지 방향이 정해진 변환, 세포구조, 단백질의 존재 등이 보편적인지 어떤지는 확언할 수 없다고 한다. 철학 사전에도 생명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데*4, 무생물계의 현상과는 다른 생물체의 활동, 변화과정이라고 일단 정의하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랜 옛날부터 관념론적인 견해(생기론)와 유물론적인 견해(기계론) 사이에 대립이 있다고 한다. 생기론(生氣論)은 생명은 생물체에서 생명 현상을 생기게 하는 원동력인데, 생물체와는 별개의 어떤 것이며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한다. 과학과 유물론에서는 생명을 생물체와 그 변화 과정 가운데에서 파악하고, 그것과는 별개인 '어떤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살아있음'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일 수 있고(기계론), 아닐 수도 있다(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생기론).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우리는 부모(물질)를 통해 태어나고 자라서 늙고 병들어 다시 땅(물질)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몸(물질)에 깃드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라는 영혼이 따로 있는 건가? 그게 아니면 ‘나’는 그저 신경전달물질들의 조합인가? 영혼이 있다면 그게 떠나는 순간은? 인간의 의식은 대뇌(cerebrum)에서 주관하는데, 대뇌가 일하기 시작하는 그때가 의식의 시작인가? 아니면 그때가 물질에 영혼이 깃드는 순간인가? 내가 보고 얘기하고 느끼는 상대는 물질인가, 아니면 그 안에 든 영혼인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무친 이것들은 단지 신경전달물질들의 칵테일인가, 아니면 영혼에 저장이라도 되는 건가? 


 우리가 죽었을 때 생기론처럼 생각하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오겠지만, 기계론처럼 생각한다면 그냥 끝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의 「무단무멸분 無斷無滅分 第二十七」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사람은 모든 법이 다 끊어져 사라진 모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5 해탈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죽으면 끝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그 사람과 다시는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슬픈 것이다. 다시 말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슬픈 거다. 근데 죽으면 정말로 끝인가? 죽어보지 않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근사(近死); 임사(臨死)를 체험한 사람들에 따르면,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신체를 보고 주변의 대화를 듣는 유체이탈의 경험(out-of-body experience), 어두운 터널에 들어가고 밝은 빛을 보며 평화와 고요함을 느끼는 등의 경험을 비슷하게 한다고 한다.*6 과연 이 경험들은 그저 죽기 직전에 항상성이 깨진 뇌척수액과 뇌가 보여주는 엔딩 크레디트인가? 아니면 영혼이 ‘육체’라는 옷을 벗고 다른 차원으로 가는 과정인가? 만약 전자라면 사람들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융의 집단무의식? 죽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들이 비슷?) 만약 후자라면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며, 이번 생에서의 인연은 끝나지만, 다음 생에서 (기억은 못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명'의 정의를 조금 더 너그럽고 긴 관점에서 본다면 별(항성)도 태어나고 죽으며, 유산(遺産)을 남긴다. 지구의 탄소, 질소, 산소, 철 등이 그 유산이다. 핵융합은 별의 핵에서만 이뤄지기에, 지구의 원소들도 과거 어느 별들이 죽으면서 우주에 흩뿌렸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몸을 이루는 건 모두 별에서 왔으니, ‘우리는 별에서 왔다’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영혼이 있다고 해도 우주 내의 존재일 테니, ‘우리는 우주에서 왔다’라고 하면 생기론적으로도 기계론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니겠다. 


 별은 스스로 빛을 내고 행성들은 그 빛을 받는다. 행성이 빛을 받으면 뜨겁고 차가운 곳이 생긴다. 행성에 유체(流體)가 있다면 대류가 생기고, 지형 등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곳에 우연히 의식을 갖고 움직이며 자극에 반응하고 후손을 남기는 존재가 생겼다. 이 존재는 항성계보다 짧은 시간에 태어나고 죽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변화도 아주 빠르다. 그 존재들의 정점이 바로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야운비구(野雲比丘)는 자경문(自警文)에서 ‘그대가 사람 몸 받아 태어난 것은 응당 저 눈먼 거북이가 우연히 나무토막 만난 격인데 한 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느냐?’라고 표현한 게 아닌지?*7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얼른 마음을 닦으라고? 


 성장(成長)은 신체, 몸무게와 같은 외적 성장과 의식, 생각 같은 내적 성장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외적 성장은 몸(물질)이, 고기, 곡식, 물, 생선, 우유, 채소 등등(물질)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어 일어난다. 물질은 질량을 가질 수밖에 없고, 질량은 에너지다(E=mc2). 즉 물질은 에너지다. 빛도 에너지다. 식물은 엽록소를 통해 햇빛 에너지를 변환시켜 외적 성장을 하고 사람도 햇빛을 통해 일부 영양소를 만들어내고(Cholesterol→Vit D), 호르몬(i.e. melatonin)을 조절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밥이, 고기가, 내리쬐는 햇빛이 우리의 의식을, 영혼을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의식, 영혼은 고통에 따른 고민과 생각과 인내, 봉사 등을 통해서 성장한다. 그런 걸 보면 의식, 영혼은 빛이나 물질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인 듯하다. 


 차원이 달라서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그런 말들을 쓰고 있다. ‘정성(精誠)을 들인다’라는 말은 무언가에 마음을 담는 것이고,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8’라는 말은 그동안 써온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는 의미니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는 시크릿은 어떻고? ‘물질에 마음이 묻어난다.’라는 건 우리는 알 수 없어서 결국 물질로 헤아릴 뿐이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생각하고 남을 위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쉽게 말하면 몸을 움직이는 존재가 따로 있느냐(생기론) 없느냐(기계론)의 문제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 우리는 알 수는 없다. 몸 자체의 성장과 유지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슬기로운 사람”이니까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고민하면서 살아야겠다. 



*1 『코스모스』에도 나오고, 궤도도 설명했다. 유튜브 쇼츠: 

https://youtube.com/shorts/f8pQHJ9VpT0?si=fpn5Q6_I5WgHcgwD

*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Life", https://www.britannica.com/science/life 

*3 생명과학대사전, "생명",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28569&cid=60261&categoryId=60261

*4 철학 사전, "생명",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88042&cid=41978&categoryId=41985

*5 何以故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하이고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어법에 불설단멸상이니라) 

*6 Benjamin J. Sadock et al., Kaplan &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Behavioral sciences/Clinical psychiatry 11e, LWW, 2014, 1353p 

*7 야운비구(野雲比丘), 자경문(自警文) 

主人公아 汝値人道가 當如盲龜遇木이어늘 一生幾何인대 不修懈怠오

주인공아 여치인도가 당여맹구우목이어늘 일생기하인대 불수해태오 

*8 링컨이 한 말이라고 한다. “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https://www.bizhankook.com/bk/article/18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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