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흔적
최순실의 태블릿PC나 디스패치처럼 경천동지할만한 특종을 쓴적은 없지만
나름 성실히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어 도전한
한국기자협회 '2018 기자의 세상보기' 출제작.
10여 년간 쫓아다닌 MBC '무한도전' 김태호PD와의 밀당 취재기.
원제는 영화 '안녕! 나의 소녀시대'를 패러디한
'안녕! 나의 무도시대'인데
기자협회 관계자가 책 편집하며 '안녕'자를 빼먹어 버렸다는ㅠㅠ
1년 전 이맘 때, 연수 떠나기 전 김태호PD는 "그래도 기자님은 한 번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요"라며
상암동 MBC 사옥 본사 4층 예능 본부의 구석 회의실에서 만났다.
뭔가(영수증으로 짐작된다)를 열심히 풀칠하면서도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냐"며 그악스럽게 쓰잘대기 없는 질문을 던진 내게
결코 성실하지 않게 답했다.
그런 모습조차 사실 김태호PD스러웠지만.
가정처럼 무의미한 것도 없지만
만약 김태호PD가 종편 출범 당시
tvN이나 종편,대기업에 합류했다면
지금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해보게된다.
그는 결국 돌아와 새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2019년 상반기가 다 지나가고 있는데 새 프로그램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조금은 거창한 제목일지 모른다. 하지만 29살에 연예부에 발을 들여놓아 40살이 될 때까지 11년동안 동고동락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종영 기사를 내 손으로 직접 썼을 때 느낌이 그랬다. 30대까지 청춘이라 박박 우겨대다 덜컥 40대에 접어들어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기성세대 낙인이 찍힌 기분이랄까. 함께 기자생활을 시작한 동기들이 몇 명 남지 않은 것처럼 ‘무한도전’의 초창기 멤버들은 속속 중도 이탈했고 내게 후배들이 주렁주렁 생긴 것처럼 ‘무한도전’에도 양세형이나 조세호같은 젊은 피가 수혈됐다. ‘MC유’ 유재석의 잔소리도, 좀처럼 엉덩이를 떼지 않는 ‘거성’ 박명수의 무거운 발걸음도, 정준하의 징징댐도 모두 나의 기자생활과 맞물려 닮아가고 있었다.
◇방송 담당 기자의 ‘최애’대상 ‘무한도전’과 김태호PD
방송 담당 기자에게 ‘무한도전’은 ‘최애’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흔히 ‘최애’라고 하면 요즘 젊은이들 말로 ‘최고 애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겠지만 오해 마시라. 실은 ‘최고 애증’ 프로그램의 약자다. 그만큼 ‘무한도전’은 핵폭탄급 위력을 지녔다. 처음에는 몰랐다. ‘무한도전’ 취재가 김태호PD와 한바탕 ‘밀당’이라는 사실을.
김태호PD를 처음 만난 건 MBC를 출입처로 배정받은 2007년이었다. 그 무렵 ‘무한도전’은 김태호PD 체제 하에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발돋움 할 때였다. 이영애, 최지우, 앙리, 김연아, 패리스 힐튼까지 당대 톱스타가 출연했다. 지금이야 예능 프로그램의 해외 촬영이 잦아졌지만 흔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바이’라고 지칭하는, 멤버들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에 진짜 일본 오사카에 날아가는 통 큰 결단은 2007년 당시 ‘무한도전’만이 가능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각 스포츠지와 연예매체들은 인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취재를 위해 가장 극성맞고 가장 공격적인 기자를 MBC에 배정했다.
대부분 기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출입처로 MBC를 배정 받은 뒤 첫 미션으로 김태호PD와 만나길 고대했다. 첫 만남은 강렬했다. 여의도 경영센터 3층 예능국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빨간 스키니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범상치 않은 패션과 달리 젊은 스타PD답지 않게 몹시 정중했다. 하지만 좀처럼 자기 속을 얘기하지 않았다. 좀 친해졌다 싶어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하면 “방송을 보고 확인하시라”고 답하곤 했다. 데스크는 당장 알아오라 성화고, 방송을 보고 기사를 쓰면 “받아쓰기한다”고 누리꾼들이 야단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충청도 출신이라 측근들에게도 좀처럼 자기 속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막내 기자 시절에는 그런 김PD가 참 야속했다.
◇절정의 인기, 그리고 세차례 파업
대한민국 평균이하 여섯 남자의 소소한 도전기를 그렸던 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무모하고’, ‘무한한’ 미션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목욕탕 물을 시간 안에 퍼내는 것처럼 기상천외한 미션으로 웃음을 줬던 초창기와 달리 레슬링처럼 멤버들이 땀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가요제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MBC 드라마 ‘이산’의 보조출연자 특집은 마니아성이 강한 예능프로그램으로는 보기 드물게 시청률 30%를 넘겼고 가요제 음원은 내기만 하면 대박이 나 가수들이 줄을 서 출연하기를 자청했다. 그 와중에 박명수, 유재석, 정준하는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노홍철은 괴한에 피습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하하는 공익근무를 마쳤다. 여담이지만 박명수와 유재석, 모두 무명시절부터 꿈꿨던 배우자(의사, 아나운서)를 만났다. 하하는 훈련소 입소 전 게릴라 콘서트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여의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게릴라 콘서트장에서 하하의 눈물을 지켜보다 노홍철이 입원한 신촌의 병원으로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박명수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아내 한수민 씨가 운영하는 피부과에 환자로 위장하고 찾아갔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 갑자기 모처에서 무슨 일을 벌인다 하면 두말 않고 노트북을 들고 달려갔다. 젊고, 무모했던 막내시절이기에 할 수 있던 취재였다.
‘무한도전’이 잠시 시청자 곁을 떠났을 때도 있었다. 2010년과 2012년, 그리고 2017년이다. 언론노조 MBC본부가 공영방송정상화를 외치며 파업을 벌이던 시기였다. 언론노조원이던 김태호PD가 파업에 참여하면서 ‘무한도전’도 전파를 타지 못했다. 노사갈등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민들도 ‘무한도전’ 결방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2년 최장 170일간 파업은 하필 ‘하하 VS 홍철’ 특집 결승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일어났다. 방송 결과를 보고 싶다며 김재철 사장은 물러나라고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만큼 ‘무한도전’이 시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방증이다. 훗날 전해들은 얘기로는 김PD가 ‘무한도전’을 놓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 프로그램이 언론노조원들의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권의 방송탄압 중에도 ‘무한도전’이라는 성역은 건드릴 수 없었던 점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MB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무한도전’
‘무한도전’이 높은 인기를 누렸던 이유 중 하나는 자막을 통한 성역 없는 풍자였다. ‘무한도전’은 2009년 ‘춘향전’ 특집 당시 “미국산 소 백스텝으로 쥐 잡는 격”이라는 자막으로 광우병 파동을 풍자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깨알 같은 자막 풍자는 MB정부 시절이 전성기였다. 이를테면 멤버들이 선거유세를 펼치면서 ‘명절 때만 얼굴 비추는 그분처럼’이라고 정치인들을 꼬집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4년 ‘선택2014’라는 특집을 통해 투표를 독려했고 2017년에도 ‘국민의원’ 특집을 통해 직접 법안 발제에 나서기도 했다.
2008년 ‘무한도전’이 청와대 특집을 기획한 적도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촬영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4월 중순 쯤 해당 내용을 제보 받은 뒤 적당한 시기에 기사화하려고 했는데 정확하게 4월 23일, 한 통신사에서 관련 기사가 보도돼 물을 먹었다. 결국 ‘청와대 특집’은 취소됐다. 정권에 우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는데 왜 굳이 청와대 특집을 기획했을까. 최근 김PD를 만나 이유를 들어보니 10년의 의문이 풀렸다.
“이제와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 청와대와 저희의 기획방향이 맞지 않았어요. 당시 상황이 4대강 건설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한참 논란이 일 때였죠. 저희는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15~20년 뒤 미래의 피해당사자가 될 어린이들을 생각해서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청와대는 ‘무한도전’을 대국민담화처럼 활용하려고 했어요. 그러면 없던 일로 하자고 했죠.”
방송가에서는 ‘무한도전’이 JTBC ‘비정상회담’과 더불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돌았다. 물론 사실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박근혜 정권은 ‘무한도전’에 ‘창조경제’ 아이템을 홍보하라고 외압을 넣었다. 담당CP가 고초를 겪었지만 김PD는 뚝심 있게 버텼다. 지금의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못지않은 ‘무도빠’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만약 시즌제를 했다면 ‘무한도전’은 지속됐을까
지난해 초부터 MBC 내외부에서 김태호PD가 ‘무한도전’ 연출을 그만둔다는 얘기가 심상치 않게 들려왔다. 결정적으로 김PD가 김장겸 전 사장을 독대해 ‘무한도전’을 ‘무한도전2’로 새롭게 꾸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시즌1 종영 시점은 2017년 연말. 관련내용을 기사화했지만 MBC는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MBC 내부에서는 이를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김태호PD 스스로 너무 지쳐있었다. 우연히 예능국에서 만난 김PD는 “기자님이 가장 먼저 기사를 썼으니 잘 알 것이다 가끔 방송국을 떠나 커피숍이나 낼까 하는 유혹이 들곤 한다”(김태호PD는 커피에 관심이 많다)고 토로했다.
반전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세 번째 파업이었다. 파업으로 ‘무한도전’ 방송이 결방되면서 시즌 종영도 미뤄졌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고 최승호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MBC 예능본부도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됐다. 새 예능 본부장은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을 만든 권석 PD였다. MBC는 김PD에게 보직부장을 맡기며 그를 잡았지만 김PD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지난 2월, 멤버들과 사측에 “더 이상 ‘무한도전’을 연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수많은 예능본부장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김태호PD를 잡은 것과 달리 권석 본부장과 최승호 사장은 김PD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권석 본부장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스스로 마감했다.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단독]이라는 제목 하에 기사화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드디어 끝이구나.
가정법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지만, 만약 ‘무한도전’이 절정의 인기를 누렸을 때 시즌제를 도입했다면 김PD는 ‘무한도전’ 연출을 이어갔을까. 만약 MBC가 김PD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를 줬다면 그도 CJ E&M으로 이적한 나영석PD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을까. 무엇보다 김PD에게 왔던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그는 어떤 PD가 돼 있을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김PD가 MBC에 끊임없이 시즌제를 요구했고 MBC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무한도전’은 종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호PD는 돌아올까?
김PD는 30일 가족과 함께 해외 연수를 떠났다.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으니 떠나기 전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했다.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지 떠나기 전날인 29일, 간신히 짬을 내 정말 얼굴만 봤다. 그동안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지난 13년간 ‘무한도전’ 때문에 예능국 후배들과 점심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만족할만한 기획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밖에 나가 밥을 먹는 게 부담이었단다. 13년 세월을 몰아 선후배들을 만났고 일정을 쪼개 6.13 지방선거 독려 캠페인 촬영도 참여했다. 그는 기자와 만났을 때도 해외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고 마지막 여행 준비 때문에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밉지 않은 공손함. 그의 밀당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사람 마음이 갈대와 같은데, 외국에서 러브콜이 들어올 수도 있지 않나요?”
“돌아와야죠. 그런데 사실 중요한건 ‘무한도전’이 그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이죠. 이건 13년을 연출한 저만 할 수 있는 얘기에요.”
그렇다. 그리고 나 역시 그가 다시 돌아오길 희망한다. 우리의 새로운 밀당이 다시 시작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