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밥벌이 #3
나는 몇 년 전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사실상 스카우트 비슷하게 이직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어깨는 자신감 뿜뿜이었다.
지금의 회사는 기업 규모는 중소기업이지만, 업력이 길고 대외로 알려져 있는 회사이다. 오너가 대기업 상속자인 점도 이 회사로 이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유인즉슨, 회사의 안정성에 있었다. 이전 회사는 늘 회사가 불안정했었다. 그 이후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무조건 "안정성"이 최우선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스타트업 홍보실장으로 일했다. 금융 관련 스타트업이다 보니, 자금은 많이 필요하고 대신 투자를 받지 못하면 운영이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받고 일하고 있었고 연 2회 연봉 협상을 하는 등 나름 잘 나가고 있었다. 그런 회사를 두고 지금의 회사로 온 건 그놈의 "안정성"에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오너는 따로 있었고 경영만 맡은 대표이사가 내 직속 상사였다. 사실상 오너가 아닌 직장인이었다.
대표는 본인 자리보전에 전전긍긍했다. 3년 단위로 계약 연장하여 회사를 다녔지만 자신의 수족을 잘라내는 것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데 어쩔 수 있냐"라고 했지만, 사실 본인 욕심에 회사 잘 다니는 사람들 외부에서 영입해 와서 본인 기대에 못 미치면 다 내쳤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람 자르는 게 뭐 대수냐 싶긴 하지만, 문제는 대표가 항상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댔다는 점이었다. 그 결정이 너무도 자주 바뀌었다.
조직개편을 몇 개월에 한 번씩 했고 개편한 조직이 몇 개월 만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시 조직개편을 단행하곤 했다. 제대로 경영을 해보지 못한 터라 스스로도 계속 결정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는 듯 보였다.
사실, 조직을 개편했으면 일정 기간 동안 그 조직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바로 잘라냈다. 잘라내는 것에 주저함은 없었다.
물론, 그 손바닥 뒤집기 수정으로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었지만 직원들의 신뢰를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뭔가를 하겠다고 했다가 몇 개월 만에 손바닥을 뒤집으니 직원들 사이에서도 "끝까지 하는 게 없다. 제대로 낸 결과가 없다"는 것이 현재 대표에 대한 평가였다.
그에 비하면 나의 경우, 몇 년 동안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으니 감사한 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조차 예외일 수는 없다. 얼마 전, 대표는 뜬금없이 나를 엉뚱한 부서로 발령 냈다. 처음엔 "뭐지? 나더러 나가라는 건가?" 했었다.
나는 1년 전에 결혼해서 아이를 갖기 위해 바로 난임병원에 다니던 차라 이직이나 퇴사를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때였다면 어떻게든 이직을 했을 터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자율출퇴근이나 재택을 할 수 있는 지금 회사에 있을 때 아이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어떤 방도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의 상태는 우울증과 피부병으로 나타났다. 물론, 나의 심리 상태가 이러한데 아이가 생길 리 없었다.
관둘 수도, 이직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가 생기지도 않은 채 나는 회사, 집, 난임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으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들이다.
최근에는 대표가 나를 다시 불러 "또 조직개편을 하겠다"라고 했다. 나의 의견을 듣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의견을 듣는 건 아니고 통보였다. "네가 싫다면, 지금 부서에 남겨두겠다"라고 했지만 나를 여기든, 여기든 보내려고 하는 마음은 충분히 전달받았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아이가 생기든, 생기지 않든 나는 내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요즘 회사들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며 올해만 해도 직원이 20명 가까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났다.
비용이 줄었지만, 당연히 수입도 많이 줄었기에 남은 인원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돈 많이 벌었을 때, 신나게 돈 잔치를 했던 대표가 이제 와서 보니 참 무능하게 느껴지는 때라고 할 수 있다.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회사 사무실을 옮기고 노트북, 데스크 등 전 직원에게 새로운 것들로 돈 잔치를 하며 우리 회사 잘 나간다고 돈자랑을 했다.
하지만 위기에 대비한 돈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의 상황까지 온 것이다.
무능한 오너는 본인이 전면에 나설 수 없으니 현재 대표를 여전히 전면에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무능한 오너만큼 무능한 대표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까.
나는 떠날 준비를 한다. 40대 중반, 직장인이 아니라면 난 뭘 해야 할까. 앞길이 막막하지만, 일단 몇 달 준비기간 동안 부지런히 이력서를 넣고 이직 준비를 해본다.
어떻게든 방법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