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만한가?
어디다가 소리를 지르지?
덤덤했던 사이였는데, 한 순간에 원수처럼 돌변해서 나에게 악다구니를 쓰다니.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고, 맺힌 것도 없는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뒤집어지는 목소리를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나 하다가
상대가 제풀에 전화를 끊기에 그토록 비문명적인 순간으로부터 놓여났다.
말을 못 해서 대응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이만큼 들고 보니 바로 맞대응하는 일이 몹시 귀찮고,
또 그럴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어떤 포인트에 그렇게 불같이 화냈는지는 이해가 갈 듯하다가도
예의라고는 개한테나 줘버린 태도를 생각해 보면
헤아리고 싶은 마음이 저 멀리 달아난다.
혹여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을까 봐 옆지기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글을 읽어보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 좀 보아줘. 했더니
제삼자가 보기에는 큰 문제가 보이진 않지만,
본인이 보았을 때 자기 얘기다 싶은 것은 되도록이면 쓰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몇 줄을 지우고 다시 올렸더니
옆지기는 다시 말하길, 원본도 살려놔. 혹시 모르니까, 하고 말한다.
나보다 곱절은 냉철하고 사리분별이 똑 떨어지는 내 옆지기는
오늘 특별히 더 다정하다.
시간이 가면 기분이 나아지려나?
사실, 나아지고 말고 할 것 없이 할 일_공부할 것이 태산이다.
사람들은 참 여러 가지 종류가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나는 왜, 하필, 이런 길로 들어서서는
저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사서 겪고 있는 걸까 하는 자괴감이
차례로 몰려왔다가 그 마저도 한풀 꺾인 지금.
아아... 내 코가 석자구나.
아이의 입시는 진행 중이고.
시시때때로 용태를 파악해야 하는 식구들이 있고.
어김없이 따라잡아야 하는 학사일정이 있고.
매일같이 수업일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