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 상태에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습게도 주변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해 줄 수 있는 이어폰을 검색해 보던 중이었다. 아주 조금의 소리도 들리지 않게 해 줄 이어폰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검색하고 어떻게든 귀를 틀어막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내가 쉬고 싶어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가끔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느라 가장 중요한 나의 현재 상태를 놓친다. 알아차렸을 땐, 이미 적색경보가 켜진 상태일 때가 많다. 신호등처럼 적색으로 바뀌기 전에 예비등이라도 켜주면 좋으련만. 마음은 걷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서 이렇듯 온전히 적색이 켜지고 나서야 뒤늦게 주춤거리며 멈추는 경우가 잦다. 요즘은 사람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특별히 주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사람'이라는 단어 자체가 품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저 밀려드는 생각에 속절없이 떠다니는 중이다. 제일 많이 떠올리는 것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라는 문장이다. 예전엔 이 지극히 당연한 말이 위로가 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 사는 거 정말 다 똑같을까? 의문이 든다. 정말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여러 감정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이 특이하거나 희한한 것은 아닐 테니 다행이라고 스스로 달랬다. 나는 약아빠져서 나를 달래야 하는 순간에는 기가 막히게 나를 달랜다. 그러나 요즘은, 다른 쪽으로 약아빠져서 나를 못살게 구는 감정과 편을 먹은 채 나를 흔드는 나만 남았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외치는 나는 모양이 다른 제각각의 비수를 마음에 꽂는다. 다른 사람들은 잘 살고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힘들어도 버티며 삶을 이겨내는 중인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냐고 다그친다. 그렇게 이겨내고 버티는 사람들만이 정상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라는 말에도 포함될 수 있는 것이라고, 약하고 약아빠진 '나'는 거기에 속할 수 없다고 재단하기 바쁘다.
여러모로 힘이 빠진 나는 그런 말에 대적하지도 못하고,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변명하지도 못하고, 그저 그렇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슬퍼할 뿐이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데 제때 지키지 못한 죄로 토라져버린 '나'의 투덜거림을 듣는다. 얼른 '나'와 화해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 궁리를 해야 하는데, 지쳐서 투덜거리는 나에게 또 지쳐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는 '나'와 서로 등 돌리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도 좋지 않고, 영화를 보는 건 귀찮고, 책을 읽는 건 더 귀찮다. 뭔가 잘못되긴 잘못된 거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걸을 때마다 이가 맞지 않아 덜그럭 소리를 내는 기계가 된 것 같다.
기분이 좋지 않아 어제 울고 말았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괜히 나도 울고 싶어졌다. 누가 너를 괴롭혔냐고, 내가 코를 때려주겠노라 했더니, 친구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울고 싶어진 거라고, 누가 괴롭혔냐고 묻는다면 스스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친구는 '내 코를 때려라'라고 말했고, 나는 그러긴 싫다고 했다. 나는 '나도 요즘 여러 생각에 파묻혀서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말했고, '우리 스스로의 코를 때리자!'라고 덧붙였다. 일하느라 바쁜 친구는 한동안 답이 없고, 나는 다시 덧붙였다. '근데 우리는 너무 약아빠져서, 스스로 때리라고 하면 아주 살살 때릴지도 몰라, 의미 없다'. 친구는 한참만에 '코 맞으면 너무 아플 테니까 때리지 말자'라고 했고, 나는 '그래, 잘못하다간 병원비가 더 나올 수 있으니 여기서 그만'하자고 했다.
코를 맞은 것 같이 찡해져서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금세 빨개진다. 나는 내 코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이 그런 시기여서 더 쉽게 빨개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 어떤 시기냐면……,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뭘 하고 싶지 않은 시기. 꼭 뭘 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나를 괴롭히는 시기. 꼭 한 번쯤 찾아와서 온몸을 저리게 만드는 시기.
이럴 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 생각하지 않기로 하면서도 생각하느라 입맛이 없어지는 시기. 전에도 분명 겪은 감정이라 이쯤 되면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올 것을 알면서도, 생각한 시점에서 발이 닿지 않아 당황하는 시기. 나의 바닥이 더 깊어진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높은 데서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어 나는 어디서부터 나를 놓쳤는가, 고민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럴 때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