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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비교는 나에게 도움이 된다

비교하는 마음

by 김단한

내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동네는 초, 중, 고등학교와 학원이 몰려 있어 각 나이대의 학생들을 아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짓거나 홀로 유유히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그들이 하는 대화가 들려오곤 한다. 깔깔거리는 웃음과 악의적이지 않은 욕설 안에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슬며시 묻어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이 '어제 한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거나, '아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잠깐동안 이 친구와 떨어져 있는 동안 자신이 홀로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실제로 겪은 일이 70% 정도면, 나머지 30% 정도는 '그 일로 인해 무심코 떠오른 감정'을 말하고 있다. "내가 아까 이런 일을 겪었는데, 그건 좀 아니지 않냐? 아무래도 걔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진짜야, 왜냐면 내가 걔보다 그걸 잘못하니까 걔는 나를 밑으로 보는 거지."


감히 생각하건대, 비교는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와 절대 멀어지지 않는 단어인 듯하다. 비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한다. 친구가 가진 장난감이 더 좋아 보이고, 내가 가진 장난감은 별로 좋지 않아 보일 때. 친구는 예쁘게 머리를 땋았는데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머리가 (엄마가 아무리 공들여 땋아주었을지언정)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조금씩 커가면서 비교는 구체적이게 변하는데, 시험 성적, 외모, 키, 더 나아가서는 집안 환경, 사귀는 친구들까지 포함된다.


외적인 것만 포함이 된다면, 그럭저럭 어떻게든 상황을 변화시켜 보려고 노력할 순 있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비교된다면, 조금 더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거나 독서실을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에게 비법을 전수받거나,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겠다. 그러나, 비교가 불러오는 것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비교는 우울과 불안, 심지어는 외로움과 자책, 허무함, 분노, 별별 감정을 다 불러오는 아주 나쁜 녀석이다.


나는 '비교'로 인해 많이 얻어맞았다. 잘게 잘게 맞은 것이 아니라, 아주 크게 한방씩 얻어맞는 편이다. 추스르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으로 인해 얻게 된 상처 역시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는 자꾸 나를 찾아온다. 아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비교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교를 부른다.


나의 상황을 예로 들자면,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비교하며 보낸다. 다른 것들은 그렇게 타격이 크지 않은데, 내가 좋아하는 분야,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 내가 성과를 이뤄내고 싶은 분야에서 '비교'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읽는 행위를 잠시 멈추게 하고, 무언가 떠오르게 하고, 깊게 한숨을 쉬게 하고, 허공을 바라보게 하는 문장을 쓰는 사람들을 아주 부러워한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쓰거나, 저녁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꾸준하게 글을 쓴 결과가 아주 좋은 이들 역시 부러워한다. 그들과 나를 비교한다. 나는 제대로 일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고, 글도 제대로 쓰고 있지 않은 것 같고, 근데 글 쓴답시고 이러고 있고, 나는 대체 뭘까?


비교가 바깥에서 머물지 않고 나를 침범하는 순간, 우리는 비교가 몰고 오는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린다. 분노와 죄책감, 회의감과 후회, 짜증,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어서 더 괴로운 마음 등이 휘몰아친다. 만신창이가 된 후, 깔끔히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다. 비교는 후유증이 거세다. 마음에 남은 상흔이 끊임없이 따끔거리며, 나의 상황과 상대의 좋은 상황만을 상기시킨다.


그야말로 끊이지 않는 비교 속에 살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만 가지의 단점을 알았다. 그에 반해, 상대의 수만 가지 장점을 알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너무나 너무나 괴로웠던 나는, 마음을 좀 고쳐먹었다.


자연스레 우울('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할까, 정말 괴로워.')과 불안('저 사람은 저렇게 멋있는데,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나는 평생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을 불러오는 비교에게 얻어맞더라도 조금 안 아프게 얻어맞기로 마음을 다 잡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아니, 아파도 너무 아프니까. 비교하는 순간엔 오만 것들이 전부 이유가 되고, 원인이 되고, 불행이 된다. 그렇게 나를 갉아먹는 짓을 제발 그만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한 것이, 얻어맞더라도 조금 덜 아프게 맞아보자는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비교하는 마음을 아주 낱낱이, 잘게 잘게 나눠서 펼쳐놓고,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


"저 사람은 저렇게 부지런한데, 나는 너무 게을러. 저 사람은 회사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는데, 나도 일하고 있지만, 저 사람만큼은 못해." 이 마음을 낱낱이 펼친다. 펼치고, 펼치다 보면 핵심이 보인다. 쉽게 말해서, 내가 상대와 나를 비교하는 중점적인 이유, 비교를 불러오게 하는 내가 상대에게 가장 부러운 단 한 가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비교하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와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보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나의 보완할 점이 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문단의 가장 앞선 말에 있어서 나는 상대가 회사에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잘 분할하여 사용하는 건강한 삶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비교를 불러오는 가장 중점적인 핵심을 찾아서, 조금은 이성적으로 나의 현 상황에 대입하고, 내가 내 삶에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비교는 더 이상 나쁜 녀석이 아닐 수 있다.


비교를 비교에서만 그치지 않고, 단단하게 뭉쳐 내가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계단으로 만들자. 이렇게 쓰고도, 이미 알아도, 비교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그로 인해 생기는 우울과 불안은 늘 찾아오겠지만, 두려워하지 말자. 익숙해지려면, 계속 겪고 부딪는 수밖에 없다. 건강한 비교는 삶에 생기는 균열을 메꿔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재료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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