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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건 싫은 거예요

싫어하는 마음

by 김단한

어떤 것에 관해서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약간 주춤거린다.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인데, 어떻게 들으면 신중하다 느껴질 수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내가 일단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쉽게 말해 상황파악을 위해서인데, 여기서 상황파악이란, '어느 쪽에 더 많은 의견이 쏠리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주춤거림, 한 걸음 물러서기는 내가 실제로 내세우고자 하는 의견은 잠시 덮어두고,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쪽,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쪽에 가까이 다가가 기웃거리며 '어, 맞아. 나도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말하기 위한 액션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실제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말하는 것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어쭙잖게 마음에 들어선 탓이다. 더 솔직하게 말해선,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각 다른 삶을 살았다. 살면서 영향을 받은 일, 경험한 일부터 시작해 아주 작게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도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생각이 같아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요즘 영화나 드라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지만)다. 당연하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고,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생각이나 흔히 말해 사상이 정립되는 것이니 다를 수밖에. 그러나, 그렇게 다른 우리도 단 한 가지는 같게 생각한다.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좋다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을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험과 대화의 단계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향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던지, '너와 이야기를 하면 내 마음이 편해'라는 말을 던지곤 한다. 나는 그 말을 줄곧 받아먹는다. 받아먹으면서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행복한가?


그들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던져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에,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의 의견을 숨기고, 나의 마음을 제쳐두는 일을 택했다. 감히 인정하건대, 그와 반대되는 말이 나오게 되어 토론의 장이 열린다 한들, 열성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토해내는 상대보다 더 논리 정연하게 말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어떻게든 좋은 상황을 만들려는 안일한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에 대해 정확히 말할 자신이 없는 무력감에 결국 이런 사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이런 사태란? '좋은 게 좋은 거란 공식은 상대에게만 적용되고, 나에겐 아무것도 좋을 게 없는 애매한' 일을 뜻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가, 다시 되짚어보면 결국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다. 싫은 것이 명확해지면 좋은 것도 명확해지게 마련인데, 나는 그 무엇도 정확하게 두지 못한 채 애매모호하게 굴었다. 슬쩍 의견을 내보이다가도, '그게 아니지!' 라거나, '다시 한번 제대로 설명해 봐' 즉, '나를 설득해 봐'라는 식으로 굴면 꼬리를 내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의견이 나에게조차 명확해지지 않는 순간이 오면 주눅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불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 봤다. 이게 과연 나에게 좋은가? 음. 좋을 리가 없지. 그런 상황이 지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딱 두 가지. 1)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찝찝한 마음 2) 어떤 자리에서도 내 의견이나 마음, 그때 들게 되는 감정을 쉽게 말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 불안.


결국, 또 불안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래서 나는 이 불안에서 조금 벗어나기 위해 싫은 건 싫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여겼다. 물론, 어떤 토론에 있어서 상대의 의견에 관해 무조건 싫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싫다!' 다음에, 그것이 왜 싫은지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좋은 것에 관해 말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좋은 것이 왜 좋은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다만, 싫은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말을 굉장히 짧게 함축하는 버릇이 있다. 싫은 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싫으니까 후딱 말해버리고 덮어버리려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더 차분히, 조금 더 섬세하게 싫은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말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상대에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나에게 하는 말이 되기도 하니까.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고, 그것이 왜 싫은지, 말함으로 인해 나는 나의 세계를 조금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긴다. 여기게 되었다.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것이 왜 싫은지, 어떤 부분이 싫은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좋아질 수 있는지, 싫어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의 영역으로 들어오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그 부족한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싫은 감정을 불러오는지, 등을 떠올릴 수 있다면, 비로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애매모호하고 두리뭉실한 말이 나에게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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