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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 다르듯 '나', '너' 다르니까

욕심내는 마음

by 김단한

나는 내가 가진 마음 그릇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그 그릇은 마법의 그릇이라 크기가 매번 변하기에, 대충 어느 정도 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느 날은 간장 종지만큼 작았다가, 어느 날은 마을 사람 전부에게 나눠줄 김장 김치를 충분히 담가낼 수 있을 정도로 큰 대야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마음 그릇의 주인이 분명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마음 그릇의 크기를 잘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시는 것은 자연스레 습관으로 자리 잡은 한 부분이다. 일부러 마시려 하지 않아도 나는 물을 자주 마신다. 언젠가부터 자리 잡은 좋은 습관인데, 매번 좋지만은 않다. 분명 좋은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좋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물을 자주 흘린다. 물을 단번에 마시고 끝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세 번의 한 번씩은 꼭 물을 흘린다. 흘린다기보다는 쏟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물병의 입구와 컵의 위치를 잘 조절하지 못해서 흘리는 것이 아니다. 물을 천천히 따르지 않고, 아주 콸콸 쏟아붓기 때문에 컵에 들어차야 할 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물병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더 자주 일을 만든다. 물을 살살 따르는 것이 좋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얼른 물을 먹고자 하는 작은 욕심에 물을 콸콸 쏟아버린다. 덕분에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에 들이는 시간만큼 흘린 물을 닦는 시간도 충분히 허비하는 중이다.


물병 가득 찬 물이 그리 크지 않은 컵에 콸콸 쏟아질 것을 알면서도 매번 이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나는 문득 내가 가진 마음 그릇의 크기가 이 작은 컵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은 마음 그릇에 쏟아붓는 불안과 불안이 함께 가져오는 분노, 슬픔, 자괴감, 자책감이 넘쳐흘러 마음의 방이 잔뜩 더럽혀지는 상상을 할 때마다 나는 괜히 막막해졌다. 불안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불안은 여러 곳에서 오니까, 한 방향만 지키고 서 있기 어렵다. 기뻐도 오고, 슬퍼도 오고, 화가 나도 불안은 언제든지 오니까. 이불 안에서 편히 누워있다가도 이 불안을 느끼지 않는가!


물이 넘치는 것을 보며 마음에 쏟아붓는 불안을 떠올린 나는, 내가 오늘 가장 불안해했던 것에 관해 생각했다. 나는 오늘 나의 앞날에 관해 쉴 새 없이 불안해했다. 시작은 이랬다. 스물 정도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거기엔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 모습이 쓰여있었다. 그때는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땐데도 나는 '고층 아파트의 통창 앞에 멋진 책상을 두고 앉아서, 뿔테 안경을 쓰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나의 모습'을 적어놓았다. 고층 아파트는 아니지만, 어쨌든 책상 앞에 앉아 뿔테 안경을 쓰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긴 하니까 절반 정도는 이뤄냈다고 봐야겠지만, 나는 괜히 우울해졌고, 우울은 곧 불안을 가져왔다.


처음 글을 쓸 때는 광대한 포부가 없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세계를 그리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썼다. 세상이 멸망하거나, 알 수 없는 괴물이 등장하거나, AI 인공지능과 친구가 되는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쓰면서 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에세이는 일상 기록을 위해 썼다. 내 마음에 관해 썼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할머니와의 하루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썼다. 잃지 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서 썼다. 그렇게 쓴 글들이 책으로 엮여 출판이 되었을 때, 나는 꿈을 모두 이뤘다고 여겼다. 정말이지, 그때는 내가 출판만 하면 끝이 나는 줄 알았다. 여기서 끝이란, 글 쓰는 생활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는 무엇을 쓰지? 생계는 어떻게 하지?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그야말로 힘든 생계형 작가의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었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단한 작가의 자리에 오르지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계속 글을 쓸 뿐이었다. 글을 쓰는 생활은 계속되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침범하는 불안은 나에게 계속 되물었다. 정말? 정말 괜찮니?


우울함이 몰려왔고, 우울함 때문에 불안했고, 다급해졌고,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또 불안하고, 그러면서 조급해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야는 밝아서 주변의 모든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잘하고 있고, 잘 사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글을 쓰면서 강연도 다니고, 돈도 벌고, 원하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척척 써내고, 써내는 책마다 10위권 안에 들어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칭을 늘 붙들고 사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기다리는 이야기를 써내는 사람, 이야기를 써내지 않아도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불안해졌다.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할까부터 시작해서, 내가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대체 일을 하면서 글을 어떻게 쓰지? 피곤하지 않은가? 어떻게 매번 저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내지? 그렇게 궁금해하다가도 금방 불안이 치여 쓰러졌다. 불안 다음에는 나쁜 마음이 연기처럼 피어올라 눈을 맵게 했다. 나쁜 마음은 주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지금 여러 상황 때문에 못하는 거야.' 같은 자기 합리화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글 쓰니 좋겠다, 그니까 걱정이 없지!' 같은 비아냥을 탄생시켰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서 한껏 우울하고 나면 좀 괜찮아지냐고 묻는다면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또 불안하다. 그렇게 뱉고 나면, 내가 초라해지고, 초라한 내가 싫고 막막해 불안하다.


언젠가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은 지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내가 모르는 노력,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그런 노력을 분명히 했을 것이라 외쳤다. 그런 사람들은 대단하고, 내가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누려도 된다고 외치며,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높이 샀다. 그런 다음에 내 마음이 좀 나아졌냐면, 음, 그건 또 아니다. 계속 부럽고, 계속 불안했다. 부러움은 늘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그 뒤를 불안이 졸졸 따른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니 말할 것도 없다.


이불 안에서 자주 다른 사람의 업적을 보며 대단하다고 여기고, 부럽다고 여긴다. 자꾸만 그가 부러워 견딜 수가 없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을 읽어야 하지 않나. 그러면, 당연히 요즘 많은 관심을 받는 글을 읽을 수밖에 없고, 그게 또 불안을 불러온다. 잘 쓰인 문장을 잘 쓰인 그 자체로 만끽하고 싶다.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이런 문장을 썼는지 생각하고, 나의 횡설수설 중구난방의 문장과 서사를 떠올린다. 흐. 불안하다. 그렇게 불안과 욕심과 자책과 허무와 분노를 넘나들다 잠이 들면, 어김없이 나쁜 꿈을 꾼다.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하고 찝찝한 아침을 맞이한다. 악순환이다.


이 불안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은 없는 걸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없다. 사는 내내 불안이 함께 할 것임을 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불안을 컨트롤하는 것. 아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콸콸 쏟아붓지 말고, 천천히 담을 것. 내 마음 그릇이 작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왕 붓게 되는 불안, 조금 더 조심스레 부을 것. 그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까. 흘러넘쳐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불안을 조금, 아주 조금만 붓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끔 실패하겠지만, 매번 실패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아직 부러움과 그에 따른 욕심과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어렴풋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요즘 '벌어지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고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여기에 답이 있다. 앞서 가지 말란 이야기일 것이다. 미래에 중점을 두지 말고 현재에 굳건히 발을 딛고 버티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부러운 건 부러운 대로 두고, 딱 거기까지만 할 것!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에 빗대어 현재의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말 것! 부러운 것은 부럽다고 인정하고, 딱 거기까지만. 나를 비교해 자꾸 불안을 불러오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할 것! 아우, 제일 어렵지만, 해야 한다. 내가 조금 편하기 위해선 해야 하는 일이다. 분명히. (그러나, 난 또 누군가를 부러워할 것이다. 세상엔 멋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분명 행복하다. 그리고, 행복해서 불안하다. 괴롭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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