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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표현하는 마음

by 김단한

바야흐로 독립출판 페어의 시즌이 왔다. 첫 책을 독립출판을 통해 펴내서 그런지 이 시즌이 되면 괜히 기분이 설레고 좋다. 북페어에 참가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많은 부담감(역시 그 뒤를 졸졸 따르는 불안감까지)을 불러온다. 이미 펴낸 책이지만 혹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하고, 조금 더 많은 독자분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굿즈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아야 한다. 테이블의 크기에 따라 나의 책과 굿즈를 올려놓을 최적의 구도를 정하고 콘셉트에 맞는 작은 소품이나 테이블보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자잘하게 참 많지만, 이것저것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행복하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꾸준히 쓰는 작가들을 통해 동기부여를 얻기도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는 순간은 참 소중하다. '책'이 좋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풍기는 은은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타지에서 책과 그 외 물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종일 자리를 지키는 피로감을 옅어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책을 사고파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시간이 계속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를 만나면 행복하다. 독자 역시 작가를 만나면 행복하다. 쓴 것을 기꺼이 읽어주는 사람들과 그 읽음 행위를 위해 기꺼이 쓰는 일을 놓지 않는 이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자리. 그래서 나는 북페어만이 줄 수 있는 그 아늑한 대단함을 절대 잊을 수 없다.


가을이 되면 봄부터 시작해 여름을 거치며 사는 동안 마음에 알게 모르게 생긴 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스며든다. 괜히 쓸쓸하고 쌀쌀한 이 계절을 어떻게 하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 북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때 나는 마침 독립출판 신간(구시대적 사랑)을 펴낸 터라 냉큼 신청했더랬다. 지방에 사는 나는 북페어 참가 확정이 되자마자 북페어 기간 동안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고, 테이블에 올려둘 책을 넉넉히 인쇄했다. 조금 욕심내어 책을 인쇄하면서 '과연, 이 책을 전부 판매할 수 있을까? 누가 내 책을 읽어주기나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부족한 것보다는 조금 넘치는 게 낫겠지 싶어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그건 잘한 행동이었다.


독자분들 뿐만 아니라, 작가들 역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반가움을 전하고, 서로의 책을 구매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괜히 뭉클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또 아니어서, 나는 테이블을 지키는 내내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앞으로도 계속 쓰는 행위를 힘들어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누가 나의 문장을 읽어줄까, 뭐 그런 생각에 갑자기 먹먹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불쑥 찾아드는 불안은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번에도 한방 얻어맞나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테이블 앞에 섰다.


"미쳤다!"


그분은 나를 마주하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그리곤 덧붙였다.


"여기 계셨네요! 인스타그램에서 북페어 참가 소식 듣고 작가님 보러 왔어요! 진짜 제가 너무 좋아해요."


곧이어 그분의 가방에서 나의 책이 나왔다. 잘 읽었다고, 좋았다고, 구체적으로 뭐가 좋은지 말하기가 어렵지만 아무튼 좋았다고, 그분은 계속 나를 향해 마음을 던졌다. 좋았다고, 좋다고. 좋으니까 계속 쓰라고. 그리곤,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정말, 작가님 만나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뤘네요!


세상에나. 내가 누군가의 소원이 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나를 보러 왔다고 말했지만, 마치 내가 그를 기다린 기분이랄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테이블 건너의 귀인을 보면서 나는, 그가 내민 책에 사인을 하면서 나는, 정말 멋없게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나를 좋다고 말해줘서 정말 너무 고마워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재미있고 싶어서다. 내가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재미있어야 남에게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약간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글을 쓸 것이다. 이런 작은 신념은 글을 쓰기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굳건히 나의 글쓰기 행위에서 절대 빠지지 않을 첫 번째 조항으로 자리한다. 아무튼, 그렇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어쩌면 그래서 남들이 잘 읽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을 만나는 게 소원이었다'며, '문장이 좋아요, 그냥 공감이 가서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그분이 가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 좋음을 표현했던 그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가고 나서도, 몇몇 독자분들이 더 테이블을 찾아왔다. 이 책 진짜 좋았어요! 앞으로도 계속 써주세요. 과분한 그런 말을 들으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아이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 하나 살리셨어요. 이렇게 말하면 그분들이 부담스러워 도망갈 것만 같아서, 나는 정말이지 송구스럽단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만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이 준 에너지는 절대 닳지 않아서 가끔 이불 안에 몸을 숨긴 나를 끌어내는 아주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이불 안에 있는 것이 부끄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얼른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뭐라도 써야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른다. 정말로, 말 한마디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


나는 오늘, '표현하는 마음'에 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를 좋다고 표현하는 마음에 관해서 먼저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좋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작가(물론, 관련된 여러 많은 분들이 있겠지만)가 끌어내는 에너지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적이 있었던가? 냉정하게 말해서 없었다. 왜 없을까를 고민해 보니, 답이 선명했다. 나는 좋은 것에 관해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도 많았다. 갑자기 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꼭, 무언가를 좋다고 표현하는 것에 있어 엄청난 단어와 문장이 필요할까? 나에게 에너지를 던져주었던 이들은 아주 담백한 문장을 구사했다. '저 이거 진짜 좋아요, 그냥 읽는데 편하고 좋았어요. 읽는 동안 제가 편했어요.'. 그래, 이거다. 나는 그들로부터 에너지는 물론, 여태 내가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표현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지도받은 것 같기도 했다.


표현하는 마음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은 금방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마음 표현의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된다. 그냥, 좋은 건 좋다고 표현을 하자. 일단 지금 좋은 건 좋은 거니까. 미루지말자. 좋은 걸 좋다고 표현하는 순간,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것을,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좋은 것을 꼭 멋지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그저 좋았고,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고, 그 문장으로 인해서 내가 겪은 어떤 것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든든했다, 정도만 표현해도 좋다.


가끔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 댓글을 매일매일 다시 읽는다. 답글을 달고 싶은데, 자꾸 망설인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표현해보려 한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없고 힘들고, 마음 쓸 일도 많았을 오늘 하루에 제 글을 읽을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꼭 댓글이 아니더라도 '하트'를 눌러주시고, 마음을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가끔 글을 쓰고 업로드한 후에는 혼자 벽을 보고 말하거나, 허허벌판에서 소리치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글을 올리자마자 곧장 읽어주시고, 읽은 후에 마음을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기분을 날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꾸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덕분입니다! 마음을 써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답글이 없어서 서운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모른 척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당연하게 느낀 것이 아닙니다. 더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어서 망설이다가 놓쳐버렸습니다. 앞으로는 저도 주신 마음을 잘 받고, 그때그때 잘 표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표현하자. 다시 생각해도 표현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걸 좋다고 표현하고 나니 내 마음이 더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오늘은 이불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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