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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안을 아주 조금 즐기는 쪽으로

이불 안, 이 불안

by 김단한

어렸을 적부터 엄마를 통해 자연스레 익히게 된 많은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 정리하기'다. 사실, 일어나자마자 미적거리거나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조금 누워있겠다는 핑계로 금방 정리하지 않는 일이 대다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대충이라도 정리하려 하는 편이다. 엄마는 정리의 신이라서 이불의 각을 잘 맞춰 정리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게 부족하다. 눕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침대 위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이불을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이것저것 다 말해봤자 어차피 핑계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이불을 바꿨다. 얇고 가벼운 이불이었다가 이제는 몸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이불이 나와 함께 한다. 새 이불을 꺼내 은은하게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가벼운 이불을 덮었다가 조금 무게가 있는 이불을 덮는다고 해서 자는 것이 힘들어지거나 더 답답해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이 이불을 덮고 다양한 불안에 맞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오겠지, 싶은 생각은 들었다. 가을과 겨울은 여러모로 마음이 허해지기도 하는 계절이니까. 무엇보다 이겨내야 할 것들이 조금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몸까지 움츠러들어 있으면 이불 안에서 나오기 쉽지 않을 테다. 조금이라도 더 이불 안에 머무르려 하는 시간이 많아지겠지. 온전한 포근함을 느끼면 괜찮겠지만, 그것이 아닌 오묘한 감정으로 무작정 늘어져있는 일은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불안에 관해 쓰면서, 불안을 불러오는 다양한 마음에 관해 쓰면서 정말이지, 불안을 불러오는 마음이 이렇게도 많았나 싶어 새삼 놀랐다. 아직 쓰지 못한 마음들이 너무 많다. 그 부분은 또 천천히 써야지. 쓰는 행위가 확실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 듯하다. 어찌 되었건, 내가 스스로 그 불안을 인지하고, 그 불안이 불러오는 감정을 나열하고, 하나씩 톺아보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내가 조금 더 가지고 있으면서, 좋은 방향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감정을 조절하는 일은 오랫동안 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오늘 이부자리를 정리하면서, 나는 간밤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시간을 살짝 그려봤다. 아주 편안하게 코를 골면서 잤을 것이다. 그렇게 자고 난 다음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나를 포근하게 덮어주었던 이불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고 닦아내면서, 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마음을 관리하는 과정과도 같다고 느꼈다. 이불을 덮는 한, 내가 잠을 자는 한 어쨌든 이불은 나와 함께 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나를 좋게도 하고 나쁘게도 할 것이다. 우울과 불안에 아주 심하게 휩쓸렸던 몇 달 전엔 이 불안이 무서워 이불 안에서 나가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이불이 마치 이불이 아니라 그물처럼 느껴지던 나날이었다. 스스로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짐과 무기력함을 그저 이불 안에서 누리는 자유라고 생각하고 나를 잘 챙기지 못했다. 이불은 항상 헝클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나오기까지는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안다. 내가 이불을 벗어던지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불을 잘 정리하고, 하루를 잘 마치고 돌아오면 포근한 이불이 나를 감싸줄 것을 안다.


아직 겪지 못한 감정들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가올 감정들에 관해 생각하면 괜히 두려워지고 불안하다. 불안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것 같은' 어떤 순간에 빗대어 찾아오곤 하니까. 매일 일어나 이불을 잘 정리하듯이, 마음을 잘 가다듬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괜히 불안에 치여 방향을 잃어버릴 일도 줄어들겠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언제까지고 불안이 나를 불쑥불쑥 찾아올 것을 안다. 그러나, 굳이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나는 평소처럼 이불을 잘 덮고 잘 자고, 일어나선 이불을 잘 정리하고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그렇게 반복할 것이다. 땅을 다지기 위해선 지겨운 제자리걸음이 꼭 필요한 법이다. 나는 내 마음을 잘 다지기 위해 지겨운 그 어떤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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