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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Dec 01. 2017

디자이너처럼... : 왜?

직장에서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며 일하기_2

왜 디자이너처럼 인가? _ 예술, 디자인 그리고 비즈니스 (1)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디자인을 단순히 장식쯤으로 여기거나 값싼 치장을 통해 물건이나 공간의 진부한 모습을 숨기는 역할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산업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 나올만한 제품과 서비스가 다 나온 상태에서는 디자인은 소비자의 선택조건이 되었고, 비즈니스에서는 마케팅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었다. 이전에는 기술이 담긴 제품을 포장하는 수준이 디자인이었다면, 이제는 디자인된 형태에 기술을 꾸겨 넣어야 한다. 디자인이 기술을 이끌어 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기업경영까지도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방법을 도입해 혁신을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의 ‘디자인 씽킹’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신규 사업 자체를 제안하거나, 고객 목표를 구현하거나, 기업 관계자를 성장시키는 보다 넓은 의미의 사고방식을 의미하는 시대다.

그럼 디자이너와 비즈니스맨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둘의 차이는 사물과 프로젝트를 보는 시각,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디자이너는 문제를 시각화하여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비즈니스맨은 치밀한 분석과 그 결과에 따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프로젝트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을 확산하고 통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비즈니스맨은 처음부터 실행 가능한 방법에서 시작해 개선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이나 기업에서 ‘개선’과 ‘혁신’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부터 시작된다.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여러 생각들     

[ 허버트 리드 (Hebert Read) ]

영국의 예술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1893~1968)’는 「예술의 의미(The meaning of Art)」라는 책에서 예술에 대해

 “모든 예술가는 동일한 의도, 즉 남을 즐겁게 해주리라는 의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예술이란 즐거운 형식을 만드는 시도라고 가장 단순하고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 문학가 L.V.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예술은

[ L.V.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자기 자신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것, 자기 속에 불러일으켜 지고 난 다음에는 운동, 선, 색채, 소리 또는 말에 의한 표현 형식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도록 그 감정을 전달한다. 이것이 예술의 활동이다. 그리고 예술은 하나의 인간 활동이며, 인간이 어떤 객관적인 취향으로써 자기가 체험한 감정을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감정에 감염되어 다시 그것을 경험하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톨스토이, 허버트 리드 두 사람이 정의하는 예술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예술가의 경험과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 철학자가 또 있다.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태어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예술작품의 근원」이란 책에서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구두’라는 작품을 예로 들며 자신의 예술관을 설명했다. 

[ 빈센트 반 고흐, '구두', 네덜란드 고흐 미술관 소장]
이 작품에는 농부가 신던 낡고 너덜너덜해진 구두 한 켤레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예술은 그림 자체에도 있는 것이 아니고 낡은 구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구두를 신고 매일 노동을 하는 농부의 생활, 대지의 내음, 너덜너덜해진 구두조차 버리려 하지 않는 애착 등 ‘낡은 구두’ 이면에 숨어있는 진리 속에 존재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는 작품 자체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진리를 느낄 때 예술의 위대함, 아름다움에 감동해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데생이 치밀하고 정교하다고 해도, 아무리 멋진 그림이나 조각이라 해도 그 이면에서 진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에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디자인(Design)’이란 단어의 어원은 ‘지시하다·표현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데시그라네(Designare)’, ‘그리다·밑그림을 그리다’ 뜻을 가진 이태리어 ‘다세뇨(Disegno)’, ‘목표로 하는 일·목적·계획·스케치’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샹(dessine)’에서 유래되었다.

디자인은 분야가 넓은 만큼 디자인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다. 노키아 수석 디자이너였던 프랑크 누보(Frank Nuovo, 1961~)는 “디자인을 단순 정의하면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모든 사람이 매일같이 하는 활동이다.”라고 했다. 2017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연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Karim Rashid, 1960~)는 “디자인의 근본 목적은 우리 생활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디자인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창작 활동이다.


디자인에 대한 학자의 생각을 살펴보자. 영국의 디자인 교수이자 저술가인 존 헤스켓(John Heskett, 1937~2014)은 「Design : A very short Introduction」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디자인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 특성 중 하나이며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인간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디자인이란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우리의 필요에 맞고 생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만들고 꾸미는 인간의 본성이라 정의할 수 있다”

존 헤스켓이 말한 내용 중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제품 그리고 양적 성장에 이끌려 다니던 인간의 삶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질(Quality)’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안경테를 예로 들어보자. 안경테의 기능은 렌즈를 단단히 잡고 귀와 코에 걸쳐 사람의 시력을 바로 잡아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우리 주변에는 안경점이 50미터마다 하나씩 있으며, 메이커는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걸까? ‘기능’보다는 ‘의미’를, ‘양’보다는 ‘질’을 선택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그것을 사용하는 ‘나’를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산업시대 예술이다. 예술 활동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주체가 예술가 자신이라면, 디자인에서는 소비자, 고객,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인 것이다.


도시 환경도 ‘삶의 질’을 위해 변하고 있다. 1970, 80년대 서울시 교통난 해소를 위해 많은 고가도로·지하차도가 건설되었다. 자동차 소통 중심의 교통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차량 흐름을 방해하고 도시 미관과 지역발전을 해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서울시는 꼭 필요한 곳을 제외하고 하나둘씩 철거를 시작해 도시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있다. ‘자동차 우선’에서 ‘사람이 우선’되는 교통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인간 삶의 질’을 위해 디자인뿐만 아니라 도시 정책까지도 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 2014년 3월 아현고가도로 철거 모습 ]



   왜 예술가가 아니고 디자이너인가.     


예술가는 자신의 철학이나 사상을 자신만의 표현방식(글, 소리, 그리기, 몸짓 등)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인 반면,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디자이너의 목적은 생산, 유통, 판매, 소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고객의 의도나 의향 그리고 설득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디자인을 전개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최종 소비자의 입장과 태도, 취향 등이 모든 판단의 중심에 있다. 


기업 비즈니스의 목적은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여 이윤을 만들어 냄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다. 고객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고객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 가야 한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가처럼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좋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처럼 고객을 모든 판단의 중심으로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비즈니스에서 예술가보다 디자이너처럼 일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 디자이너가 어떻게 일하는지 영국 그래픽 디자이너인 앨런 플레처(Alan Fletcher, 1931~)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세상에는 생활의 편의, 제품, 의사소통, 장소 등에 형태를 부여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디자이너라 한다. 이들은 예술계의 육체 노동자라 할 수 있다. 화가는 자기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골몰하지만,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몰두한다. 정말 중요한 점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름답기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실용적인 분야라기보다는 개개인의 도전과제를 극복하는 분야다. 그야말로 단순한 참여 수준이 아니라 헌신이 필요한 일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세워놓은 기준에 도달하는 데서 보상을 찾는다. 작업을 하는 자체로써 느끼는 만족감이 디자이너에게는 보상이 된다. 이들은 거창한 작업이 아닌 디자인 과제에 헌신한다. 상사가 아니라 자기가 세워놓은 기준에 따른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이 삶을 돈을 버는 시간과 돈을 쓰는 시간으로 나누는 데 반해, 디자이너는 대부분 일과 놀이의 구분이 없는 삶을 산다.” (출처 : 필 클리버, ‘디자이너 회사생활백서(What they didn’t teach you in Design School)’, 서정아 옮김, 도서출판 길벗, 2015)

디자이너가 되려는 사람들은 일반 직장인과 다른 교육 내용을 배우고, 더 많은 시간을 자기 분야에 투자한다. 미술적 요소가 강한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경우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과정을 거쳐야 실무를 접할 수 있다. 기술적 요소가 강한 건축디자인 분야도 대학에서 5~6년간 교육을 거친 후 실무에 들어선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배우는 교과과정을 보면 조형원리, 색채원리, 관찰력과 표현력, 이미지의 시각화, 아이디어 발상과 창의적 표현이라는 내용의 과목을 배운다. 모든 과목은 다양한 실기를 병행하면서 진행된다. 이런 과목의 주제는 머릿속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남(선생, 교수, 고객 등)’을 설득하고 공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자이너가 배우는 교육과정과 초기 실무업무가 일반 직장인과 다른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교육을 받는다.

둘째, 2차원 평면과 3차원 입체를 동시에 생각하는 방법을 배운다.

셋째,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손으로 그리고, 모형을 만드는 훈련을 받는다.     

[ 디자이너는 백지상태에서 일하는 방법을 배운다 ]


건축디자인을 예로 들어 보자. 아무것도 없는 빈 땅 위에 고객 요구 조건과 법적 조건 등을 조사, 검토하여 건물이 앉을 모습과 눈에 보일 형상을 상상한다. 각 층의 평면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동서남북의 입면과 전체 형태를 생각하고 서로를 수정·보완·통합해 나간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다이어그램, 스케치, 모형, 투시도 등의 시각화 기법을 통해 구체화 되면서 고객과 소통한다. 최종적으로는 공사가 가능한 수준의 도면을 디테일하게 만들어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기존의 비즈니스를 혁신하려 할 때 기업에서 추진하는 프로세스와 같다. 기업이 개선보다는 혁신을,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려면 디자이너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 디자이너 초기 스케치 사례 (잠실 L 프로젝트) ]


다음 글은 "왜 디자이너처럼 인가" 2편을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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