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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Dec 06. 2017

디자이너처럼... 좋은 것은 무엇일까

직장에서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며 일하기 4

디자인과 제안을 위한 마음가짐  

   

예술가, 디자이너, 기업의 제안 책임자는 매일 매일 고민한다. 예술가의 고민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임경아 옮김, 루비박스, 2006)」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이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에 맞선다는 의미이다. 그 삶은 회의와 모순으로 전철되어 있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청중도 보상도 없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무모하게 행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이러한 회의를 제쳐두고 자신이 해놓은 것을 직시함으로써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며,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품 그 자체 내에서 자양분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 예술가의 고민을 찾아 볼 수 있는 책들 ]


디자이너는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고민한다. 작업을 의뢰한 고객과 자신이 디자인한 작업을 볼 일반 대중 사이에서 ‘누구를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해 갈등한다. 그리고 1명의 유명한 디자이너를 위해 뒤에서 작업을 돕는 100명의 디자이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돈으로 전시회를 열면 되지만, 디자이너는 선택받지 못한 작업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어봐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주 기업에서 제안 업무는 기피 업무 중 하나다. 4D 업무이기 때문이다. 


Difficult : 기획하기도 어렵고, 글쓰기도 어렵고 내부 고객 설득하기는 더 어렵다.

Dirty : 다른 부서에 구걸하듯이 지원 요청하고, 야근에 철야를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Dangerous : 중요한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모든 원인을 제안에 돌린다. 잘못된 영업 활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수주에 실패한 제안서는 눈에 보인다. 실패한 제안서를 썼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다.

Dreamless : 이 일을 열심히 해도 조직 내에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관리자는 제안 작업자를 닳아지면 교체하면 되는 기계의 톱니바퀴쯤으로 생각한다. 더 힘든 건 주변 동료마저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의 제안 책임자는 묵묵히 일한다. 왜냐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타인(직장 동료)을 이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수주에 성공하면 주변 동료가 앞으로 1~2년 동안 일할 프로젝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 없으면 오늘을 버티기 힘들다. 유명한 디자이너 뒤에 숨은 100명의 디자이너와 같은 역할이 기업의 제안 책임자다. 


2012년 웹툰으로 시작해 TV드라마까지 제작된 윤태호 작가의 「미생(未生: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을 보다가 메모해둔 글이 있다. “어차피 한 팀이고, 누가하든 우리 모두의 실적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인류사에 전쟁이란 글자는 없었을 것이다.” 

[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_제6권 : 봉수 ]


그래, 성과든, 진급이든 다 가져가라. 그러니 우리가 일할 때, 알지도 못하면서 제안 담당자에게 콩이니, 팥이니 간섭하지 마라. 숟가락을 얹어도 좋으니 제발 휘젓지만 마라. 기업의 관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디자이너가 작업을 직업이라기보다 삶의 방식으로 생각하듯이, 기업의 제안자는 하루하루 다양한 가치관을 접하고 뭐든지 맛본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다음의 더 큰 성과를 이루는 양분이 된다. 인생을 디자인하고 제안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경영진은 그들을 진심으로 지원해야 한다. 하루하루 성과 평가가 아닌, 기업의 내일을 위해 소리 없이 일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과 제안      


디자인에 대한 교과서 같은 책들을 보면 “디자인은 합목적성, 심미성, 경제성, 독창성, 통일성 이 다섯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바람직한 디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합목적성’은 실용적인 면에서 기능의 적합성을 말하며, ‘심미성’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아름답다는 느낌을 말한다. ‘경제성’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고, ‘독창성’은 디자인 본연의 가치이며, 마지막으로 ‘통일성’은 디자인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나 원리 각각을 하나의 질서나 구조로 통일하는 것을 말한다. 너무 어렵다. 전공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일반인들은 어떡할까?     


좋은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간결하면서도 쉽게 정리한 사람이 있다. 독일 출신으로 Braun사의 수석 디자이너인 디터 람스(Dieter Rams, 1932~)의 ‘디자인 십계명’이다. 

1. Good design is innovative.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2.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seful.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3. Good design is aesthetic.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

4.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5. Good design is honest.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6. Good design is unobtrusive.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7. Good design is long-lasting.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8. Good design is thorough down to the last detail. (좋은 디자인은 최종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9. Good design is environmentally friendly.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

10. 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 (좋은 디자인은 가능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 디터 람스가 1958년 디자인한  'T3 transistor radio' 와 애플이 2001년 내놓은 '아이팟' ]



디터 람스의 십계명 중 수주 비즈니스 기업이 제안에 성공하는데 필요한 것은 다섯 가지다.


1. 성공한 제안은 혁신적이다 :

 제안은 고객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발전적이어야 한다. 기존 제안을 그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고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인원이 없다는 이유로 고민 없는 제안서를 고객에게 전해주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회사 브로슈어를 전해주는 것이 더 낮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고민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어야지, 내부 결재를 위한 고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자기보다 더 고민하여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보다 싼 가격을 중요시하는 고객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 


2. 성공한 제안은 고객과 기업, 모두 이롭게 하는 것이다 :

 수주영업은 판매영업과 달리 계약 후 제작되고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 기간 또한 길다. 수주 목표만 채우기 위해 불가능한 제안이나 약속을 하면, 계약 후 실행과정에서 그 바닥이 드러난다. 고객과 기업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70년대 초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부지 사진 한 장과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가 조선소를 지을 차관을 유치하고 선박 2척을 수주했다. 이 영웅담을 가지고 “당신들은 왜 그렇게 못하냐!”라고 영업직을 몰아세우는 경영자들이 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의 성공은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과 포항제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내부 기반 없이 영업 현장에서 불가능한 제안을 해서는 안 된다. 성공한 제안은 정직한 것이며 고객과 기업 모두에게 발전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약속이다.


3. 성공한 제안은 제품과 서비스를 이해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

「80/20 Sales and Marketing」이라는 책의 저자 페리 마셜(Perry Marshall, 1969~)은 “드릴을 사는 사람은 구멍을 뚫기 위해 드릴을 사는 것이지, 드릴 그 자체가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다. 드릴을 팔기 위해서는 제품 스펙이 아니라 어떤 구멍을 뚫을 수 있는지를 광고해야 한다.”고 했다. 성공한 제안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어떻게 고객을 돕고 혜택을 줄 수 있는가를 쉽게 제시하는 것이다. 자기 제품과 서비스가 최고이며 훌륭하다고 자랑만 하는 제안은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한다. 성공한 제안은 고객의 생각을 고민하고 고객의 언어로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4. 성공한 제안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

아무리 좋은 제안 전략도 마무리가 좋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훌륭한 전략으로 시작했지만, 중간 과정에서 전략은 사라지고 그저 그런 콘텐츠로 채워진다. 게다가 첫 페이지부터 오타가 보이고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발표 자료가 만들어진다. 성공한 제안은 전략이 세부 콘텐츠까지 이어지고 핵심 메시지를 담은 발표자료, 인쇄와 제출까지 꼼꼼하게 챙긴 결과로 만들어진다. 고객에게 전달되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다.


5. 성공한 제안은 심플한 것이다 :

복잡하고 분량이 많다고 좋은 제안이 아니다. 자기 자랑으로만 가득 찬 제안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실패한 제안이다. 제안에 성공하려면 고객의 문제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간결하게 제시해야 한다. 제안자는 누구에게라도 차별화된 제안 전략을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인쇄된 제안서는 그 증거로 사용해야 한다. 고객 CEO에게 발표까지 해야 한다면 심플함은 더욱 필요하다. 

     


IBM, ABC, UPS 기업 로고를 디자인한 그래픽 디자이너 폴 랜드(Paul Rand, 1914~1996)는 “아무리 복잡한 디자인 원리와 기법을 적용하더라도 부적절하다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더욱이 의사소통의 수단과 방법에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이 또한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디자이너 사고방식은 수주를 위한 기업의 제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제안 전략, 이런 전략을 고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제안서와 발표 자료는 계약 성공이라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방식     


사물의 현상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방식에는 ‘분석적 사고(analytical thinking)’와 ‘직관적 사고(intuitive thinking)’ 방식, 두 가지가 있다. 분석적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어진 자료와 정보를 쪼개어 비교, 대비, 오류 확인 등의 방법을 거쳐 사실 간 논리적 관계를 정리하여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직관적 사고는 논리적인 추론과정을 거치지 않고 경험이나 오래된 교육을 통해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분석적 사고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라면, 직관적 사고는 독창성과 창조성이 있어야 하는 예술가, 발명가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디자이너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그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한다. 분석적 사고로는 현실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미래가치를 담기 어렵고, 직관적 사고로는 현실의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두 가지 사고방식을 넘나들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 조저 마틴 (Roger Martin) 교수 ]

캐나다 출신의 경영학자 로저 마틴(Roger Martin, 1956~) 교수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디자인적 사고방식(design thinking)’이라 했다. 디자인적 사고방식은 “분석적 사고에 기반을 둔 완벽한 숙련과 직관적 사고에 근거한 창조성이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 로저 마틴 교수의 '디자인적 사고방식' 개념 ]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 1962~)은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디자인적 사고란 소비자가 가치 있게 평가하고, 시장의 기회를 이용할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 가능한 비즈니스 전략에 대하여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작업방식을 이용하는 사고방식이다.”     
[ IDEO CEO 인 팀 브라운 (Tim Brown) ]



수주가 비즈니스의 출발점인 기업이 고객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안할 때 디자인적 사고방식은 매우 유용하다. 고객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세밀하게 검토하고 경쟁사와 시장의 상황을 종합하는 분석적 사고방식과, 자료에 나와 있지 않은 고객의 숨은 요구와 고민을 찾아내는 직관적 사고방식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제안 방향과 전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제안에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석적 사고방식만으로도 충분한 프로젝트가 많고, 분석적 사고방식을 제대로 제안에 적용하는 팀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안할 때, 기업을 지속하는데 매우 중요한 고객에게 제안할 때는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적용해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팀원이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마케팅 담당 임원, 영업과 제안 책임자 정도만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있어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시간만 소비하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치부해버리는 기업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관리자는 말로는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창의성보다는 위험(risk)을 더 걱정한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려고 하면 기업의 관리자는 “처음 해보는 거라 위험(risk)이 너무 커서….”, “그거 당신이 책임질 수 있어? 어떻게 책임질 건데….”, “튀지 마. 나도 다 해봤어. 그냥 중간만 가자.”이란 말로 창의성의 싹을 잘라버린다. 기업에 디자인적 사고방식을 적용하려면 잠시만이라도 시간, 인력, 절차, 내부 기준 등을 잠시 보류해야 한다. 창의적인 사고를 실행하려는 직원에게 시작부터 좌절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실패할 수 있다. 그런 실패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다음 프로젝트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그런 성공은 기업을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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