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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Dec 08. 2017

조사하는 것부터 다르게

직장에서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며 일하기 5

디자인과 수주산업은 고객이 요청해야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가만히 앉아서 일 주기만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마케팅을 한다. 규모가 큰 건설, 조선, 플랜트 수주산업은 대규모 마케팅을 통해 기업을 알릴 수 있지만 소프트한 수주산업인 설계, 엔지니어링, 컨설팅 분야는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회사소개서와 브로슈어를 가지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존재를 알린다. 드디어 고객으로부터 제안 요청이 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한 프로세스를 시작할 단계다.          



조사하는 원칙     

고객 요청이 오면 디자이너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조사다. 그들은 사용자 입장에 서서 깊이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을 디자인적 사고의 핵심도구로 활용한다. 관찰하고 상상하여 구성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디자인을 요청한 기업이 디자이너에게 비용을 주지만 디자이너가 관찰하는 것은 디자인된 제품을 사용할 최종 고객이다. 디자이너는 마트 쇼핑객, 사무직 근로자, 학생 심지어 병원의 환자도 그들의 궁극적인 고객임을 알고 있다. 고객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그들이 살고, 일하고, 노는 곳을 직접 가서 관찰하고 기록한다. 

조사하고 관찰할 때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설문조사 같은 전통적인 시장조사 방법은 혁신을 추구하는 디자인보다는 현재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좀 더 좋게 만드는 점진적 혁신에 적합하다. 사람들은 불편한 상황에 너무나도 잘 적응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질문에는 혁신적인 것보다 ‘좀 더 좋은 것’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포드 자동차 창업자인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는 소비자의 이런 점을 간파하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차를 만들려고 할 때, 소비자에게 뭘 원하느냐고 물었더라면 아마도 ‘더 빨리 달리는 말(馬)’이라는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 미국 자동차의 왕 : 헨리 포드 ]


건축디자이너는 개인 주택 설계를 요청받으면 제일 먼저 건물이 위치할 땅을 조사한다. 땅이 가지는 물리적 특성은 물론 주변 건물과 도로, 방위, 바람의 흐름, 시각적 조망 그리고 법에 따른 조건까지 종합적으로 조사, 분석한다. 그 다음, 집에서 생활할 가족과 대화를 시작한다. 가족의 구성, 취향 그리고 생활 방식까지 질문을 통해 조사한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조사 단계에서 먼저 디자인 방향을 꺼내는 법이 없다. 디자이너는 항상 듣는 자세를 취한다. 고객이 살고 싶어 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땅이 가지는 여러 가지 조건들과 조합한다. 그리고 며칠 후 스케치 된 그림을 가지고 그 속에서 생활할 사람과 서로 아이디어를 이야기한다.   

   

[ 건축가가 현장에서 조사한 여러 요소를 시각화한 스케치 (site analysis) ]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위한 기준이 없으면 조사와 관찰을 통해 기준을 만든다. 그 기준은 디자이너가 만들지만, 고객 또는 이용자가 납득할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건축디자인 분야에서는 이것을 ‘프로그램(program)’이라 한다. 영어 ‘program’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인도유럽어에 뿌리를 둔 그리스어 ‘pro(before) + graphein(to write, to drawing)’에서 유래되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기획하고 그려 본다’는 뜻으로 건축디자인 분야에서는 건축공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 크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건물은 건축주가 1차 고객이지만 최종 고객은 건물에서 일하거나 생활하는 일반인들이다. 이용자의 행동 특성은 물론이고 심리, 체력적인 문제까지도 디자인 고려 조건으로 등장한다. 이런 부분을 조사, 관찰하여 기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분야가 건물 용도별 기준을 정리하는 ‘건축 각론(各論)’이다. 학교, 병원, 업무시설의 공간 요구조건은 다 다르다. 그래서 건축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건물 용도에 따라 공간 요구조건·사용자 행동 특성 등을 조사하여 디자인을 시작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만든다. 건축 디자이너는 최종 이용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1차 고객인 건축주의 요구조건(공사비 예산, 일정)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추하지 않은 건물을 디자인해야 하는 3중 부담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간다. 이런 것들이 건축디자인이 다른 산업디자인 분야보다 좀 더 힘들고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 수주기업에서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현실은 이렇다. 제안 담당은 요청이 오자마자 기존에 유사한 제안 자료가 있는지를 먼저 찾는다. 영업담당은 영업과정에서 고객의 숨은 요구를 파악하지 못하고 겉도는 정보만을 진실인 양 제안 담당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고객이 공식적으로 제공한 제안요청서(RFP) 조건에 끼워 맞춘다. 고객의 숨겨진 문제에 대한 조사나 분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주산업은 기업과 기업(B2B : Business to Business) 간 거래다. 기업의 구매 담당자와 영업직의 관계 네트워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객인 기업의 구매 과정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고, 의사결정이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집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의 숨겨진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선 사전 영업단계가 중요하다. 고객의 공식적인 제안요청서가 나오기 전에 고객과의 면담을 통해 숨겨진 요구사항을 파악해야 한다. 실무담당자에게 얻은 정보는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일 수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이지만 고객의 실무 담당자, 프로젝트 책임자, 의사결정자가 프로젝트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 담당자는 자신의 업무를 덜어주거나 도와줄 조력자를 찾고, 책임자는 프로젝트 결과가 자신의 성과로 나타내게 해 줄 협력자를 찾는다. 최종 의사결정자는 자기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더 높여줄 기여자를 찾는다. 


이러한 정보들이 조사되어 해결방안을 제안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런 정보들 외에도 고객이 하는 사업에 대한 이해, 기업 문화, 의사결정 방식 심지어 그들이 문서에 주로 사용하는 폰트, 소프트웨어 등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져 제안 작업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 그것을 얻는 방법은 질문과 경청 그리고 세밀한 관찰이다.   

        



고객 요구     

비즈니스에서 고객 요구를 찾아내는 것은 출발점이자 항상 고민해야 하는 기업 생존의 화두다. 고객 요구는 기업의 비즈니스 유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된다. 제품을 생산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B2C(Business to Customer) 시장에서는 고객 요구를 필요(Needs)욕구(Wants), 2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경영학자 홍성태 교수는 이 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제는 제품의 속성이나 특징처럼 ‘본질적 중심 요소’의 관점에서 벗어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의 심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비본질적 주변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제품의 중심 요소란 필요(Needs)를 충족시키는 것이고, 주변 요소는 욕구(Wants)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0세기 마케팅 키워드는 ‘니즈’였으나 21세기 키워드는 ‘원츠’다. 니즈는 ‘결핍’ 내지는 ‘필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것이란 의미다. 반면 원츠는 ‘욕구’다.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없어도 되는’ 욕구를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것이 오늘날 마케팅의 핵심이다.” (홍성태,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쌤앤파커스, 2012)

이러한 욕구는 사회적 지위나 개성을 표현하거나, 소속감과 기쁨, 즐거움을 느끼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디자이너는 이러한 욕구를 찾아내기 위해 시장을 조사하고 목표 고객을 선정하여 그들의 취향을 관찰하여 디자인 작업의 기반을 마련한다.     


B2B(Business to Business) 시장에서 고객 요구는 다르게 나타난다. 한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조직간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솔루션 셀링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진 컨설턴트 키스 이즈(Keith M. Eades)는 「솔루션 셀링 전략」이라는 책에서 고객 요구는 3단계로 변화된다고 했다.

1단계 – 잠재적 고통 : 문제를 발견했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단계로 고객은 문제를 무시하거나 자기 합리화를 통해 덮어 두는 반응을 보인다. 이 단계에서 영업 담당은 고객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2단계 – 인지적 고통 : 고통을 인지한 고객이 영업 담당과 개방적으로 대화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고객은 아직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만 느낀다. 영업 담당은 고객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3단계 – 문제 해결에 대한 비전 : 고객이 필요성을 느끼고 구체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영업 담당은 자신이 제시한 해결책의 결과로 나타날 혜택, 투자 대비 효과 등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내 여건을 고려하면 수주산업에서 고객 요구는 ‘니즈(Needs)’, ‘원츠(Wants)’ 그리고 ‘디맨드(Demand)’ 3단계로 설정하면 이해하기 쉽다. 

‘니즈’는 내부 조직에 업무를 수행할 자원이 없어 아웃소싱 해야 하거나, 법적으로 전문 기업에 위탁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옥을 짓고자 하는 기업이 건축사, 감리사, 시공사의 필요를 느끼는 시점이다. 

‘원츠’는 이런 필요가 조금 더 구체화하여 전문 기업 리스트를 조사하고, 자신들의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을 추려내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디맨드’는 자신들의 예산과 평가 기준 그리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업의 역량을 종합하여 업체 선정을 준비하는 단계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니즈’는 “아. 배고파,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라고 느끼는 단계이며, 

‘원츠’는 “피자에 콜라를 먹고 싶은데….”처럼 보다 구체화한 사실로 나타나는 단계다. 

‘디맨드’는 “피자를 먹고 싶지만, 근처에 파자집이 없어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주머니에 돈은 피자 먹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길 건너 맥도날드가 보인다. 내가 가진 돈으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도 2천 원이 남는다. 망설임 없이 길 건너 맥도날드로 간다.” 자신이 가진 돈과 거리 그리고 남는 잔돈까지 생각해서 결정하는 단계다. 


수주기업의 영업 담당은 이런 ‘디맨드’까지 파악하는 영업을 해야 하며, 파악된 ‘디맨드’를 제안 담당과 초기 영업단계부터 공유하여 제대로 된 솔루션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고객' 이라는 빙산 밑에 엄청난 큰 요구가 있는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예전에 했던 방식대로 해!"라는 지시를 많이 받는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월급은 나온다. 하지만 그런 시간속에서 머리는 둔해지고 배는 점점 나온다. 점점 '꼰대'가 된다.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다. 회사를 떠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작은 것이라도 이전보다 더 좋게,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남는 것이 있다. 아무리 월급쟁이라 하더라도 내 인생의 시간을 낭비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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