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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Dec 12. 2017

과정을 거쳐야 결과를 볼 수 있다

직장에서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며 일하기 6


비즈니스 시각에서 보면 디자이너 작업 과정은 무질서 해 보인다. 비즈니스 과정은 분석적 사고에 근거해서 문제를 주면 바로 해결 모드로 들어간다. 훈련받은 분석적 사고자인 과학자, 기술자에겐 ‘미결’ 문제는 불편하다. 그들은 열심히 답을 내고자 계속 머리를 쓴다. 일상적인 문제 해결 상황이라면, 그리고 답이 한 개만 있는 경우라면 그 방법은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답이 하나일 수 없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선택 요소 중에서 최적을 찾아내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는 이런 과정을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반복한다. 합쳤다가, 분해하고, 다시 합치는 과정이 디자인 프로세스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디자인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삼아 지속적인 혁신을 진행해왔다. 그 중심에 ‘영국 디자인 위원회(UK Design Council)’가 있다. 영국 디자인 위원회는 1944년 12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정부에 의해 2차 대전 후 영국 산업 분야의 디자인 역량을 향상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1979년 수상이 된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재임기간 : 1979~1990)는 “좋은 디자인이야말로 국가적 명성을 가져다주며, 미래에 우리 경제가 경제력을 갖추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라며 디자인을 국가적 차원에서 뒷받침하겠노라 천명했다. 토니 블레어(Tony Blair, 재임기간 : 1997~2007) 수상 또한 “영국의 성공은 우리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 즉 창의력과 혁신력 그리고 디자인 파워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디자인은 오늘날 지식주도 경제의 중심입니다”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영국은 1944년부터 디자인이 미래 산업의 주역임을 알아채고 정부가 70년 동안 일관되게 디자인 산업을 지원함으로써 영국 경제를 되살리는 힘을 얻게 된다. ‘영국 디자인 위원회’는 산업 디자인뿐만 아니라 2011년 건축·환경 분야 자문기구였던 ‘CABE(the Commission for Architecture and Built Environment)’를 통합하여 영국 디자인을 총괄하는 단일 자문 위원회가 되었다. 


[ 영국 디자인 위원회 홈 페이지 : www.designcouncil.org.uk ]

‘영국 디자인 위원회’는 디자인에 관해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다. 위원회는 2005년 디자인 프로세스를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한 ‘Double Diamond’를 개발냈다. ‘발견하기(discover)’, ‘정의하기(define)’, ‘발전시키기(develop)’, ‘결과 도출하기(deliver)’ 4단계로 구성된 디자인 프로세스 다이어그램은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아이디어의 확산과 수렴 단계로 구성된다. 그리고 2007년 조사를 통해 11대 글로벌 브랜드 회사의 디자인이 이와 유사한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 Double Diagram Design Process (출처 : UK Design Council) ]

이 프로세스 다이어그램의 핵심은 아이디어 확산과 수렴과정을 보여주는 하얀 부분에 있다. 프로젝트 시작인 ‘discover’ 단계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조사를 진행하고 관찰한다. 고정된 관념이 아닌 다양한 생각의 범위를 최대한 확산시켜 선택의 폭을 넓히는 단계다. ‘define’ 단계는 이렇게 모인 정보와 아이디어를 프로젝트의 요구 조건과 서로 교차시키면서 생각을 수렴하여 선택을 결정하는 단계다. 이 과정의 결과로 프로젝트 ‘문제가 분명하게 정의(problem definition)’ 된다.

확실하게 정의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develop’ 단계에서 다시 확산적 사고방식이 적용된다. 가능한 모든 해결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고, 검토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마지막 ‘deliver’ 단계는 많은 아이디어를 수렴해 찾아낸 해결방법을 프로토 타입(proto-type)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관찰한다. 그 결과로 최적의 디자인이 고객에게 제안된다.


이런 확산과 수렴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디자이너 사고방식은 기업의 관리자에게는 비효율적이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 관리자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적 사고만을 적용하는 훈련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집중적 사고는 현존하는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실용적 방법이다. ‘깔때기’를 통해 나오는 하나의 해결 방안만을 찾는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해결 방안을 찾기에는 부족한 사고방식이다. 회의실에 모아 놓고 “새로운 아이디어 없나?”라고 아무리 다그쳐도 나올 수 없다. 설령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지금, 당장”이라는 말 한마디로 사그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내놓기도 힘들지만, 관리자만 득실거리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아이디어가 살아 숨 쉴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이야기만 아니라면 관리자는 결과와 상관없이 다양한 모습의 아이디어를 인정해야 한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칼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1994)이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최상의 방법은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보는 것이다(The best way to get a good idea is to get a lot of ideas).”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비즈니스에서 기획을 하든, 영업 제안을 하든, 시작단계에서는 모든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한다. 제안 책임자는 상사의 강압적인 지시, 회사의 복잡한 의사결정, 촉박한 일정 등이 힘들게 해도 전체 시간의 30%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데 보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발전하고 현재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의 문제가 닥치더라도 해결하는 능력을 배운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다시 시작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영업 제안을 정말 원한다면 디자이너처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뚝딱해서 나오는 것도, 잠시 내가 불편한 것을 임시로 해결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책을 읽어도 이런 문제점을 볼 수 없으면 ‘그냥 많은 책을 읽은 것’이다. 디자인 사고방식을 비즈니스에 접목하고 있는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속적인 혁신은 일련의 순서를 질서정연하게 밟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상상의 공간들이 서로 겹치고 포개지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공간에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이자면 ‘영감(inspiration)’, 아이디어(ideation)’, 실행(implementation)’으로 부를 수 있다. ‘영감의 공간’은 해결책을 찾아 나서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환경을 뜻한다. 그 환경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이디어 공간’은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전시키고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실행의 공간’은 작업실을 떠나 시장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의미한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다듬고,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는 만큼 최소한 한 번 이상 이 세 공간을 통과하게 된다. 디자이너 작업이 산만해 보이는 것은 전문가로서 훈련이 덜 되어 있기 때문에 작업이 비선형적이고, 반복적인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실험적, 모험적 과정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인 사고의 속성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디자인 해결책을 최종 선택한 자신을 탓하지, 결코 과정의 실패를 원인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본다. “내가 왜 이 선택을 했나?” 그래서 디자이너는 항상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린다. 그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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