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는 오발탄 처럼 가기로했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
사람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나? 늘 나는 나의 선택에 의해서 움직였다. 나를 지배하던 사람도 없었고 늘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일처리를 했다. 모르는 부분은 협동해서 팀 프로젝트를 완성해갔다.
공장을 운영하더라도 본인이 프로세스를 모르면 사람을 고용할 수 없다. 사람위의 사람이 아니라 같이 가는 방향에서 선두에 선 사람일 뿐인데, 세상에는 모든 갑질이 존재한다. 돈, 명예, 권력, 하다못해 눈 못뜬 봉사처럼 지낸 어린나이 등이 가진자에 비해서는 늘 불공평하다.
나는 그랬다. 어렸고 가난했고, 이름조차 풀숲에 묻혀질 시골아이였다. 누군가는 이용하기 좋았을 수도 있고, 사랑이란 말 아래 짓밟았을 수도 있다. 그 시절은 사랑에 눈이 멀어 자존심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시간이 지나보니 모두 내 욕심일 뿐이더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게 되어있다. 첫사랑은 여전히 아리다.
날 미쳐 떼어 놓은 그 아이가 벌써 16살이라지. 나는 어떻게든 살아내었다. 그게 나의 성실성이고 여기에 글을 쓰는 이유이다. 오해라고 여기기엔 난 너무 많이 어렸고 쓰라렸다. 그대의 결혼의 이유가 나이기에 나만 참으면 된다고 여겼다. 발닦고 가서 자라고 한 게 여러번이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말던지 버텨냈다. 네 가족들끼리 결속을 다질 거면 그러지 말지. 그 어렸던 나를 짓밟아버렸다. 철없는 네 아이가. 망상이면 좋을텐데, 그러기엔 나는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울던 2016년 이후 나는 타지에서 7년을 사회생활을 했고 외로움이 익숙하다.
아무나 사귀고 싶지 않다. 오히려 혼자 있는 방법을 택한다. 지금 와서 이상한 놈 만나면 내 팔자 꼬아질 것 같아서. 선도 안본다. 아마 너처럼 50이 넘으면, 나도 그럴거같다. 앞으로 60년은 더 볼 사이인데, 덮지 못할거면 사과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네 공간 아니다. 여러사람이 있는 데서 내 얘기 하지마라. 다 들린다. 공연성인거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나야 뭐, 에세이니까.
내 길 가기 바쁘다. 하루 21시간은 깨어있는거 같다. 아직도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올라면 오던지 갈라면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