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맞는 운동은 따로 있지
‘체력이 바닥이다.’
이 말을 마음 깊숙이 실감한 건 마흔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냥 생일 한 번 지났을 뿐인데 저녁 7시만 되면 배터리 잔량 2%처럼 아슬아슬해졌다. 소파에 앉았다 하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뒤로 ‘푹’ 떨어지고, 깼다 싶으면 또 졸고...
10년 전엔 밤을 새도 다음 날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무한체력 에디션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일회용 건전지다.
“중년에는 체력이 중요하다.”
예전엔 우습게 들렸던 그 말이, 이제는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게 느껴진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 체력, 업데이트가 시급했다.
“그래, 결심했어. 운동하자!”
피티는 지루할 것 같고, 스피닝은 무릎에게 미안해서 할 수 없고. 결국 선택은 필라테스였다.
관절에 무리 없고, 군살 정리되고, 근력도 붙는다기에... 센터 상담사의 “40대에 딱이에요!”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뜨며 친구들과 기세 좋게 5개월 회원권을 끊었다.
허리를 곧게, 승모근을 내려주고, 코어에 힘을 주고...
강사님의 시범을 보면 참 간단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막상 따라 하려니 나는 기름칠 안 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기구에서 다리를 찢고 버티는 동작은 ‘이게 인간의 동작 맞나?’ 싶었고, 코어만으로 상체를 버티라는 말은 “내게... 코어라는 게 있었나...?”라는 철학적 의문을 낳았다.
강사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자세를 계속 교정해 주셨는데, 너무 많이 불러서 내 이름만 들려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친구들은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줬구나.’
좋게 생각하면, 의도치 않은 내 몸개그가 수업 분위기에 활기를 넣은 셈이다.
5개월을 끝내고 또 5개월을 추가했지만 내 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신 결론은 아주 또렷해졌다.
필라테스는 내게 맞지 않는다.
그나마 하늘을 찌르던 승모근이 조금 겸손해졌다는 정도? 그걸 얻자고 10개월의 돈, 시간, 에너지를 바친 건... 정말 웃픈 투자였다.
물론 못한 건 내 탓이다. 그래도 열 달 동안 확실히 알게 된 건 하나.
운동은 ‘좋다더라’가 아니라 ‘나한테 맞느냐’가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실감 나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중년은 ‘알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거 아니겠나.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집까지 두 시간을 걸어 퇴근하던 시절. 양손에 500g 아령을 들고, 젊음과 패기로 가득하던 20대의 나. 그때는 살도 빠지고 체력도 좋아졌는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미/쳐/쒀?”
그래서 다시 걷기로 했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음악도 듣고, 변하는 풍경도 보고. 요즘 러닝이 유행이라지만 내 저질 체력으로는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일단 걷기로 기본 체력을 올리고, 그다음 강도를 높일지는 그때의 나와 협의하기로 했다. 까만 선캡을 쓰고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도는 어르신들도 이런 마음이려나.
편도 1시간 거리의 회사 출퇴근을 걸어볼까 한다.
추운 날씨엔 따뜻하게 입으면 되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쩐지 벌써 체력이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기분이라도 좋아지면 반은 성공이지, 뭐~!
이미지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