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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17. 2020

끊임없이 변하는 달동네





달동네를 소재로 1980~81년 T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달동네>는 시청율 60% 이상이 나올 정도로 달동네는 과거 우리의 삶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서울이나 부산 그리고 인천같이 대도시에는 90년대 후반까지 달동네가 존재하면서,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달동네란 산비탈에 비바람을 막을 정도의 열악한 집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1960~70년대에는 나무판자 등으로 가옥을 만들었기에 판자촌으로 부르거나, 산에 있다고 해서 산동네라 부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달동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달동네라 불린 데에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주장이 달과 별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달(月)마다 월세를 내는 곳이라 달동네, 달을 보고 출근하여 달을 보며 퇴근해서 달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어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산동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살아가던 빈민 지역이었다. 산동네가 만들어지는 시작점은 광복 이후다. 광복 이후 귀국했으나 터전이 사라진 사람들과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들이 거주할 곳을 찾아 대도시로 들어와, 산비탈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달동네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전쟁 이후 미국의 무상원조로 낮은 가격의 농산물이 유입되고, 정부의 낮은 쌀값 정책으로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박정희 정부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자급자족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산업화를 추진했던 정책도 일조하였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은 값싼 노동력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경공업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 많은 노동자를 산업현장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거주지와 같은 생활기반이 마련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개발도상국이던 상황에서 정부도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이라곤 도시로 유입된 사람들이 국공유지였던 산을 무단 점거해도 묵인하는 것이었다.










1966년부터 1971년까지 농촌인구가 150만 명이 줄어들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도와 전기 그리고 상하수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해 달동네의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해지자 1970년대는 사회불안요소로 여겨졌다. 서울의 경우 달동네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지금의 성남(당시는 광주)으로 15만여 명을 이주시켰다. 그러나 수도와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는 대중교통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자, 1971년 성남 시민 5만여 명이 파출소를 습격하고 도시를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60년대는 도시로의 인구 유입을 위해 묵인되었고, 70년대에는 사회불안요소로 대두되던 달동네는 1980년대 이후 부동산 개발을 통해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아파트가 거주 공간으로 크게 각광받으면서 대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공유지를 불법 점유하던 달동네 거주민을 내쫓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달동네에 거주하던 대다수는 도시에 머물지 못하고 외곽지역으로 밀려나야 했다.










 
그러나 달동네에 살던 사람들의 아픔은 많은 이들에게 곧 잊혀갔다. 달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주해 온 사람들의 삶은 달동네와 달랐다. 40년 이상 만들어졌던 달동네의 문화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직 달동네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있다. 빈민을 대변하던 이미지는 흙수저와 같은 새로운 용어로 대체되었고, 더 이상 개발을 연상케 하지 않는다.

최근 달동네 재개발이 거주민을 위한 일이 아니며, 현 상태로 남기를 바라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나 시에서도 과거처럼 재개발을 추진하기보다는 거주민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한다. 여기에 서울의 이화벽화 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마을처럼 거주민의 삶을 보장하면서 옛 모습을 간직한 역사의 한 공간과 새로운 관광지로 재도약하는 지역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달동네로 대변되는 빈민 지역을 두고 재개발과 보존에 대한 갈등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점은 바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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