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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파파 Aug 01. 2024

029 말의 품격(이기주 저)


1년, 2년 시간이 흐를수록 언행의 중요함을 느낀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대 마음을 해하여, 큰 갈등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가깝지 않은 관계에 사소한 말실수가 그 관계를 영영 단절시키기도 하고, 소중한 관계라도 헤어 나오기 어려운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수많은 경험이 있고, 돌이켜 후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때 왜 그 말을 뱉었을까. 하지만 말이란 게 꼭 분란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첨예한 갈등의 상황이라도 용기 내어 건넨 따스한 말 한마디가 관계를 급속도로 회복시켜 주기도 하니 말이다.

얼마 전 업무 중에 다른 부서 직원과 다툰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직원과 나,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다 업무상 부서 간에 이해가 상충된 상황이었다. 서로의 입장은 외면한 채, 감정 섞인 비난의 말만 내뱉고 돌아오니 일은 진전된 게 없고 관계만 악화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터라,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 직원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상대 부서의 입장을 무시하고 너무 우리 부서의 입장만 주장한 것 같다고 사과의 말을 남겼다. 내 사과 때문에 상대가 우쭐해하지 않을까,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등등 보내고 나서 순간 후회도 하였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용기로 관계는 급격히 개선되었다. 그 직원도 이해한다며 사과의 말을 보내왔고, 이후 다양한 업무를 하며 서로 언성 높이는 일 없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가끔 나는 쓸데없이 자존심을 내세워 내 입장만 고수한 채 말을 한 경험이 많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과 반목이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조직을, 다른 직원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스스로 정당화했고, 내가 내뱉은 날 선 말들은 전혀 돌아보지 못했다. 말에도 품격이 있음을 깨닫고, 지난 일들을 반추하며 내가 했던 행동을 반성했다. 타 부서 직원에게 용기를 내어 사과의 말을 한 이후, 조금은 자신이 성장했다 느껴진다. 쓸모없는 자존심을 세운 말보다, 상대를 배려한 말을 하려고 하루하루 노력한다. 그래서 업무상이든, 일상에서든 갈등이 줄었고, 내 마음은 더 평화로워졌다.

커뮤니티에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지금의 힘든 삶을 초래한 기성세대에 대한 날 선 비난. 반대쪽엔 지금 세대가 진정한 고생을 모르고 배부른 소리만 한다는 비하. 모두의 말에는 자기 입장만 담겨있다. 서로 자신이 더 힘들고 고생했음을 주장한다. 자기들 말에 힘을 싣기 위해 각종 지표를 가져와서 누가 더 고생했는지 싸우고 있다. 모두가 서로에 대한 공격과 자기 자신에 대한 방어에 쓸모없는 역량을 쏟고 있다. 참으로 소모적인 논쟁 아닌가. 그 결과는 누구나 알다시피 세대 간 갈등 증폭과 그로 인한 사회문제로 국가적인 경쟁력을 하락시킨다.

관성이란 물리법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 간 관계에도 적용된다. 배려 없는 말은 갈등의 방향으로, 사려 깊은 말은 화합의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한다. 말이 가진 힘을 생각할 때, 그 이면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녹여야 한다. 지금 사회의 세대, 성별을 비롯한 다양한 집단의 무차별적 혐오와 갈등은 수만 가지 정책보다 서로를 향한 따스한 한마디 말에서 해결이 시작된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나만 힘들다'가 아니라, '너도 힘들겠다'로 바꿔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대에 대한 따스한 위로는 관계를 개선하고 갈등을 줄여줄 수 있다. 서로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혐오를 접어두며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도 역시 올라갈 것이다.

간혹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말이 서로 간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배려를 뺀 호전적인 투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의 품격이란 게, 고상하고 현학적인 단어를 섞어 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어휘와 학식이 풍부한 말들로 치장해도, 그 말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지 않으면, 그저 휘황찬란한 소음에 불과하다.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숙고하여도 자신의 주장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말의 품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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