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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Mar 02. 2022

내 마음 그릇을 대하는 일

간장 종지 같은 마음

악플을  적이 있다.
지금은 삭제되었지만 일기처럼 사용하는 듯한 블로그에 나의 춘화를 묘하게 돌려 까는 전시 후기를  적도 있다. 개인의 의견과 취향은 모두가 다르기에 그럴  있다. 나도 관심 없는 주제와 도상이 있듯 누구든 그렇게 느낄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아주 유명하지도 않은 일개 신진작가의 작업에 그런 글을 쓰다니? 생각해보면 그림에 대해 어느 정도 조예가 있고 작품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장을 움직이는데 일조하는 컬렉터들  하나가 굳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자판을 치는  정성스러운 비난이 차라리 무관심보단 낫지 않을까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나의 발전에 오히려 좋지 합리화와 셀프 가스 라이팅도 했었다. 그러고는 잊은 듯이 지냈는데 아니 잊은  알았는데 작업을  때마다 문득 생각이 난다.

어떤 부분을 싸구려라 생각한 걸까. 주제  자체일까. 표현과 묘사일까. 너무 노골적인가? 쉽고 재밌게 보고 웃어 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이렇게 묘사하면 혹시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는 걸까. 작업으로서 미술사적 역할을   있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면 너무 피곤한데? 나는 그런 거창하고 대단한 숙명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데? 고귀하고 심오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닌 걸까? 

본래 부정적인 생각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의지로는 멈출 수가 없는 것이고 그렇게   떠오르면 이젤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않은) 채로  시간을  생각만으로 보내기도 했다. 유약하고 무력해진 마음으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 그릇은 얇은 간장 종지 같아서 조금만 세게 쳐도 쉽게 금이 간다. 단단하고  놋쇠 그릇이고 싶어서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인  하지만 결코 타고나길 그게 아닌 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안다. 이미 간장 종지로 만들어진 것에 밥을 담을 수는 없다.  종지가 깨지지 않고 종지로서 오랫동안 간장을 담는 역할을   있도록  종지 같은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만약  충격으로 종지의 이가 빠지면 굳이 조각을 찾아 붙이려 애쓰지 않고 마음속 다른 종지를 꺼내 쓰면 된다.

명확하고 유쾌한  좋고 그것을 말로든 어떤 유형의 표현으로든 유머를 담아 풀어내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할  있는 일이라는  확신한다. 내가 재밌고 다수의 사람들도 재밌어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속할  있는 일에, 그것으로 내가 밥을 먹고 물감과 캔버스를 사는 일에 싸구려라는 표현은 너무  빠진다.

타인의 취향과 이견은 소중하다. 내가 살아감의 원천과 그게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은 그보다 훨씬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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