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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 수 Mar 03. 2023

미안한 고마움

피범벅의 손가락

물이 아주 미묘하게 조금씩 세는 오래된 에어컨의 말썽으로 수리 기사님이 두 번이나 다녀가셨다.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집에 누군가가 오는 게 불편해서 배달음식도 시키지 않는 데다 내 집도 아닌데 조금만 참자 싶어 그냥 물이 셀 때에만 수건 받쳐 놓고 여름에는 대충 버틸 테니 원인을 알 수 없으면 이제 그만 오시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말투에 혹시라도 날이 서 있었나.


기사님의 세 번째 방문 때는 벽에서 분리가 안 되는 에어컨을 고치기 위해 나도 옆에 선 채 양팔 뻗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에어컨을 받쳐 들고 있어야 했고, 나보다 더 불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 끙끙 소리까지 내시며 고치던 아버지 뻘의 나이 든 기사님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에 한 숨이 나왔다.


최대한으로 고쳐주는 게 자기 일이라던 기사님은 아침 아홉 시도 안 돼서 오셨고 수리 중에 오른손 약지를 크게 베이셨다. 하얀색 테이블이며 벽지며 에어컨까지 피 투성이가 되었는데 오히려 너무 미안하다고 자신은 괜찮다면서 작업에 몰두하시는 그 와중에 들리던 기사님의 꼬르륵 소리. 이른 아침이라 빈 속에 오신 거다. 얼굴을 살짝 봤더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밴드를 붙여드리고 지혈 할 거즈, 빵과 사이다를 챙겨 드린 후 문을 닫았는데 복도에서 들리는 우당탕 소리. 음료수와 공구박스를 떨어뜨리셨다. 바닥에 흩어진 못과 공구들을 함께 줍고 있는데 “아유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손가락 감각이 둔해져서 나도 모르게 놓쳤어요. 걱정마요. 안 아파요. 지금 감각만 살짝 둔해요. 아이고 내가 너무 미안해요.”


깍듯한 존댓말, 진땀 흘린 이마, 미안함 가득한 눈, 반 백발, 땀에 살짝 젖은 작업복의 목덜미, 밴드 밖으로 피가 새어 나와 피범벅이 된 오른손을 보는 순간 아침의 내 전화 속 말투가 혹시라도 짜증섞여있지 않았었나 마음에 걸렸다. 오래전 아버지가 손을 다쳐 손톱이 세 개나 검게 변해 빠지려고 하는데도 괜찮다, 하나도 안 아프다 했었다. 나는 여전히 종이에 살짝 베인 상처도 호들갑을 떨게 되는데 어른들은 그렇게 하나도 안 아프다 하는구나, 벽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에어컨 틀어보고 확인 전화 해달라고 하셨는데 손가락 안부도 여쭤봐야지.


물 이제 안 새요. 베인 손가락은 좀 괜찮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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