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리셋
참 길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서른세 번의 방사선 치료.
한여름의 무더위와 태풍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았다.
노력이라기보다는 그저 오기로 버틴 시간.
"무사히 끝났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 부작용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까요?"
"일반적으로 3개월 안에 돌아오기는 합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수년이 걸리는 경우, 일부만 회복되거나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방사선의 부작용은 약이나 치료법이 없어서 그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어요."
현대 의학 기술이 대단히 발달했다고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고칠 수 없는 것, 밝혀지지 않은 것 천지다.
50년, 100년이 지나면, 암도 부작용도 쉽사리 고칠 수 없는 오늘을, 꽤나 원시적인 시대였다고 회자하게 될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시대 탓이라도 하게.
빛을 보면 죽는 게임이 시작됐다.
나의 오른쪽 얼굴은, 인간의 피부가 이렇게 빨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새빨갛게 익어 버렸다. 피부 내부는 부종과 염증으로 단단함을 넘어 공기를 꽉 채운 타이어처럼 탱탱해졌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도 얼굴에 열이 오르고 송곳으로 찔러대는 통증이 느껴진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자외선을 피하셔야 해요.
병원 진료가 있는 날 말고는 외출하지 마시고, 집에 커튼도 닫아 두시고요."
큰 수술과 치료를 마쳤으면 성대한 만찬이라도 즐겨야 하거늘, 미각을 완전히 잃은 탓에 어떤 음식을 먹어도 썩은 돌을 씹는 것 같아 헛구역질이 났다.
살기 위해서—맛을 상상하며 먹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입안에 가득한 텁텁함이 자꾸만 나의 집중을 방해하지만, 이에 지지 않고 음식의 향기, 질감, 빛깔…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맛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점점 더 냄새에 의존해서, 별의별 향신료를 다 쌓아놓고 아무 음식에나 듬뿍듬뿍 뿌려 먹었다.
크고 작은 부작용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가장 중요한 수술 부위—눈구멍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왜 자꾸 진득한 게 묻어나지?'
거울을 들여다보니, 안대 밑으로 투명한 진물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텅 빈 눈구멍에는 이식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바셀린을 잔뜩 바른 거즈 뭉치를 넣어두는데, 그 거즈가 진물을 흡수하다 못해 토해내고 있었다.
"선생님, 분비물 같은 것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왜 이런 걸까요?"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은데... 아무래도 회복하던 도중에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면서, 피부가 수술 직후의 상태로 리셋된 것 같습니다.
서서히 회복되기는 하겠지만, 조직이 많이 손상된 상태라 무척 오래 걸릴 수 있어요."
환자에게는 너무도 무서운 말, '리셋'.
수술 후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증상들이 방사선 치료와 함께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발,
암 병원에서 '또 한 가지'라는 말을 금지시켜 줘.
"종양과 함께 안와 뼈 일부가 제거되었는데, 그 부분에서 피부가 자라지 않아 구멍이 생길 수 있어요.
뼈에 결손이 있어서 살이 생길 수 없는데도 피부는 자꾸 살을 만들어 내려고 해서, 한동안 염증이 더 심해질 거예요."
보기 싫은 얼굴을 꾹 참고 수술부위를 씻어낼 때마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패인 부분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긴 했었다. 그저 피부가 고르지 않은 줄만 알았는데, 그게 뼈였다니.
비어버린 눈구멍 속 뼈가 드러난 구멍. 총으로 난사당한 듯 얼굴도 마음도 구멍투성이다.
암종양이 있던 눈꺼풀,
멀쩡하지만 종양과 가깝다던 안구.
분명 이 두 개만 희생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다.
정작 그 자리를 메꾸는 피부부터 말썽이고, 기괴한 눈과 안면 마비,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 뭐 하나 생각대로 회복된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이 이런데, 내일이라고 나을 게 있을까?
수술 전에는
아이와 함께, 오래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던 마음이—
수술 후에는
자꾸만 약해진다.
바라고 원했던 것들이 희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