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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14. 2023

아이의 눈을 보세요

학교폭력의 일상화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여기에 왜 혼자 앉아있니?"

"그냥요. 혼자 있고 싶어서요."

"점심은 먹었어?"

"네 먹었어요"


"나는 교감선생님이야. 혹시 고민 있으면 말해도 돼"

"..."

"괜찮아 편하게 말해"


"친구들이 자꾸 '00충'이라고 놀려요"

"충은 벌레라는 뜻인데 안 좋은 말이잖아? 못된 친구들이구나. 그래서 기분이 별로구나"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말 들어서 괜찮아요"

"선생님이 어떻게 도와줄까? 혹시 담임선생님한테 알려줘도 괜찮겠니? 만약 싫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

"알려주셔도 돼요"

"알았다. 선생님이 너희 담임선생님한테 말해서 다시는 너를 친구들이 놀리지 않게 해달라고 전해줄게"


"고맙습니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이 있길래 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지난주에 입학한 중학교 1학년 신입생인데, 같은 반 아이들이 '00충'이라고 놀려서 벤치에 혼자 앉아 있다는 겁니다.


개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부터 학생을 놀린 것에 화가 났습니다.

물어보니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하여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무룩하게 있었던 겁니다.  아이와 짧게 나눈 대화이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송혜교의 통쾌한 복수극에 열광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녀 학교폭력의 부적절한 대처로 어느 후보자가 낙마하여 온 국민이 분노하는 순간에도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는 정부기관의 발표 순간에도

학교에서는 폭력이 일상화되어 어떤 학생은 가해자가 되고, 어떤 학생은 피해자가 되고 또 어떤 학생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현실에 마음 아팠습니다.


기성세대인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이 모두 피해자가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상대방을 비하할 때 자주 쓰는 벌레[충, 蟲]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공부 벌레, 책벌레, 일 벌레 등과 같이 어떤 분야에서 성실히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무당벌레, 사슴벌레, 딱정벌레와 같이 곤충과의 작은 동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터넷과 대중매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특정 사람들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급식충, 틀딱충, 학식충, 무뇌충 등등등.

이런 말들은 무시와 비하를 넘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매우 좋지 않은 표현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어떤 종교 교주의 성범죄를 다룬 다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매우 뜨겁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범죄에 적극 가담할 수 있을까? 하고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무리에 섞여 세뇌 또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런 짓을 저지를 수도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매스컴에서 맛있는 음식을 표현할 때 흔히 '마약'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등. 이런 표현의 문제는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중독 증상을 일으켜 개인의 삶을 파멸로 이르게 하는 물질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직 자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의 마약 중독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관련기사 : 급증하는 10대 마약사범... 지금 아니면 못 막는다>





상대방을 놀리는 것도 성희롱처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멸감, 수치심의 감정을 받았다면 폭력입니다.

이런 폭력은 신체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몸에 난 상처는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아물고 낫습니다. 하지만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폭력은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그 상처를 치료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가슴과 뇌의 한 켠에 자리 잡은 청소년기 폭력의 트라우마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습니다.


이런 폭력의 당사자는 스스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우리 어른들이 그들의 눈을 잘 살핀 후 빨리 해결해 주기를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의 겉모습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쳐다보면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아이들의 눈을 봅니다.

말과 행동은 숨길 수 있어도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밝고 낙천적인 아이의 눈을 맑습니다.

어둡고 부정적인 아이의 눈은 흐립니다.

특히 학교폭력을 당한 아이는 눈으로 말을 합니다. 주변인들이 아이들을 눈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방금 전 쉬는 시간에도 한 아이의 눈을 보니 두려움이 가득 찬 걸 느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다음 시간이 체육 수업인데 농구를 배운다고 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좋아하는 수업은 체육입니다. 그런데 체육시간이 두렵다고 하니 많이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농구를 배웠는데 친구가 던진 농구공을 받지 못해 이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농구공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저는 바로 체육선생님께 알렸습니다.

00 이가 초등학생 때 농구 수업을 받다가 다친 경험이 있어 농구공을 매우 무서워하니 수업을 할 때 특별히 이 학생을 잘 살피라고요.







얼마 전에 ~충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아이를 복도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00아 잘 지내지?"

"네 교감선생님"

"아직도 친구들이 놀리니?"

"네 아직도 놀리는 애가 몇 명 있지만 예전처럼 심하게 놀리진 않아요"

"그래 선생님이 더 혼내줘야겠구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선생님께 와서 말하렴. 혼구녕을 내줄게"

"ㅋㅋ 네 감사합니다. 놀리는 애들은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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