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Oct 26. 2022

어머니의 하소연

학교폭력의 그늘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가 나쁜 짓 한 건 알겠습니다. 그에 대한 처벌도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도 알구요.

 하지만 우리 아이도 치료와 보호가 필요합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저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새끼가 이 지경이 된 줄 몰랐습니다.

 제 아이가 끔찍한 말로 가해자인데, 피해자를 위한 여러 지원 방법들은 있어도 가해자를 위한 대책은 없어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저 같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내겠습니다."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할 때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하소연입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대부분 피해자와 그 부모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가해학생 부모님이 찾아오는 거의 없는데, 아마도 자녀가 저지른 잘못의 무게감이 너무 커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를 옆 상담실로 모시고 가서 차 한 잔을 드리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아빠가 알콜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이야기

아이와 단 둘이 남은 본인이 식당일 등의 궂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운 이야기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나 집에 오면서 아이를 혼자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아기가 또래 친구들보다 발달정도가 늦어져 학교에서 각종 말썽을 일으킨 이야기 등등

어머니가 울면서 하소연 하듯 하는 이야기를 1시간 정도 들어만 주었습니다.


학교폭력을 일으킨 본인 아이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하겠지만

벌을 받는 것만으로 아이가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상담치료도 받고 병원도 다니고 싶은데

병원비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담당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와드리고 싶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해자에 대해서는 처벌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이나 심리치료가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매우 부족합니다.

이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해학생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저학년 아이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왜 가해자에게 이런 보살핌과 혜택을 주어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가해학생도 우리 아이들입니다라는 뻔한 이유가 아닙니다.

이 아이가 지금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아이 부모님의 절박한 호소 또한 우리가 귀 기울어야하지 아닐까 하는 알 수 없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 가해자라고 손가락질만 하는데 제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줘서요.

 어렵겠지만 아이가 착한 마음을 갖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부모로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오히려 저희가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도울 방법이 없지만 여기저기 알아봐서 꼭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지역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이 아이를 위해 비용 걱정 없이 장기간 상담치료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아 어머니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이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얼마 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어 알 수는 없었습니다...



*소개한 사례들은 사실에 근거했지만 학교, 학년, 학생 등은 가공임을 밝힙니다.




사진출처 :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2043




이전 02화 부모 옆에서 웃는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