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절차는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채용의 공정성 때문에 채용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채용의 목적은 좋은 인재를 잘 선발하는 것이다. ‘잘’이라는 단어에는 두 의미가 있다. 발견과 속도다. 기업에 도움되는 지원자를 알아보고 선발한다는 의미와 효율적인 프로세스로 채용의 속도를 높인다는 의미다. 채용도 결국 속도에 관한 문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인재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된다. 빠르면 1년 안에, 늦어도 10년 안에는 대부분 판가름 난다. 발견이란 저절로 드러나기 전에 미리 아는 걸 뜻한다.
요즘에는 많이 유연해졌지만, 아직도 몇몇 공기업에서는 공정성을 이유로 다양한 지원자에게 똑같은 질문만 기계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공정한‘ 구조화 면접을 하더라도 즉흥적 추가 질문을 해야 지원자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질문은 면접의 조건이다. 다른 질문을 받으면 지원자 입장에서 다른 조건에서 면접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은 질문을 똑같이 던져서 돌아오는 대답만을 평가해서 선발하겠다는 생각의 끝이 궁금하다. 판단은 면접관인 사람이 한다. 똑같은 대답을 하더라도 달리 해석할 수 있고, 다른 대답을 하더라도 똑같이 해석할 수 있다. 아무리 객관적 평가라고 약을 팔아도 면접은 주관적 판단의 세계다. 만약 객관적 판단의 세계라면 면접관을 3명에서 6명씩 복수로 둘 필요가 없다. 절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없는(잘못된 판단을 인정하면 국가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믿음이 만든) 신과 같은 법정의 판사처럼 면접관 한 명 한 명의 판단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면 면접관은 한 명만 있으면 된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여러 명의 면접관을 내외부에서 불러들일 이유가 없다. 쓸데없는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는 멍청한 짓이다. 면접관을 복수로 두는 이유는 면접관의 판단은 주관적 편향성을 띤다는 걸 증명한다. 주관적 판단이더라도 여러명의 면접관의 생각이 똑같다면 객관적 판단으로 인정하자는 의미다. 면접의 공정성은 면접관 개개인의 판단이 객관적이어서가 아니다. 편향에 치우친 주관적 판단을 하는 면접관 여러 명의 공통된 판단, 즉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자는 뜻이다.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 제도처럼. 그런데 면접관은 다수결로 합격을 정하지 않는다. 만장일치다. 5명의 면접관이 있는데 한 명이라도 채용을 반대하면 채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면접이 끝나면 면접관들끼리 서로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수정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종합사정‘이라고 말한다. 반면 개별 면접관이 합부를 판단하는 과정은 개별사정이다. 합격여부는 개별사정을 바탕으로 종합사정을 하고, 종합사정의 과정의 의논과 수정을 통해 만장일치로 합격 점수를 주어야 채용이 결정된다. 이게 가장 일반적인 채용 면접 과정이다. 기업의 규모나 상황에 따라 절차나 형식은 다르겠지만, 종합사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편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종합사정을 할때는 대부분 스피디하게 진행되지만(의논을 통해 개별 면접관의 합부 결정을 바꿀때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강한 편향이 일리가 있으면 다른 면접관이 설득당하기도 하고, 서로 물러서지 않기도 한다. 면접도 결국 개인의 소신과 다양한 의견 교환을 통한 합의에 관한 일이다. 민주주의 원리와 비슷하다. 기업에서 이런 원리를 얼마나 적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영역들처럼 면접도 점점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다. 채용을 아웃소싱하는 이유와 예타(예비타당성검토)제도는 닮았다. 겉으로는 전문화, 효율화 목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피하기 위한 교묘한 장치다. 내외부면접관이 함께 면접을 보는 것은 좋은 방법 같다. 다만, 종합사정을 야무지게 해서 좋은 인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형식을 달리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변화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 온다.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없는 것과 같다.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화려한 장치를 만들 것이 아니라, 공정함의 목적을 들여다봐야 한다. 채용의 공정함은 기업 브랜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인재를 놓치지 않는 것이 목적이다. 스펙의 그늘에 가려 자신을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지원자, 잠재 역량이 있지만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지원자, 조건의 벽에 부딪혀 지원의 기회, 면접의 기회조차 없는 지원자. 그런 지원자들 중에서 화려한 스펙만 가진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공정성의 목적이다. 공정성은 발견에 관한 것이다. 줄세우기 혹은 그럴듯함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공정성은 능력도, 의지도 없는 지원자, 무기력한 지원자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또한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의지와 능력이 있지만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한 장치다,
공정성은 더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다. 공정성에 매몰되면 안 된다. 공정성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