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 방울

by 피라

방울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주기로 계속 들렸다. 한 시간은 지속된 것 같다. 베란다 문을 밀어 바깥을 확인했다. 뭔가가 느껴졌다. 대문 옆 나무 가지들과 담벼락이 만나는 곳. 가지 사이 담 위에 뭔가가 보였다. 고양이였다. 흰고양이.


고양이가 움직일때마다 방울이 울렸다. 고양이 목에는 방울이 달려 있었다. 아는 고양이다. 1940년대 말에 목포에서 태어난 한 여자 아이. 어른이 되어 돌고 돌다가 부산 영도에 정착해서 어릴적 좋아했던 음식 장사를 했다. 부산에서 흔치 않은 홍어집이었다. 저 윗 동네에서 남의 집에서 월세를 주며 몇 십년 장사하며 모은 돈으로 이쪽에 집을 샀다. 그 주택을 홍어집으로 만들어 장사하시는 할머니. 잊어버릴만하면 김치, 열무김치, 동치미를 갖다주신다. 어떤 날은 따끈따끈한 파전도 맛보라며 갖다주신다. 방울 단 흰 고양이는 그 할머니집 고양이다. 몇년 전 할머니집에 놀러갔을 때 흰색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가 남았다. 그 새끼 고양이가 울음의 주인공, 방울 단 흰고양이다. 집 안에서만 키우는데 바깥에 나온 것이다. 요즘 가끔 출몰하는 걸 보니 외출양이가 된 듯하다.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문을 열어주었더니 들어와서 집안을 살펴보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가버린다. 방울소리를 내면서. 7,8살때 들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신들의 천적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자는 아이디어를 낸 쥐들. 멋진 생각이라며 만장일치로 방울을 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작 방울을 달 용기 있는 쥐가 없어서 방울을 달지 못했다는 짧은 이야기.


나이들수록 삶은 생각이 아니라 행위에 대한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진다. 방울다는 아이디어같은 누구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쥐는 용기가 없어 방울을 못달지만, 사람은 용기가 아니라 욕심 때문에 방울을 못단다. 욕심의 이름은 완벽주의다. 완벽하게 보이지 않으면 하지 않는 현대인의 병이다. 최소한 그럴듯한 계획이라도 있어야 한다. 세상은 예측가능함의 질서 속에서 돌아간다. 인간은 안다. 삶의 그 어떤 것도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거부감을 키운다. 불확실성을 경험할수록 불확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불확실하거나 촘촘하고 합리적인 계획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책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질타하며 바보로 여긴다. 바보. 바보는 모르는 사람, 앎이 없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은 행동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행동한다. 완벽하게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행동하고, 아직 미흡하다 여기는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 중에 자신을 완벽하다 여기거나 완벽함을 보여주려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다. 간혹 용기 있는 사람은 모르는 걸 알지만 행동한다. 용기없는 사람이 행동하는 방법은 무지다. 때때로 바보가 되는 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영화 속 캐릭터는 행동으로 보여주듯, 삶은 행동에 관한 것이므로 바보가 되어 행동하는 것이 천재가 되어 생각만 하는 편보다 나을 것 같다. 행동도 잘하고 자기성찰도 잘하는 사람이 가장 무시무시하다. 끝없이 업그레이드되니까. 건강만 유지된다면 필연적으로 언젠가 무언가를 이루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목에 방울을 달아야겠다. 움직일때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를 듣는 그 재미를 느껴야겠다. 결과를 향한 행위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즐거운 행위. 그게 삶의 본질일테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채용과 공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