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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by 피라

오래 동안, 아주 오래 동안 자기소개서 글쓰기를 업신여겼다. 자기소개서 클리닉, 자기소개서 코칭, 자기소개서 작성방법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랬다. 오래 동안, 아주 오래 동안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글쓰기를 생각했지만 자기소개서 글쓰기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자기소개서 글쓰기와 내가 쓰고 싶은 글쓰기는 전혀 다른 글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은 주제가 다르다. 목적도 다르다. 내용도 다르다. 글을 쓴다는 점을 빼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많은 취준생들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취준생들 중에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어떤 경우라도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 것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쓰는 글은 대체로 그가 쓰고 싶어하는 글이다. 소재도 주제도 자유롭게 정한다. 글쓰기의 매력은 자유로운 선택에 있다. 무엇이든 내가 정한다.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어떤 구성으로 어떤 단어를 선택할 것인지 이 조사를 뺄 것인지, 술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모두 내가 정한다. 그런 자유로운 나만의 선택이 글쓰기의 매력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글도 본격적으로 쓰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출판 계약을 하고 글을 쓴다든지, 마감이 있는 글을 쓴다든지, 돈을 받고 특정 글을 써주기로 했다든지 등의 특정 ‘조건’이 생기면 그 글쓰기는 즐거움의 경계를 넘어 고통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나만 보는 일기같은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줄 글, 돈을 받는 글을 써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간극이 생긴다. 쓰고 싶은 글이 막연히 있는데 거기에 가닿지 못하는 나의 글.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에 고통스럽다. 문제는 목표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목표, 즉 내가 쓰고 싶은 글의 구체적인 모습(문장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단어가 완벽한 환상적이고 완전한 구체적인 문장)이 머리 속에 다 들어 있다면(그걸 목표라 부른다.) 좋을테지만, 쓰고 나면 이게 아니고, 쓰면서도 이게 아니고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목표와 현실의 간극은 줄이기가 너무 어렵다. 이 간극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글쓰기의 과정이다. 다행스런 것은 이 과정이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즐거움과 고통이 섞여 있다. 즐거움 속에 고통이 있고,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다. 영화 시티오브 조이의 마지막 자막처럼 ‘행복은 고난 속에있다.’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글쓰기의 맛을 한 번 맛본 사람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이런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글쓰기’의 전형이다. 마감이 정해져 있고, 주제도 정해져 있다. 친절하게 각 장에 무엇을 써야 할지 질문으로 다 말해준다. 나는 그 구성에 맞춰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글쓰기다. 소제가 ‘나‘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소재 아닌가? 나보다 타인이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바로 나다. 그래서 가장 유리한 조건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은 나다. 자료 조사가 충분히 되어서 글감이 풍부하다는 말이다. 이쯤 생각하니 자기소개서 글쓰기와 다른 글쓰기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글을 써주면 돈을 받는다는 점을 빼고는 다른 점을 못찾겠다. 그럼에도 나는 자기소개서 글쓰기를 다르게 여겼을까? 왜 업신여겼을까?


편견 때문이었다. 전형성 때문이었다. 결과 중심의 전형성.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인 글. 과정은 생략된 글. 무엇보다 가식적인 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생각한다. 모두가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혼자, 아냐 그런 파란색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쳤다. 그럴 필요성도 못느낀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그 애매함 속에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반성한다. 자기소개서를 오래 말해 온 사람으로서 자기소개서 글쓰기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처음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소개서 글쓰기와 다른 글쓰기는 같다’는 것이 전제다. 합격여부를 떠나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써야 한다 주장하고 싶다. 내가 쓴 자기소개서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바뀔 정도로 진심을 담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글쓰기와 차별하면 안 되겠다.


인공지능이 온갖 글들을 생성하는 시대에, 인간의 글쓰기를 생각하는 것은 퇴행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온갖 정보에 대해 반응만 하는 시대에서 깊고 넓게 사유하는 인간은 빛을 발할 것이다. 글쓰기는 사유하는 인간을 만드는데 필요한 탁월한 도구다. 지긋지긋하고 갑갑갑한, 그래서 인공지능에 다 맡기고 싶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깊게 사유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글쓰기를 말하고 싶다. 면접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넘어, 합격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넘어, 입사해서 직무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넘어,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 삶의 영원한 이정표가 될 그런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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