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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산으로 가는 이유

by 피라

한국 한 해 교육 예산은 100조 정도란다. 고등교육 외부 교육 예산은 15조 정도. 대략이다. 대학교육의 주목적은 취업이니 외부강사와 연관된 15조 예산의 상당 부분이 취업, 창업, 진로 교육과 연관될 거다. 대학 혁신 사업과 특성화고가 연계된 사업도 있고, 특성화고 직업교육에 들어가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들었다. 초중고에 들어가는 외부강사들 전부를 고려하면 한국 교육 예산 전체 중에서 외부 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은 최소 20조에서 30조 정도로 추정된다. 미니멈 10조 맥시멈 40조로 추정된다. 물론 대충 때려박은 추정치다. 한국 정부 예산의 2.3%가 국방비, 교육비가 5%다. OECD국가와 비교해 한국의 교육예산은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은 왜 이런가?


오랜 세월 한국 교육이라는 배는 산으로 가다 산꼭대기에 걸려 꼼짝 못하는 지경이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육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 가여운 표정, 혹은 대단한 표정을 짓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 취급을 받는다. 교육을 꼭 바꾸고 싶어 한때 관심 가져보았으나 지쳤다.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놓치 않고 뭐라도 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 교육은 왜 바뀌지 않는가? 물 위에 자동차를 달리게 만드는 일과 같다. 학부모가 물이다. 일류대학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한국 교육을 견인한다. 들여다보면 교사도, 교육부도, 교육청도 모두 끌려간다. 정부는 그 학부모들의 표가 두려워 눈치를 본다. 모두 옳은 말을 하지만 어떤 말도 교육을 바꾸지 못한다. 그 집단에 통찰력을 갖춘 전문가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들이 주도하는 교육정책을 지난 수십년간 본 적이 없다. 학부모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다수 학부모가 교육의 본질을 알고 있을리도 없다. 그들은 그냥 자기 이익, 아니 자기 자식의 이익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반응하는 집단반응체다. 공부 잘하는 자식, 좋은 대학에 가는 자식, 좋은 직업을 갖는 자식, 돈 많이 버는 자식이다. 학부모는 사유체가 아니라 반응체다. 그것도 민감한 반응체다. 미래 이익이라 여기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교육을 제대로 바꾸고 싶은 관심과 열정의 크기와 고민의 시간에 비례에 점점 시니컬하게 바뀐다. 공교육, 대학교육의 수준과 질은 교육부, 교육청, 교사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 생각한다. 근데 문득 새로운 것을 보았다. 바로 외부교육이다.


외부 교육은 3단계로 구성된다.

1. 교육 개발

2. 교육 운영

3. 교육 수행

개발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단계다. 운영은 강사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섭외, 준비, 피드백 등의 일이다. 개발과 수행을 제외한 모든 일이다. 강의장 섭외하고 현수막 걸고 사진찍고, 다과 준비하고, 결과보고서 만들고 뭐 그런 일들이다. 수행은 교육이 진행되는 시간, 강사의 일이다.


나는 1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 기업이다. 외부교육 섭외가 들어왔다. 1천만원짜리다. 시간은 3개월이 주어졌다. 직업계고 학생들 50명을 대상으로 진짜 제대로된 취업역량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육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선택지는 여러개가 있다. 그 중 두 개만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일을 제쳐두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취업역량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 전문가들과도 협업한다.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교육될 수 있도록 최고의 강사들을 섭외해서 업체 최고의 강사비를 주는 최고의 운영사에게 맡긴다.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한 푼 가져가지 않는다.


2. 기존에 하던 프로그램에 제목과 내용만 슬쩍 바꿔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바빠서 아는 교육대행기업에게 교육을 맡긴다. 5:5로 갈라먹자고 한다. 교육대행업체는 운영비 명목으로 50%중 대부분을 가져가고 강사비는 전체 예산의 10%, 100만원만 지급된다. 나는 전화 몇 통, 파일 편집으로 500만원을 먹고, 운영업체는 기존 인력을 돌려 400만원을 먹고, 외부강사 10명은 각각 10만원씩 강사비 먹는다.


하고 싶은 말은 ‘균형‘이다.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개발, 운영, 수행의 세 영역에 골고루 투자가 되어야 한다.

케이스별로 다 다르겠지만, 개발, 운영, 수행에 각각 30%정도의 예산이 들어가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야 기본적인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 생각한다. 어제 발견했던 수억짜리7모 지자체의 교육 때문에 잠을 못잤다. 돈이 아깝다. 저 돈이면 진짜 제대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잘 운영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학생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교육이다. 업자를 위한 교육, 실적을 위한 교육, 예산을 쓰기 위한 교육이다. 교육은 이렇게 돌고 돈다. 학생의 눈은 점점 촛점이 흐릿해진다. 예를 들어 1억짜리 교육 사업에서 강사비가 2천만원이고 운영을 댓가로 업체가 8천만원을 가져가는 구조. 문제가 없을까? 3천만원, 6천만원이면 문제가 없는가? 배분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을 얼마나 잘 이루느냐가 문제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미래 삶에 큰 도움이 된다면 업체가 90% 먹어도 된다.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면 무엇을 개발했는지, 누가 어떻게 참여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 부분을 들여다보니 않음은 정직하지 않음이다. 무책임함이다. 교육이 교육의 숨통을 조이는 행위다. 자해다.


세금을 의미 없이 쓰는 교육이 장마뒤 버섯처럼 대한민국을 뒤덮은 것 같다. 대한민국 교육계가 거대한 슈킹 시스템으로 진화되었다면 심한 표현일까? 교육을 위한 교육을 한다는 명분,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다는 도덕적 마비. 만약 저 수억짜리교육이 내게 왔다면. 나는 분명 여러 현명한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좋은 것이 좋다며 적당히 해먹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좋은 교육을 위해 조금 더 신경쓰는 정도. 그래서 어제 밤 한 숨도 못잤다. 나도 똑같은 놈이다. 결론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다. 이래서는 안 된다. 외부교육 몇 십조 예산 대부분이 이렇게 날아가고 있을 거다.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이다. 미래를 썩게 만드는 일이다. 유일한 명분은 학생들의 교육평가. 평가들은 다들 좋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지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도구로 여기는 세상.


근데, 희망이 보인다.

어쩌면, 어쩌면 외부교육을 잘 들여다보면. 교육 개혁의 불씨가 외부 교육에서부터 시작될지 모르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변경혁명론처럼.

그래서 계속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공론화시킬 것인지. 300만명 팔로워 유튜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명이라고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공감하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겠지라며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눈물이 한 방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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